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으로 돌아가라 (Back to the basic)
인생은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끝없는 전성기도, 한없는 슬럼프도 없죠. 다만 앞에 놓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는 결국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누구나 좋은 시절은 천천히, 더 오래되었으면 하고, 나쁜 시절은 빨리, 짧게 지나갔으면 합니다. 특히나 안 좋은 시기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노력하게 되죠.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해결방안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기본으로 돌아가자 (Back to the basic)'입니다. 초심의 마음을 다시 잡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돌아보며, 문제의 근원과 위기의 원천을 하나하나 다시 점검하는 자세를 갖고자 다짐을 하죠.
근원으로 돌아가자! (Ad Fontes!)
— 르네상스 시기
중세 말, 유럽 사회는 교회의 부패, 정치적 혼란, 그리고 흑사병과 같은 대재앙으로 어둡고 침체된 시대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문주의자들과 종교 개혁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본질로 돌아가자”라고 외쳤습니다. 그리스·로마의 고전과 성경의 원문, 철학과 예술의 본래 정신을 다시 탐구하고, 그 안에서 시대를 새롭게 할 힘을 찾고자 했던 것이죠.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는 성경을 라틴어 번역본이 아닌 헬라어(그리스어) 원문으로 연구하며 교회의 타락을 비판했고, 루터 같은 종교개혁가들은 이 정신을 이어받아 'Back to the Bible(성경으로 돌아가자)'를 외치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예술가들 역시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포착해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결국 중세시대를 마감하고, 르네상스의 시대를 열어젖힌 원동력이 바로 'Ad Fontes'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중국 송나라(960–1279) 시대는 동양철학, 특히 유교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위진남북조와 수, 당나라를 거치며 기존부터 자리하고 있던 도교에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가 융성하면서 유가는 사상적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형이상학적인 체계가 부족하다는 점이었죠. 이에 유학의 본래정신을 새롭게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바로 성리학(性理學)의 탄생이죠. 성리학자들은 공자와 맹자가 말했던 '인(仁)'과 '예(禮)', 즉 유학의 본래 정신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사회적 질서라는 유학의 뿌리를 다시 붙잡고자 하였습니다.
성리학의 중심 사상은 이름 그대로 '성(性)'과 '리(理)'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성선), 그 본성 속에는 우주의 근본 원리인 리(理)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 핵심이죠. 인간은 욕망과 감정에 휘둘리기 때문에 본성을 잃고 혼란에 빠질 수 있으니 리(理)를 탐구하고, 본성을 밝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실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한다.
— 주자 (朱子)
성리학을 대표하는 대학자인 주자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함으로써 앎에 도달하고, 그 앎을 통해 스스로의 본성을 밝히며 결국 천리(天理)에 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거경(居敬, 마음을 고요히 하고 욕망에 휘둘리지 않음)과 궁리(窮理,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탐구하여 본성과 천리를 깨달음)의 삶이 필요하다고 보왔죠.
삶과 학문이 혼란스러울수록 화려한 변칙을 좇지 않고, 본질적인 인간의 본성, 사회적 도덕, 천리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 성리학의 핵심 정신이었습니다.
서양 근대 철학을 논할 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가 살던 17세기 유럽은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라는 시대의 소용돌이 그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불확실성과 혼란을 넘어설 수 있는 확실한 기반, 객관적 진리를 제시하고자 했던 데카르트가 취한 철학적 사유가 바로 방법적 회의(Methodic Doubt)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기존의 지식이 권위, 전통, 감각적 경험에 기대어 있는 한,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고 보았던 그는 '한 번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해 보자'는 급진적인 방법을 취했습니다. 수학 공식도, 감각 경험도, 심지어 꿈속의 경험조차 모두 의심의 대상이었죠. 이렇게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해체한 뒤에도 남는, 결코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진리가 있었으니 바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이 문장은 '근본'을 뜻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할지라도, 지금 의심하고 있는 “나”의 생각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죠. 이 확실한 대명제를 기반으로 그는 지식과 철학의 새로운 토대를 세워나갔습니다.
그가 동시대를 살았던 스콜라학자들과 구분되는 점은 '신'을 우선시하던 중세의 철학이 아닌, '인간'을 우선시하던 고대 그리스시대의 철학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 역시 철학의 본래적 시작점으로 돌아가 그 위에 새로운 사유의 체계를 구축한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of Samos, 기원전 3세기)는 이미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가 그것을 돈다”는 파격적인 생각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압도적인 권위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의 사상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묻혀버렸죠.
이후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간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고, 하늘의 모든 별과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폴란드 출신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고대에 잠들어 있던 사상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과거의 기록들을 다시 탐구하고, 천체의 실제 움직임을 관찰한 끝에 새로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태양이 중심에 있고, 지구는 그 주위를 돈다.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코페르니쿠스는 중세 천문학을 지배하던 복잡한 계산법과 모순을 이 새로운 결론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더 이상 수많은 보정 장치(주전원, 이심원)를 붙이지 않아도, 태양 중심의 모델로는 별과 행성의 운동이 훨씬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설명되었던 것이죠. 그의 지동설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오랜 자만을 무너뜨렸고, 이후 갈릴레오와 케플러, 뉴턴으로 이어지는 과학혁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언제나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아리스타르코스의 오래된 사상을 되살리고, 거기서 다시 출발했듯이 말입니다. 기본을 묻고, 근원을 다시 바라보는 태도가 인류의 지식을 전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죠.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실험적 삶을 직접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문명사회의 복잡함과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매사추세츠 콩코드 근처 월든 호숫가 숲 속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기록한 책이 바로 『월든(Walden, 1854)』입니다.
소로우는 고립된 은둔자가 아니라, “삶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을 모색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화려한 성공, 부의 축적,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단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이 지닌 본연의 자유와 사유의 깊이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는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숲으로 갔다. 삶의 본질만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월든』에서 소로우는 인생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고,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자급자족하며 농사를 짓고, 숲을 거닐며,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는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에게 있어 숲으로 들어간 삶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본질을 찾는 실험이자, 삶의 기준을 새롭게 세우려는 철저한 실천이었습니다. 『월든』은 그래서 오늘날에도 “단순함 속의 충만함”, 즉 기본으로 돌아가야 삶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고전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끝의 마지막에는 또 다른 시작이 있죠. 인생이 그렇습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마지막은 분명히 있지만, 죽음이라는 종착점이 오기까지는 진정한 마지막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 속에서 항상 필요한 것은 결국 기본입니다. 기본은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꼭 갖추어야 할 자질이면서, 문제가 생기거나 성취의 정점에서 되돌아와서 점검해봐야 할 바탕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무엇보다도 존중받아야 할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기본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축구의 자랑인 손흥민 선수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손웅정이라는 훌륭한 아버지이자 선배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손웅정 감독이 2022년 출간한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선수가 항상 최상의 컨디션에서 경기를 뛰는 것은 아니다. 최상에 가깝게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애쓸 뿐이다. 그래서 평소 실력과 기본기가 중요하다. 기본기가 좋은 사람은 평균기량으로 경기를 소화할 수 있다.
— 손웅정,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중에서
우리는 모두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앎을 실천하는 것은 결국 나의 행동입니다. 기본과 행동,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무거운 이 두 단어를 가슴에 새기고 묵묵히 하루하루를 지켜 나가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Back to the basic, and Just do it』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