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스물두 번째

나의 삶이 나의 메시지다.

by 이민행

1. 삶이라는 여정이 주는 힘


저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제를 정하고 대략적인 목차나 들어갈 내용들이 미리 구상된다면 그나마 수월하지만, 한 줄의 주제만을 가지고 모니터나 노트 앞에 앉으면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한 단어, 한 문장, 한문단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근사하고 멋진 결과라면야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그렇게 하나의 글이 완성되고 틀린 곳은 없는지,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퇴고의 작업을 거치다 보면 알게 됩니다. 모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젠가, 어디선가 스치듯 봤거나, 몰두해서 들었거나, 힘주어 말했었던, 그리고 머릿속에 맴돈 적이 있던 모든 기억들과 추억들의 집합체라는 것을요. 인생의 시간들을 살아내며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삶의 흔적들이 스멀스멀 살아 나오는 경험을 글을 쓰면서 하게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살아온 인생의 과정들은 다릅니다. 시간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 더욱 차이가 나며, 자신만의 독특한 무늬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그 무늬들을 보며, 느끼며,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 무늬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하고요.


내 삶이 내 메시지다. (My life is my message.)

— 마하트마 간디 (Maghtma Gandhi, 1869~1948)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는 영국령 인도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고,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하며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씨앗을 틔웠습니다. 이후 인도로 돌아와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우면서도 폭력으로는 폭력을 이길 수 없다는 신념 아래 비폭력·진리·평화의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인도의 소금 행진(Salt March), 자급자족 운동 등을 주도하며, 결국 인도 독립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이끌어냈습니다.

어느 날 그를 지지하고 따르던 청중들 중 하나가 “당신의 메시지를 글로 정리해 달라”라고 부탁했을 때, 간디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내 삶 자체가 나의 메시지다.”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는 진리를 강조하였죠. 그의 검소한 옷차림, 매일 손으로 직접 실을 뽑던 모습, 그리고 끝까지 폭력을 거부한 선택은 모두 그가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이었습니다. 많은 지도자나 사상가는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이끌었지만, 간디는 철저히 자신의 삶 자체가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죠.


2.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솔선수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끊임없는 전쟁과 패권다툼의 시대인 동시에, 다양한 정치와 철학이 생겨난 시대이기도 하며, 유능한 병법가들도 다수 배출되었던 시대입니다. 동양의 대표적인 병법가였던 손무의 손자병법과 더불어 병법서의 양대산맥이라고 불리는 오자병법(吳子兵法)으로 유명한 오기(吳起, 기원전 440~381) 역시 이 시기의 장수였습니다. 총 48편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나, 현재 남아있는 건 6편밖에 없지만, 구체적인 용병술과 방법론만으로도 위대한 병법서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장수는 병사와 기쁨을 함께하고, 병사와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

— 《오자병법》중에서


오기는 병사들을 단순히 수동적인 객체로 보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동기와 욕망이 다른 인간이므로 단순한 상벌로만 사람을 다루지 않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부분 역시 중요하다고 본 것이죠. 이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병사에 대한 사랑과 평등한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전쟁을 떠나 있는 동안에는 군영에서 늘 병사들과 함께 먹고 자며, 병사의 곪은 상처를 직접 빨아내어 고름을 뽑아주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어느 병사의 어머니가 이를 보고 통곡하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녀는 “지난번에도 오기가 남편의 상처를 빨아주었는데, 남편은 오기 장군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이제 아들까지 그렇게 할까 두렵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죠.

이 일화는 오기가 병사들에게 단순히 명령만 내리는 장군이 아니라, 그들의 신뢰와 헌신을 이끌어낸 리더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엄격한 상하 간의 벽을 허물고,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그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심과 희생정신을 얻어낸 것이었습니다.


3.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기


19세기 유럽은 합리주의와 체계적 철학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독일의 관념론으로 대표되는 헤겔(Hegel, 1770~1831)은 이성과 절대정신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방대한 철학 체계를 세워 인간의 삶을 하나의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구조 안에서 설명하려고 했죠. 반면 이를 반대한 철학자가 바로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입니다. 덴마크 출신의 이 철학자를 우리는 흔히 “실존철학의 아버지”로 부릅니다. 그는 헤겔이 주장한 ‘보편적 이성’이 인간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으로서의 나”였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가야 할 것은 추상적인 철학 체계 속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삶 속에서 어떤 선택과 결단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삶을 크게 세 가지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미적 단계(쾌락과 즐거움,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삶. 그러나 결국 공허와 절망에 빠진다.), 윤리적 단계 (책임과 의무, 사회적 도덕을 따르는 삶. 그러나 이 역시 인간 존재의 근본적 한계에 봉착한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단계 (절망 속에서 신 앞에 선 개별자로서 자신의 실존을 결단하는 삶. 믿음을 통해 실존은 구원에 도달한다.)가 그것이죠.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특히 “절망”이라는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절망은 인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피하려 할 때 발생하는 실존의 질병이지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만드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주체성은 진리다. (Subjectivity is Truth.)
— 키에르케고르, 『철학적 단편』


