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다른 방식으로 펼친 주장이다.
어린 시절,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말을 정말 잘했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이지만 웬만한 어른들과 얘기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입심이 대단했죠. 주변 사람들은 동생의 당돌하지만, 명석한 말솜씨와 주장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셨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기억은 가물거리긴 한데, 어머니께서 우리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둘을 앉혀놓고 하신 말씀이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였습니다. 당시의 어린 마음에는 말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말을 안 하면 어떻게 내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말을 안 하는 게 더 좋은 것인지 알쏭달쏭했었죠. 그런데 인생을 지나오면서, 잊혀지는 많은 기억들 중에서 그때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게 될 만큼 성숙해졌죠.
우리는 침묵하는 것에 대하여 소극적이거나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침묵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서만 나오는 행동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기다려주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가다듬으며, 강력한 저항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죠. 특히나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확고히 하며 외부에 대항하는 힘으로써 침묵은 최고의 무기가 되어주곤 합니다. 이러한 침묵의 힘에 대해 말한 위인이 쿠바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입니다.
침묵은 다른 방식으로 펼친 주장이다.
—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라 세르나 (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1967)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통해 널리 알려진 혁명가이자 정치가입니다. 평생 동안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 싸우며 변화를 추구했던 인물로 평가받죠.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사가 됐던 그는 남미 대륙을 오토바이로 여행하며 빈곤과 착취의 현실을 직접 마주했습니다. (2005년에 개봉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바로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이때 받은 충격이 결국 그를 혁명가로써의 삶으로 이끌게 되죠.
혁명이란 결국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치의 회복이었고, 수많은 고난과 저항에 맞서 싸우는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침묵은 회피나 비겁함이 아니라, 의지와 저항의 또 다른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힌두교와 불교 등 인도계 종교 전통에서는 묵언이라는 마음수양방법이 전해 내려옵니다. 특히 불교에서 침묵은 마음속 번뇌를 가라앉히고 진실을 비추기 위한 수행의 한 과정이죠. '말하지 않음'을 넘어 본래의 자기와 마주하는 실천에 가깝습니다. 말은 업(業)을 짓는 행위로 선업이 될 수도 있지만, 욕설이나 비난, 거짓 등의 악업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내뱉은 말이 결국 자신의 마음상태를 나타내고, 말이 많아질수록 번뇌가 그 틈을 타 자라게 된다고 보는 것이죠. 부처께서는 쓸데없는 말은 마음을 흐리게 하고, 감정이 섞인 말은 상처를 남기며, 생각이 익지 않은 말은 자신을 무너트린다고 하였습니다.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 석가모니,『잡보장경』 (雜寶藏經) 중에서
묵언은 자신의 내면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한 용기 있는 수행입니다. 말이 많을 때 사람은 바깥세상에 주의를 빼앗기지만, 침묵을 지킬 때 시선은 자연스럽게 주변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 향하게 되죠. 말을 멈추는 순간, 감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마음의 욕망이 무엇인지, 집착이 어디에 있는지가 선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수행자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번뇌의 뿌리를 끊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침묵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부처의 무언답(無言答)입니다. 제자들이 깊은 철학적 문제나 형이상학적 질문을 할 때, 부처는 종종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답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의 진리는 각자가 수행을 통해 체험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죠. 모든 자기 수양의 출발점으로서 묵언은 감정의 파도를 가라앚히고 세상을 올바르게 보기 위한 부처의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서양의 현대 철학을 논할 때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20세기 언어철학을 뒤바꾼 사상가로, 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의를 시도했죠. 당시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겪고 있었고,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논리, 과학조차 세계의 본질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깊게 퍼져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논리철학논고』(1921)
그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철저하게 구분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세계의 ‘사실’을 기술할 수 있지만, 세계의 의미와 가치, 윤리와 삶의 목적처럼 언어로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차원에 대해서는 결국 제대로 말할 수 없다고 보았죠. 언어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전능한 도구가 아닙니다. 언어가 닿지 않는 차원을 억지로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혼란만 낳기에 언어의 한계를 넘는 지점에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철학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정확히 가리키는 철저한 지적 정직함이었죠.
