행복의 문 :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사람은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모든 불행은 나에게 빗겨나가고 오직 즐거움, 편안함, 만족감 속에서 삶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냉정하며 무심합니다. 그저 큰 흐름으로 나아갈 뿐이죠.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삶이 있는 반면, 이보다 나쁠 수 없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삶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행복과 불행의 교차 속에서 살아가죠.
여기 한 여성이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뇌수막염을 앓게 되면서 생명이 위독해졌고, 천신만고 끝에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립니다. 앞을 보는 것도, 무언가를 듣는 것도 할 수 없던 그녀는, 그러나 세계적인 인권운동가이자 교육자로서 위인전집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헬렌켈러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명언은 그녀가 쓴 시에서 유래합니다.
태양을 바라보며 살아라.
그대는 그림자를 볼 수 없으리라.
해바라기가 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지 말라.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라.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뺴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불구자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 헬렌 켈러, <행복의 문>
손바닥에 글씨를 써가며 언어와 세상을 배운 그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느리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둠과 침묵이라는 물리적 장애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여 장애인의 인권, 여성과 노동자의 권리, 평화 운동에 앞장선 사회운동가로써 왕성한 활동을 펼칩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오지 않음에 머물지 말고, 생각지도 못한 행복이 나에게 오는 걸 알아차리는 삶의 자세가 필요함을 그녀는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 변방 노인의 말
— 회남자(淮南子), 인간훈 편
옛날, 중국의 북쪽 국경 근처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키우던 말 한 마리가 우리를 빠져나와 도망을 쳤죠. 말을 사람들은 노인을 위로하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노인은 오히려 태연하게 말하죠. "말이 도망친 일이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라고요. 그리고 얼마 후 도망쳤던 말이 튼튼하고 멋진 야생마를 데리고 같이 돌아오게 됩니다. 이번에 이웃사람들은 기뻐하며 축하를 전하죠. 그러자 노인은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일이 무슨 화를 부를지 모르겠구나." 다시 시간이 흘러 노인의 아들이 야생마를 길들이기 위해 올라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치고 맙니다. 이웃들을 재앙이라며 걱정하지만, 노인은 묵묵히 말합니다. "이 일이 무슨 복을 가져올지 어찌 알겠나?" 그리고 얼마 후 나라에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젊은 장정들은 모두 군대에 끌려가 전사하게 되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무사히 살아남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우리의 인생에 가까이 있고, 교차한다는 의미죠. 하지만 이 고사성어의 진정한 의미는 행복과 불행을 대하는 노인의 태도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당장의 사건, 사고에 집중할 때 노인은 삶 전체의 흐름을 생각하며 지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담담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죠.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빅터 프랭클(1905~1997)은 누구도 쉽게 회복하하기 어려운 끔찍한 불행을 겪은 인물입니다. 1944년 10월,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고, 여동생을 제외한 부모와 아내, 형제 등 일가족 모두가 사망하게 되죠. 자신이 경험한 이러한 극한의 고통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일생을 바쳐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간 심리치료 기법이 의미치료(Logotherapy)입니다.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에 있다는 것은 의미치료의 기본 신조 중에 하나이다. 자기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인간이 기꺼이 그 시련을 견디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에, 심리적인 위안으로서가 아닌 실존적인 방향을 제시하여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 치료법의 핵심입니다. 인생의 고통과 불행 앞에서 회피하려는 마음가짐이 아닌, 마주하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고 의미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 이 것이야 말로, 또 다른 행복의 문을 여는 방법이 아닐까요?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는 다양한 작품으로 인생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그가 1986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도중 얻게 된 인생의 실마리를 통해 쓰게 된 작품이 그의 대표작인 『연금술사』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양치기 소년인 산티아고입니다. 평범한 양치기의 일상을 살던 그는 어느 날 계시와 같은 꿈을 꾸게 되죠. 피라미드 근처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라는 내용의 꿈이었습니다. 꿈속의 보물을 위해 이집트로 떠나는 산티아고. 바다를 건너고, 가진 돈을 잃어버리며, 오아시스에서 사막의 연금술사를 만나는 등 긴 여정을 겪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깨닫게 되는 것은 '보물은 그가 원래 살던 고향의 나무 아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
인생의 보물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행복으로 보느냐, 불행으로 보느냐 에서 시작됩니다. 결국 내 안에 깨달음과 믿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통찰력과 용기에 비롯되는 것이죠. 진정한 행복, 진실한 보물은 결국 내가 세계를 향해 내디딘 발걸음의 끝에 놓여 있습니다.
과학처럼 닫힌 행복의 문 너머에 언제나 성공의 문이 기다리고 있는 사례가 무수히 많은 분야도 없을 겁니다. 거듭되는 실험과 실패 속에서 우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대성공을 거둔 경우들 말이죠.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포스트잇(Post-it)의 발명도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 미국 3M사의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 박사는 원래 기존보다 더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접착성 종합제의 신소재로 불리는 '모노마'를 구입해 새로운 접착제를 연구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모노마'를 다량으로 반응 혼합물에 넣어보면 어떨까 하고 실험에 착수합니다. 그랬더니 끈적이지 않고 약하게 붙었다 떨어지는 특이한 접착물질을 만들고 맙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물질에 관심을 두지 않았죠. 붙였다 떼어지기만 하는, 애매한 성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어느 날, 같은 회사의 제품 사업부에 일하던 아서 프라이(Art Fry)가 교회 성가대에서 사용하던 찬송가 책갈피가 자꾸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접착제를 떠올립니다. “안 떨어지되, 책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만 붙는 메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그렇게 세상에 포스트잇이 탄생하게 됩니다.
당초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우연한 방향에서 열린 작은 성공의 문이었지만, 이 노란 쪽지는 전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되며 3M사의 대표 제품이 됩니다. 스펜서 실버에게 닫힌 행복의 문은, 결국 아서 프라이가 연 행복의 문의 단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우주에 대한 책 속에서 우리 지구의 현재 나이가 약 50억 년이고, 태양의 남은 수명은 약 100억 년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지구도 결국에는 소멸하고 말 운명인 것이죠. 물론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 인류의 수명이라고 해봐야 티끌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말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항상 끝이 있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시작과 끝이라고 말하기에는 수많은 삶의 굴곡이 무늬를 만들어 내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세상은 그저 흐를 뿐입니다. 개개인의 희로애락은 큰 흐름 속에 그저 작은 사건들에 불과하죠.
중요한 건 흐른다는 것입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문을 닫으면, 분명 새로운 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문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면 그건 죽음뿐이겠죠. 고개를 숙이지 않고,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당당하게 앞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문을 잡고 열어야 합니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그 문이
세상이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