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스물세 번째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by 이민행

1. 불안, 부정과 긍정


놀이기구를 좋아하시나요? 세계 곳곳의 테마파크에는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들이 오늘도 관광객들을 태우고 열심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10대, 20대 때는 같은 놀이기구를 연속으로 타며 즐거워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갈 기회가 별로 없게 되는군요. 좌석에 앉아 안전바나 벨트가 채워지고, 기구가 움직이며 운행이 시작하기 직전이나 정점에서 떨어질 일만 남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도의 위험신호를 느낍니다. 가슴이 떨리고, 혈압은 상승하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하죠. 그러다 빠른 속도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움직이는 속도에 커다란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보통 우리가 '스릴 있다.'라고 하는 그 느낌이죠.

영어 단어인 스릴(Thrill)의 사전적 의미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거나 마음을 졸이게 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적, 신체적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가 또 있습니다. 바로 '불안(不安)'이죠. 마음과 몸이 편안하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보니 보통 우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비슷한 상태를 표현한 스릴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는 불안한 상태를 싫어합니다. 안정적이고 평온함을 추구하는 게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연한 본능일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일부러 돈을 내고 스릴을 즐기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불안한 상태로 만들어가면서요. 그렇다면 과연 불안이라는 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모순된 감정을 명쾌하게 정리한 말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Angest er frihedens svimmelhed.)

— 쇠렌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 1813~1855)


이전 편인 간디의 명언에서도 언급드렸지만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는 덴마크 출신의 철학자이자 실존주의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했던 헤겔의 철학에 반기를 들고, 구체적인 인간의 내면과 개별적 실존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으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죠. 이후 실존주의 철학으로 분류되는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들인 사르트르, 하이데거, 장 폴 샤르트르와 니체 등에 큰 영향을 주게 되죠.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는 말은 그의 저서 『불안의 개념(The Concept of Anxiety, 1844)』에서 등장한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는 인간의 불안을 단순한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자유의 본질적인 징후로 보았습니다. 불안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즉,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높은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그는 아래로 떨어질 수도,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은 ‘떨어질 가능성’에서 오지만, 동시에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에 불안이 생기는 것이죠.

즉 인간은 자유롭기에 불안하고, 불안하기에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이는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불안의 가치


중국 전국시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라는 올바른 정치에 대한 설명이 철학의 주류였다면, 이와는 괘를 달리하고 다른 방향의 사유를 이어간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장자(莊子, 기원전 369~286)죠. 공자나 묵자, 맹자, 순자처럼 규정된 도덕과 규범을 세워 인간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은 그는, 인간의 불안과 고통은 세상에 대한 집착,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에 의한 집착이라고 봤습니다. 그러한 불안을 넘어서 자유로운 경지, 도의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죠.

장자에게 있어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자신을 구분하고, ‘나는 이것이다’라고 고정하려는 자아의 긴장에서 비롯됩니다. ‘나’라는 중심이 생기면, 곧 ‘나 아닌 것’이 생기고, 그 경계에서 두려움과 비교, 그리고 불안이 자랍니다. “지인무기(至人無己)”, 즉, 나를 잃은 자가 아니라, 나에 매이지 않는 자가 참으로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귀근왈정, 시위복명)

"세상 만물은 무성하게 피어났다가도 결국에는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고요함이고, 본래의 운명으로 돌아간다."

— 『장자』 제물론(齊物論) 중에서


세상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화란 안정이 아닌 불안정, 불안을 의미하죠. 변화 속에서 인간의 마음도 여기저기 휩쓸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의 바닥, 근원에는 도(道)가 있습니다. 불안의 이면을 바라보고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장자는 말합니다.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죠.


3. 과학에서 말하는 불안의 가치


인간의 뇌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합니다. 이성과 언어를 지배하는 영장류의 뇌, 감정을 담당하는 포유류의 뇌, 마지막으로 생존과 본능을 담당하는 도마뱀의 뇌죠. 인류가 출현하고 문명이라고 불리는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인간은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 살아남게 해 준 것은 도마뱀의 뇌입니다. 먹이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며, 낯선 집단과 마주치는 순간순간마다 위험을 감지하고, 대비하도록 설계되었죠.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진화신경학에서는 불안을 '결함이 아니라 적응'이라고 바라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위협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신체와 정신을 대비상태로 끌어올리는 경보 시스템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경보시스템을 작동하는 뇌의 회로는 편도체(amygdala, 아몬드 모양의 뇌 부위)와 시상하부전핵상(BNST, 뇌의 편도체 확장 영역에 속하는 변연계 구조)입니다. 편도체는 순간적인 위협을 감지하고, BNST는 불확실하고 지속적인 위험 신호를 오래 유지합니다. 이 덕분에 인간은 현실의 위험뿐 아니라, 다가올 위험까지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불안이 느껴질 때, 우리의 뇌와 몸은 이미 작은 전투태세에 들어갑니다. 시상(thalamus)과 감각피질은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해마(hippocampus)는 과거의 기억과 연결해 상황을 해석합니다. 그다음 시상하부(Hypothalamus)는 자율신경계를 자극해 심박수를 높이며, 부신(adrenal gland)은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분비해 에너지를 동원하죠. 이렇게 불안은 우리 몸 전체를 ‘예비 가동 상태’로 만들어, 위험이 닥쳤을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과학에서 말하는 불안은 '살아있다'는 신호이자, '준비되어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4. 문학에서 말하는 불안, 그리고 존재의 증명


