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최근 대한민국의 문화, 산업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뜨겁습니다. '오징어게임 3', '케이팝 데몬 헌터스'같은 영화뿐 아니라 뷰티, 음식에 방산, 조선,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른 나라를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한민족이 과거에도 세계의 집중과 존경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깨달음으로 유명한 고승 원효대사입니다.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의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들었기에 잘 알고 있지만, 이후 이분의 발자취는 잘 알려져 있지 않죠. 태종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 맺어져 신라에 손꼽히는 유학자가 된 설총을 낳았고, 승려에서 속세로 돌아와 머리를 깎지 않고 일반인의 옷을 입으며 스스로를 소성거사(小姓居士)로 칭하며 다녔습니다. 쉽게 말해 파계승이 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행동 자체가 대중들에게 불교를 알리는 큰 그림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을 흔하게 쓰게 된 것도 원효대사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린 덕분입니다. 그리고 대사는 불교연구와 저술 활동에도 열중하여 훗날 중국, 일본, 심지어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에서도 그의 저서를 가져가 연구하고, 불교계의 큰 스승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
— 화엄경『華嚴經』 중
해골물의 깨달음은 일체유심조의 요체입니다. 젊은 시절 촉망받는 유능한 승려로, 의상대사와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동굴에서 잠들었다가, 목마름에 깨어 근처에 있던 물이 든 바가지를 발견하고 감로수라 생각하며 마십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그 바가지는 해골이었고, 썩은 물을 먹었다는 생각에 구토를 하다가 일체유심조를 몸소 깨닫게 되죠. 결국 의상대사만 당나라로 가고, 원효대사는 평생 신라에 머물며 일생을 마칩니다.
대승불교의 대표경전인 화엄경은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작용을 하는 연기적 관계 위에, 마음의 작용에 따라 현실이 만들어지며, 마음을 올바로 닦아내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을 몸소 깨닫고, 대중들에게 설파하며, 세계적인 저술을 남긴 원효대사의 시작이 바로 해골물이었던 것입니다.
독일 철학의 거장이자 변증법적 사유를 정립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서양 철학사에서 인간 정신과 세계의 관계를 가장 치밀하게 탐구한 사상가로 꼽힙니다. 그의 대표작인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은 인간의 의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궁극적으로 절대정신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서술한 방대한 철학적 대서사시로 난해하기로 유명합니다.
헤겔에게 있어서 세계는 정신(Geist)으로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전개하는 과정입니다. 인간 개인의 의식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 안에서 드러나는 보편적 이성이기도 하죠. 즉, 인간이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은 정신이 그 의미를 부여하고 구조화하여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내면에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프리드리히 헤겔
그는 더 나아가 정신이 단순히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부정과 대립, 갈등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운동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정-반-합(These–Antithese–Synthese)의 변증법 원리로 설명하죠.
예를 들어, 한 시대의 의식(정)이 대립하는 또 다른 의식(반)과 충돌할 때, 그것은 새로운 단계(합)로 상승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신은 점차 성장해 나아가며 자기 인식을 심화시키고, 결국에는 자유와 이성의 완성, 즉 절대정신의 단계에 이른다고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헤겔 역시 인간의 마음이 세계를 의미화한다는, 일체유심조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과 심리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흥미로운 현상이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우리말로 하면 위약효과(僞藥效果)죠. 효과가 없는 약제를 진짜 약으로 생각하고 섭취하였을 때 환자의 증세나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진통제가 든 약이라고 속이고, 실제로는 포도당을 처방했는데 환자의 진통이 나아진 사례가 관찰되기도 하죠. '플라시보'라는 말은 라틴어인 '플라체보'에서 유래한 것으로 '내가 기쁘게 해 주지(I shall please)'를 뜻한다고 합니다. 현재 심리학에서는 고통을 가라앉힌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죠.
플라시보 효과가 가능한 이유는 인간의 뇌와 신경계가 외부 자극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기대·상상에 의해서도 신체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학분야에서는 효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신경전달물질의 분비, 호르몬의 조절, 면역 체계의 활성화 등이 모두 마음의 영향을 받아 변화할 수 있음을 과학, 특히 뇌과학에서 밝혀내고 있죠.