이 말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객관적 체계 속에서 증명되는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진지하게 살아내느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단독자’로 정의했습니다. 단독자는 사회적 집단이나 보편적 구조 안에서 사라져 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신 앞에서 홀로 선 개별적 인간입니다. 그는 이 단독자로서의 결단과 자기실현을 통해 ‘진정한 자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러한 사상은 훗날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로 이어지는 근대 실존주의 철학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4. 과학에서 말하는 생명의 메시지


과학에서도 인간 개개인의 삶이자 무늬, 메시지를 연구하는 분야가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1990~2003)입니다. 생명체, 특히 인간을 과학적으로 해독하고 이해하려는 인류 최대 규모의 연구였죠.

게놈(genome)이란 유전자(gene)와 세포핵 속에 있는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한 생명체가 가진 유전정보(DNA) 전체를 말합니다. 이것이 생명현상을 결정짓기 때문에 흔히 '생물의 설계도'라고 불리죠. 인간 게놈은 23쌍의 염색체 안에 있는 DNA 4종의 염기(A, T, G, C)가, 일정한 순서로 약 30억 개의 염기서열로 이루어진 방대한 텍스트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고 살아가게 될지를 기록한 자연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죠.

199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유럽, 일본 등 여러 나라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목표는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규명하고,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며,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들의 역할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2003년, 국제 협력의 성과로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완성되었고, 인류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생명의 언어”를 읽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성과는 암, 희귀 질환, 유전병 등 질병 치료와 예방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으며, 생명공학과 의학 발전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의 유전정보 공개에 따른 사생활 문제, 인간복제나 맞춤형 아기와 같은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삶을 해독하고, 생명 그 자체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위대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문학에서 말하는 타인의 이정표가 되는 삶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이었던 이양연(李亮淵, 1707~1788)은 평생 청렴하고 강직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남긴 시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이 바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입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부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되리니.

— 이양연,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 중에서


홀로 힘들고 외로운 삶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곧은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그럼으로써 나의 흔적이 타인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짧고 간결한 시를 통해 깊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두 분의 위인이 얽혀 있습니다. 서산대사와 김구 선생이죠. 서산대사는 이 시를 지은이로 알려져 아직까지 논쟁이 있는 부분이 있고, 김구 선생은 자신의 애송시로 이 시를 들었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쨌든 시 속 주인공처럼 두 분의 삶 역시 타인에게 귀감이 되는 발자취를 남긴 것만은 분명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팔십의 나이에도 승병들을 조직해 백성들을 구하는 의로운 길을 걸으셨고, 일제치하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쳤던 투쟁의 길을 걸으셨다는 점에서 말이죠.


오늘도 삶의 메시지를 써내려 가며


하루가 지나갑니다. 때론 치열하고, 때론 한가하며, 어느 땐 여유 있고, 또 어느 땐 촉박하며, 의미가 있거나 의미가 없게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지나간 오늘이 내 삶이라는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저서인 『코스모스』에는 유명한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우리 모두는 '별의 자손'이라는 말이죠. 우주의 빅뱅이 일어나고 수소의 핵융합 과정에서 다른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졌고, 이러한 원소들이 별을, 행성을, 무생물과 생물을 만들어 결국 우리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죠. 즉 우리의 몸은 결국 우주의 일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처럼 우리도 각자가 빛나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자기만의 삶, 자기만의 메시지를 가진 위대한 별의 자손들이죠. 이처럼 소중한 자신이기에 생의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소중한 서사로 써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나보다 앞서 시대를 살았던, 세상을 위해 밝고 올바른 메시지를 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어지러운 발자국이 아닌 곧고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다 사라지는 이유이니까요.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우리 모두의 인생도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을

갖도록 해야겠습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

이전 21화일언일맥(一言一脈) 스물한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