20세기 초, 산업화와 전쟁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인간은 불안의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진보와 발전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은 무너졌고, 개인의 삶은 점점 더 위축되어만 갔죠. 이러한 시대상을 바라보며 인간이 겪는 소외와 존재의 불안을 정확하게 그려낸 작가가 바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입니다. 체코 프라하 출신의 그는 당시 사회의 비인간화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작품의 전반에 녹여내 섬세하고 논리적이면서도 꿈처럼 비현실적인 작품을 써 나갔습니다. 그런 그의 대표작이 바로 유명한

『변신』입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카프카『변신』 중에서


세단락의 짧은 중편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평범한 세일즈맨이었던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벌레로 변해버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전히 출근을 걱정하고, 상사에게 변명거리를 찾기도 하지만 가족과 사회는 그의 외모를 혐오하고, 방 안에 가두고 맙니다. 결국 아무런 주위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카프카는 그레고르의 변신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 불안을 이야기합니다.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삶에 대한 불안이 시작되며, 결국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으로 바뀌게 되죠. 사회적인 역할, 가족의 기대, 노동의 굴레라는 허물을 벗었을 때, 즉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생겨나는 불안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습니다. 주인공은 벌레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족과, 직장, 사회에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습니다. 삶의 대부분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다는 것을요.

변신 속에서 말하는 불안은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통증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증거이자, 진정한 자신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트리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예술에서 말하는 감정의 기록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불안과 공포는 예술에서 좋은 소재가 되곤 합니다. 특히 이러한 소재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한 대표적인 화가로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가 있죠. 노르웨이 출신의 이 화가는 어린 시절부터 병과 죽음, 가족의 상실 등을 경험하며 겪은 불안정한 감정의 상태를 예술로서 승화시켰습니다.


두려움과 질병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에드바르 뭉크


그의 그림은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의 풍경이었고, 이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고는 했습니다. 뭉크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역시나〈절규(The Scream, 1893)〉입니다. 인간 내면의 불안을 시각적으로 이처럼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싶죠. 핏빛의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작품 속 주인공은 다리 위에서 고통스럽게 얼굴을 움켜쥔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무심한 듯 그저 자신들의 갈길을 갈 뿐이죠. 휘몰아치는 곡선과 일그러진 색감은 주인공의 심경, 나아가 화가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뭉크에게 있어 불안과 병, 죽음은 예술을 탄생시키는 자극제의 역할을 했습니다. 내면에 담긴 괴로움과 고통을 직시하며 캔버스에 색과 선으로 바꾸었죠. 결국 그의 불안은 감정의 기록이자 예술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 속에서


새해나 생일,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각자의 소원을 빌곤 합니다. 건강, 일, 학업, 부, 화목 등 저마다의 바람은 다르지만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소망은 같습니다. 모두 뜻대로 되는 삶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든 크든 시련과 실패, 불안정한 시간과 공간들이 인생의 앞 길에 언제든지 나타납니다.

음과 양, 행과 불행, 안정과 불안 등 모든 개념들은 상대적이고 서로를 전제로 합니다. 안정된 상태는 결국 불안한 상태의 상대적은 개념이며, 불안함이 없다면 안정됨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죠. 그렇기에 안 좋은 것, 피해야 하는 것으로만 규정해서는 안됩니다. 여러 분야에서 불안에 대해 탐구해 온 이유는, 결국 회피가 아니라 직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불안이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또 다른 이면을 이끌어 주는 언어로서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불안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많은 관문들을 통과할 때 우리는 항상 불안한 감정상태를 경험하곤 합니다. 입시, 취업, 결혼, 승진 모두 현재 내가 있는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 과정들이죠. 부처의 가르침에 나오는 '이 언덕을 넘어 저 언덕으로 나아가야(마하반야바라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평안을 유지하고 안주하려고 하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불안을 감수하면서 언덕을 넘은 사람들이 비로소 자유라는 큰 결실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인생은 멈춰 있는 계단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에스컬레이터죠.

불안해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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