그는 언어를 논리적으로 해체함으로써 철학의 역할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논리 분석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의 구조를 밝혀낸 뒤, 우리가 아무리 정교한 문장을 만들어도, 결국 언어는 세계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고 했고, 이는 논증하거나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보여야 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죠.
말로 해명할 수 없는 것은 말이 아니라 조용히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를 가리켜 우리는 천체(天體)라고 부르는데,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과 같은 항성(별), 항성의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와 같은 행성, 또 이러한 행성을 공전하는 달과 같은 위성이 있죠. 여기에 태양의 주위를 긴 타원 궤도로 공전하는 혜성, 가스와 먼지 구름으로 이루어진 성운과 수많은 별들의 집단인 성단, 그리고 이들 모두가 모여 있는 거대한 집단인 은하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천체 중에서 특이한 존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블랙홀(Black Hole)이죠.
블랙홀은 일반적으로 거대한 항성이 수명을 다했을 때 중력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러한 특이점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구체의 경계 내부에는 빛이 바깥으로 전달되지 않는데 이 경계를 사건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르며, 이를 외부의 관측자가 보기엔 텅 빈 암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블랙홀이죠.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주변 현상들로 그 존재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주변 별들의 궤도가 급격히 휘어지는 움직임, 빛이 굴절되는 중력렌즈 현상, 충돌로 발생한 중력파의 흔적, 사건지평선을 따라 회전하며 빛이 휘어지는 모습 등을 통해서 말이죠. 2019년, 인류는 처음으로 블랙홀의 그림자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작 블랙홀 자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블랙홀의 존재가 남긴 자취, 즉 그림자와 같은 암흑의 중심부와 주변을 감싸는 빛의 고리는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블랙홀의 실재를 말해주었죠.
우주라는 공허하고 광활한 세계 속에서, 조용하지만 그 존재감을 유감없이 내뿜는 블랙홀이야 말로, 과학에서 말해주는 침묵의 존재가 아닐까요?
미국문학을 넘어, 세계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의 소설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전후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였던 헤밍웨이는 쿠바에서도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체게바라의 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와도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하죠.
어쨌든 그는 젊은 시절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는데, 이 경험이 훗날 그의 문학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전후 상황이나 장황한 설명 대신 즉각적으로 사건만을 서술하는 간결한 문체로 보도자료를 써야 했고, 이는 훗날 그의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하드보일드 스타일(Hard-Boiled Style), 불필요한 수식 없이 사실만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문체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문학적 원리가 바로 빙산 이론(Iceberg Theory)입니다.
“빙산의 힘은 그 8분의 7이 수면 아래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노인과 바다』 중에서
그는 문학 작품에서 독자에게 노출되는 것은 전체 이야기 중 일부에 불과하며, 보이지 않는 거대한 부분(말하지 않은 감정과 진실)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독자에게는 그중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말하지 않은 여백 속에서 작품의 진짜 의미가 살아난다고 본 것이죠.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무기여 잘 있거라』의 프레더릭 헨리, 『킬리만자로의 눈』의 주인공은 감정을 절제하죠. 하지만 그 침묵이 독자의 감정을 더욱 이끌어 내는 결과를 만듭니다.
말하지 않는 침묵이 문학적 진실을 더욱 드러내게 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유무상생(有無相生)입니다. '있고 없음이 서로를 낳는다'는 이 뜻을 잘 설명하는 예시로 비어있는 방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이라는 존재는 직육면체의 공간, 벽과 천장이라는 물리적 구조를 생각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 내부의 비어있는 공간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방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겉으로 보이는 구조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오히려 텅 빈 내부의 여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사소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은 말(言)입니다만 말이 없다고 해서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야말로 마음의 진실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경우가 있죠. '없음'의 형태로 인식되는 침묵이지만 그 안에 강력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수양의 방법으로, 진실에 닿는 마지막 경계로서, 때로는 그 자체로 강력한 증명으로 말이죠.
『굳이 많은 말이 아니어도 됩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가지니까요.』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