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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나의 행복일기 Aug 30. 2023

우르릉 쾅쾅 천둥 친 날

삼삼월드 특강

 “싫어, 난 버스 탈 거야!” 호야가 큰 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수요일은 호야가 방과 후에 장구와 수영을 하는 날이다. 장구 학원과 수영장은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데 버스를 좋아하는 호야를 위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수영을 마치고 미닫이문이 달린 버스, 지하철, 지상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수영 마친 뒤에 저녁은 보통 떡볶이나 짬뽕으로 외식한다. 그런데 이날은 내가 삼색 정기모임에서 특강을 하는 날이다. 

 올해 초 삼색 브랜딩 1기로 브랜딩을 배웠는데 동기를 끼리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온라인 모임을 하고 있다. 리더님이 내게 특강을 요청해서 일단 수락했다. 요즘은 내 원칙은 웬만하면 들어온 제안은 거절하지 않는 것이다.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해도 일단 한다고 하고 그다음부터 준비한다. 강의내용은 원래는 ‘긍정 확언’으로 하려 했다. 요즘 ‘내면소통’ 책과 김주환 교수님의 유튜브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김주환의 내면소통 유튜브’에서 긍정 확언에 대한 논문들도 소개해 주어서 해당 논문을 읽어보고 강의안을 만들어볼까 생각했다. 강의 제목은 일단 ‘나와 잘 살기’로 정했다. 특강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어 시간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월요일에는 호야를 센터에 데려다주고 민이를 데리러 축구교실에 가야 한다. 민이를 데리러 집으로 돌아오는데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센터에서 국어 수업하다가 아이가 토했다고 한다. 어쩐지, 아까 학교에서 나올 때부터 뭔가 불편해 보여 가지고 있던 소화제 시럽을 먹였는데 별 소용이 없었나 보다. 도움닫기 수업이 있었던 날인데 학교에서 방과 후에 담임선생님이 주신 컵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학교 앞에서 차를 태워 센터로 이동하는 동안 호야가 좋아하는 찬 음료수도 먹었다. 에이, 차 안에서 음료수는 주지 말걸, 괜히 주었네. 어쩌면 배탈이 난 것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어릴 적 키웠던 병아리 생각이 났다. 동네에서 얻어온 병아리를 애지중지 키웠는데 채소를 주는 대로 다 꼭꼭 집어먹더니 그만 배탈이 나서 죽어버렸다. 호야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배 사정을 보지 않고 먹는 경향이 있다. 요즘 들어 그런 경향이 심해지는 것 같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고 음식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만이 많고 이는 건강상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다음날 아이를 데리고 소아청소년과에 가니 독감이란다. 그래서 속이 안 좋았구나, 병원에서 수액을 맞히고 집에 데려와 쉬게 했다. 그 주는 통째로 학교를 결석하게 되었다. 아이가 집에 있으니 강의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호야는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으니 좋아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나니 강의 준비를 하나도 못 한 상태에서 다음 주가 되었다. 새로운 강의내용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할 수 없이 예전에 배웠던 감정코칭과 회복탄력성 내용으로 강의를 준비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강의 시간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저녁 외식을 한 후 지하철, 지상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저녁 9시 근방이 된다. 강의 시작 시각은 저녁 8시이다. 수영 마치는 시간이 6시이니 운전하면 30분 만에 집에 올 수 있다. 일단 해보자! 생각하고 이날은 차를 타고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호야에게 알리는 것은 며칠 전에 미리 알리면 ‘싫어’의 무한반복 공세에 시달릴 수 있어 고민하다가 당일에 말하기로 했다. 

