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열아홉 번째

평온의 기도(Serenity Prayer)

by 이민행

1. 인생이라는 덤프트럭에 치었을 때


짧지 않은 회사생활을 해왔기에 나름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위기가 닥쳤죠. 지나고 돌이켜 보면 외부적인 영향이 더 큰 문제였지만, 그 일을 맡아 진행하고 처리하던 담당자로서 수많은 질책과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거듭되는 회의 속에서 점점 위축되고, 의욕이 떨어져, 급기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죠. 결국 마지막을 생각하고 부서장님께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정신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상황을 설명드리고, 급기야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때 부서장님께서 하신 말씀에 큰 위로가, 위안이 됐습니다.


"그동안 회사 생활해 오며 당신을 지켜봤을 때 맷집도 좋고 인내심도 있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이번 일은 덤프트럭에 갑자기 치인 겁니다. 큰 충격에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분명히 순리대로 흘러갈 거니 조금만 견뎌봅시다."


그리고 부서장님의 말씀대로 시간이 흐르고 앞이 보이지 않던 상황들이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것처럼 풀려가더군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인 세네카의 말처럼 '운명은 내던져지며 우리를 강타하기에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느냐가 중요하겠죠.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 평온을 위한 기도(Serenity Prayer)


오늘 소개해 드릴 명언은 평온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20세기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1930년대 말에 처음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나갔고, 오늘날에는 기독교 신자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알코올 중독자 모임(AA, Alcoholics Anonymous)에서 회복의 기도문으로 채택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삶의 본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있는 것의 뒤섞임, 혼란입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과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태도만이 인생의 덤프트럭에 치였을 때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2.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세상의 무상함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진리 가운데 하나가 삼법인(三法印)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 우주만물은 언제나 변하며,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는다.’, ‘제법무아(諸法無我) - 고정되고 불변하는 '나'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체개고(一切皆苦) - 모든 형성된 것은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다.'가 그것이죠.

이 가운데 제행무상은 불교가 말하는 깨달음의 출발점입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하여,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하나,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집착이나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의 일생을 봐도 그렇습니다. 태어나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어갑니다. 내 몸의 세포들도 순간 생겨났다가 죽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죠. 권력이나 재물,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머무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흘러가고, 그 누구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應無所主 而生己心(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 금강경(金剛經) 중에서


다만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단순히 허무주의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부처께서는 이러한 무상의 마음가짐 위에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며, 그저 무소의 뿔처럼 열심히 나아가라고 가르치셨죠.


3.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흔들림 속의 평온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는 저서인 수상록 (Essais)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학자가 아니라 정치가이자 귀족 출신이었음에도,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를 성찰람으로써 철학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고 종교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그는 인간 존재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변화무쌍한 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의 저서인 수상록은 제목처럼 에세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을 써 내려간 수필이라기보다는, 보다 깊이 있고 학술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죠. 몽테뉴는 인간의 삶을 “흔들림(불확실성)”으로 규정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외부의 무수한 영향들은 변화무쌍하기에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허무에 빠지는 대신, 자기 성찰과 내적 평온을 통해 흔들림 속에서도 삶을 지탱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다.
— 몽테뉴, 『수상록』


외부 세계의 변덕이나 혼란을 붙잡으려 하기보다, 내 안의 평온과 자율성에 집중하고 그 역량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즉, 몽테뉴의 철학은 세상의 무상함을 인정하되, 그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 자신을 세우는 것, 바로 그것이 인간다운 주체적 삶의 길이자 지혜라 말하고 있는 것이죠.


4.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의 힘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뒤에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거나, 오히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더 성장하는 능력을 뜻하죠.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정신력'이라고 보면 됩니다. 본래 물리학에서 고무나 용수철처럼 어떤 시스템이나 재료가 외부의 변화나 충격에 의해 변형되었다가 다시 원래 모양으로 회복하는 성질을 설명하는 용어였지만, 오늘날에는 인간의 심리적 회복력과 적응력을 설명할 때도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삶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 실패, 상실, 상처를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충격에 무너져버리는 무기력증에 빠지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그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는 회복력을 보여주죠. 심리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과 환경적 요인, 그리고 훈련 가능한 심리적 역량의 결합으로 설명합니다.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고난에서 살아남는 능력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능력이다.
—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Amy Werner)의 연구에서


연구에 따르면 낙관성, 유연한 사고, 사회적 지지망, 그리고 자기 성찰의 습관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 다시 말해, 삶의 불가항력적인 사건들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긍정성, 유연성, 끈기, 가치, 자기 돌봄, 자기조걸, 대인관계)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5. 문학에서 말하는 폭풍 그 너머


영국 문학, 아니 서양문학의 거장 하면 첫 손을 꼽히는 인물이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입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 사랑과 배신, 그리고 삶의 아이러니를 가장 탁월하게 그려낸 극작가로 불리며 세계적인 고전문학 작품들을 써낸 천재였죠. 그의 마지막 희곡으로 알려진 『템페스트(The Tempest)』는 정치적 음모와 배신, 자연의 힘과 마법이 뒤섞인 신비로운 작품으로, 폭풍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용서와 화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밀라노의 공작이었던 프로스페로가 동생 안토니오의 배신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외딴섬에 표류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프로스페로는 섬에서 정령의 도움으로 마법을 익히며 복수를 준비하죠. 수년 후, 그의 동생과 원수들이 탄 배가 섬 근처를 지나자 폭풍(템페스트)을 일으켜 그들을 섬으로 끌어들여 고립시킵니다. 그러나 결국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그들을 용서하며, 섬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우리의 유희는 이제 끝났소. 우리 배우들은... [우리가 꿈을 이루는 재료와 같은 것이니]

(Our revels now are ended. These our actors,...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 템페스트, 프로스페로의 대사 중에서


프로스페로가 겪는 고난과 분노는 갑자기 들이닥친 삶의 폭풍이었습니다. 복수에 불타올랐던 그였지만, 결국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현재의 선택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택하게 됩니다.

셰익스피어는 『템페스트』를 통해, 인생의 폭풍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태도가 우리 삶을 새롭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인생은 결국 내 몫이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예고 없이 몰아치며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사건이 지난 후 세상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갔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슴속에 큰 상처가 남았고 아무는 시간도 그만큼 길었죠.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생의 한 계단을 오른 느낌이 듭니다.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묵묵히 밀고 나아가는 것, 시간이 흐르면 결국 폭풍은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주변의 상황들이 나를 내몰기도 하지만, 나를 붙잡아 주기도 한다는 것을요.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공감해 준 가족들,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던 회사동료들, 나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몰려 봤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던 책 속의 선배들까지... 벼랑 끝이라고 생각되던 순간에 손을 내밀어 나를 건져 올려준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언제 커다란 덤프트럭이, 거대한 폭풍우가 내 인생에 들이닥쳐 나를 내동댕이 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또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겁니다. 내 스스로가, 나를 둘러싼 손길들이, 그리고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이 구원해 줄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요.


『거대한 시련 앞에서 당당하게 외칩시다.

"그래, 재밌네, 어디 더해봐."』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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