한 연구에서 퇴행성 무릎 관절염으로 만성 통증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습니다. 95명의 환자 중 일부 환자에게 진통제가 아닌 설탕으로 만든 정제를 준 것이죠. 그리고 뇌의 특정부위인 중전두회(눈의 윗부분, 이마엽)를 기능성 자기공명연상(fMRI)으로 관찰한 결과, 진통제를 복용한 환자들과는 다르게 이 부위의 빛이 크게 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억력과 사고력을 주관하는 부위에서 플라시보 효과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죠.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뇌과학 분야의 연구는 걸음마 수준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뇌, 즉 마음에 따라 우리의 신체도 변화할 수 있음이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스페인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입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모순을 해학적으로 드러낸 그의 대표작 『돈키호테(Don Quixote)』는 1605년과 1615년 두 권으로 출간되어, 서양 문학사에 길이 남은 불멸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기사도 문학에 심취해 현실과 허구를 혼동한 돈키호테 데라만차의 모험담은,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풍자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나이 든 시골 지주인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사도 소설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자신이 정의로운 기사 '돈키호테'라는 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낡은 갑옷을 걸치고, 애마인 ‘로시난테’, 하인인 '산초 판사'와 더불어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가상의 레이디인 둘시네아 공주를 구하고, 세상의 악을 무찌르기 위한 그의 여행은, 실제 현실은 초라하지만 마음속 세계만큼은 웅장하고 거룩합니다. 풍차를 거대한 괴물로 착각해 돌진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죠.
“정의는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 나는 무너진 자의 기사, 고통받는 자의 수호자다.”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중에서
돈키호테의 모험은 끊임없이 좌절과 실패로 끝나지만, 그는 끝내 신념을 꺾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 비웃고 조롱하지만, 그의 눈에는 세상이 전혀 다른 의미로 비치고 있었죠. 이 작품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창조한 믿음과 상상이 얼마나 큰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때론 어리석어 보이는 그 마음속 허상이 누군가에겐 삶의 의미이자 목적으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는 시점에 미술작품들은 단순히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점 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사조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조 속에서 나타난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입니다.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였던 그는 20세기 미술사에서 독창적인 화풍으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예술가입니다. 입체주의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현대 미술의 사조와 닿아 있었지만, 어느 하나로 규정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화폭에 펼쳐냈죠.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망명, 고향과의 단절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사랑·신앙·추억을 담은 시적인 그림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샤갈의 작품을 보면, 공중에 떠 있는 연인, 뒤엉켜 있는 동물과 인간, 비현실적인 색채와 구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대표작인〈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연결되고, 〈신부(The Bride)〉에서는 공중을 날아오르는 연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눈앞의 현실을 묘사하기보다, 마음속에 각인된 기억과 감정, 꿈과 환상의 세계를 화면에 옮긴 작품들이 많습니다. ‘마음이 지어낸 세계’가 화폭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풍경, 불가능한 장면들이 마음속에서는 상상되고 , 그것이 그림으로 구현되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창조하면 대부분 잘 되지만, 머리로 해서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마르크 샤갈
그에게 있어 그림은 외부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형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샤갈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현실을 넘어서는 평화, 자유,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현실은 마음의 투영일 뿐, 새로운 세상은 언제나 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꿈과 목표, 상상과 이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죠. 하지만 생각보다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어제의 내 일상과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일상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으로 변하기는 어렵죠. 작은 물결처럼 그 속의 변화는 있겠지만, 큰 물결의 변화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하고 비슷한 오늘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렇기에 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시간도 성격이 있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주관적이고 질적인 시간인 카이로스(Kairos)가 그것이죠. 누구에게나 크로노스는 주어집니다만, 그 시간을 카이로스로 바꾸는 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원효대사께서 감로수라고 믿었던 물이 해골물로 바뀌는 순간은 크로노스이지만, 그 속에서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은 순간은 카이로스입니다. 분명 우리의 삶 속에도 원효대사의 해골물과 같은 사건들이 즐비합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또 누군가에겐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는 각자의 몫이지만 이왕이면 언제든지 기회를 잡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들어가는 우리를 위해서요.
『인생은 결국 내 마음이 그리는 풍경화입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