 수요일은 방과 후에 바로 센터에 가야 해서 내가 학교 앞에서 기다린다. 학교를 마치고 나온 아이에게, 오늘은 엄마가 저녁에 강의해야 해서 수영 끝나고 차 타고 집에 오자 말했더니 아이가 큰소리로 길가에서 ‘싫어’를 외친다. 엄마도 호야가 버스 좋아하는 거 알지,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 없어, 했더니 아이가 핸드폰으로 보면 되잖아 이런다. 줌 강의가 있을 때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보곤 했다. 지하철에서 항상 마주 보고 앉는 편이라 모를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구나, 이번에는 강의 듣는 게 아니고 엄마가 학교 선생님처럼 강의하는 거야 했더니 이해가 안 되는 눈치다. 고심 끝에 장구 학원은 지상철 타고 혼자 가도 되라고 말했다. 호야는 그래도 난 버스가 제일 좋은데 이런다. 센터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상담하고 있는데 호야가 날 쳐다보지도 않고 생 나가버린다. 장구 학원은 지상철로 아홉 정거장이 걸리는데 호야 혼자 가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아이 혼자 가는 듯이 아이는 앞서가고 나는 뒤에서 따라가는 것은 여러 번 했다. 이 노선을 벌써 이 년째 다니고 있다. 선생님과 상담하고 나도 지상철을 타러 갔다. 핸드폰 위치추적을 해보니 노선대로 잘 가고 있다. 하차 역에 내려 또다시 위치추적을 해보니 장구 학원으로 위치가 나온다. 잘 갔구나. 그런데 아직 장구 선생님이 오시려면 꽤 시간이 남았다. 얼마 전부터 장구 선생님이 전 시간에 외부 강의가 있어서 아이가 스스로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 기다린다. 아이에게 화상통화를 해보니 아이가 ‘왜?’ 이런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와서 좀 많이 기다려야 해….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전화를 툭 끊어버린다. 괘씸한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얼른 인근 카페로 갔다. 이십 분 여유가 더 생겼다. 카페에서 부족한 강의 준비를 열심히 했다. 장구 수업 마칠 시간이 되어 장구 학원에 갔다. 개인 수업인데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이 뒤에 앉아있다. 수업 상담하러 오신 분들인데 얼떨결에 호야가 그동안 배운 장단을 공연했다고 한다. 아이는 장구 수업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별 저항 없이 나를 따라 차를 타러 온다. 호야가 혼자 버스 타러 간다고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수영 수업은 별 탈 없이 마쳤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저녁 식사를 위한 호야의 협상이 시작된다. 요지는 어쨌든 외식하고 싶은 모양이다. 평소에 먹던 떡볶이는 안 된다고 하니 호야가 엄마, 그럼 햄버거는 어때? 저번에 갔던 그 햄버거집 갈까? 묻는다. 이럴 때 보면 느린 아이가 맞나 싶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아주 집요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지금 호야의 목표는 ‘오늘 저녁 외식하기’이다. 저번에 간 그 햄버거집은 멀어서 안 되고, 다른 햄버거집 가서 포장해서 집에서 먹는 거로 아이와 합의했다. 맥도널드에 주차하고 키오스크에 가서 호야가 직접 햄버거를 고른다. 처음에는 메뉴 고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이제는 척척 한다. 이런 것도 자꾸 해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집에 도착해서 아파트 앞 동 시댁에 있는 민이를 데리러 갔다. 호야는 햄버거를 빨리 먹고 싶은지 자기는 먼저 집에 간단다. 민이를 시댁에서 데리고 와서 저녁은 햄버거로 해결했다. 남편이 퇴근하자 나는 얼른 강의 준비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강의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하게 한 것 같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발표할 때는 많이 떤다. 심지어 성당에서 단상에 나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목소리가 떨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온라인에서 강의할 때는 전혀 떨리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편안한 환경에서 강의해서 그런 것 같다. 내게 강의는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강의를 준비할 동안은 어떤 내용과 이야기를 준비하는 게 좋을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된다. 강의 후에 들으신 분들이 좋다고 해주시고 커피값도 보내주셔서 황송했다. 

 오늘 잘한 것은 호야가 길거리에서 소리를 질렀을 때, 센터에서 생 나가버렸을 때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기다려 준 것이다. 아이가 나름의 감정 표현하는 것을 허용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느린 아이들은 융통성이 부족해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예전에는 아이가 그저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상담하면서 이런 점이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 때문이라고 알게 되었다.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면 항상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기가 힘들다. 가끔은 아이가 루틴에 너무 얽매이지 않도록 이런 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어쨌든 삼색월드 덕분에 호야가 지상철 혼자 타고 장구 학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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