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의 첫 합창단 공연
앗, 이를 어쩌지, 공연장 문이 닫혀있다. 안내원이 첫 번째 무대가 끝나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친구가 늦게 온다고 해서 초대 입장권을 접수대에 맡기고 나니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다.
호야의 소년소녀합창단 첫 정기 공연이다. 이 공연을 한다고 호야가 지난 4개월 동안 주말마다 열심히 연습했다. 공연장 앞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으로 공연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이 작게 보여서 호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화면을 보고 있는데 ‘들어가세요’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첫 번째 무대가 끝나서 공연장에 들어갔다. 가족들이 앉아있는 자리로 갔다. 곧 두 번째 무대가 시작되었다.
호야가 보인다. 두 번째 줄에 있다. 파트를 보니 메조 알토이다. 사십여 명 되는 합창단원들이 무대에 나와 섰는데 유독 호야가 움직임이 커서 눈에 띈다. 몸을 건들건들하는 것이 어디 아픈가? 걱정된다. 재킷 단추도 안 잠겨 있다. 점심때 짬뽕 먹고 싶다고 해서 해줬는데 맛있게 먹고 나더니 배가 아프다고 했다. 괜히 매운 것 먹였나? 소화제를 먹이고 마지막 연습에 데려다줬다. 공연 잘하려나…. 걱정이 된다. 드디어 노래가 시작됐다. 호야가 온몸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다 외웠네? 신기할 따름이다. 입을 참새처럼 쭉쭉 벌리고 노래를 부른다. 입 모양과 동작이 지휘자의 지휘와도 정확하게 맞는 것 같다. 호야가 무대에 서서 합창하다니 감개무량하다. 너무 기뻐서 내 눈에 눈물이 고인다. 노래 중에는 영어 노래도 있다. 이 노래를 어떻게 외웠지? 신기할 따름이다. 마지막 앙코르곡은 H.O.T의 ‘캔디’였다.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합창단 연주회가 무사히 끝났다. 감동이 밀려온다. 이걸 다 해내다니…. 대단하다. 넉 달 동안 아이도 나도 힘들어서 괜히 했나, 욕심이었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무대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니 합창단 하길 잘한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지난겨울에 운전하다가 길거리에서 본 현수막에서 시작되었다.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가던 어느 날이었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고가 밑에 못 보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소년소녀합창단’ 모집, 저게 뭐지? 얼른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봤다. 집 근처에 있는 아트센터의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고 재개관을 하는데 소년소녀합창단 신입 단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모집 나이를 보니 호야가 최연소로 가능하다. 이거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교육열 극성인 이 동네에서 ‘공부를 못하고 너무너무 싫어하는’ 호야를 어떻게 키우지, 하고 고민하던 참이었다. 호야만 생각해서는 시골로 이사하거나 해외로 가고 싶어질 정도이다. 하지만 여러 여건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 일단은 이 동네에서 가능한 한 버텨 볼 생각이다. 며칠 전 학기가 끝나고 호야가 학교에서 가져온 배움 성장기록 포트폴리오를 보았는데 친구들끼리 서로 칭찬해 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대여섯 명의 아이가 한두 문장씩 글을 썼는데 모두 이런 내용이었다. ‘넌 공부를 못하는데 그래도 잘 웃고, 밝아서 좋아. 넌 단원평가를 많이 틀렸는데, 그래도 웃고 있네.’ 아이가 밝다는 내용이었지만 순간 머리가 띵 했다. 집에서 절대 공부 공부하지 않는데 이미 또래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구나. 작년에 북클럽 하면서 육아서적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그중에 아이의 자존감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호야에게 너는 잘하는 거랑 못하는 게 뭐야? 엄마는 책 읽기는 잘하는데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하기, 달리기는 못해. 이랬더니 호야가 ‘난 공부를 못해’ 이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남편과 의논하고 합창단에 지원서를 넣었다. 오디션까지 날짜가 2주 정도 남아있다. 무슨 곡을 부르지? 평소 좋아하는 동요를 선택해야 하나? 처음에는 그냥 좋아하는 노래 부르면 되지, 생각했다. 그런데 명색이 ‘오디션’이니 뭔가 전문적인 지도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파트 앞에 있는 음악학원 선생님에게 2년 만에 연락했다. 호야가 다섯 살 때부터 2년 정도 다닌 학원이었다. 처음에는 피아노 가르치려고 갔는데 아이가 어리다고 동요 배우기를 권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학원생끼리 작은 공연도 하곤 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호야가 양복 입고 무대에 서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 그만둔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선생님과 통화하니 반가워하셨다. 노래는 아이가 좋아하는 ‘싱그러운 여름’으로 골랐다. 세 번 정도 개인지도를 받기로 했다. 첫 번째 수업 후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선생님이 호야, 공부 잘하죠?, 호야가 제 입 모양을 그대로 따라 하네요 하신다. 그놈의 공부, 아이 앞에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잘한다고 하기도 그래서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다. 드디어 오디션 날이 되었다. 아이는 오디션이 뭔지 이야기해 줘도 감이 없다. 양복 입는다고 호야를 구슬려 오디션 장소에 갔다. 오디션 장소는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어수선하다. 부모는 못 들어가고 아이만 번호표 받고 들어갔다. 민이와 함께 건물 앞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호야가 나왔다. 호야는 별로 긴장한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떨떠름한 표정이다. 무슨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결과 발표날이 되었다. 아트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이름을 확인하니 와! 합격이다. 기분이 좋았다. 한 명 빼고는 모두 붙었다. 코로나 이후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신입 단원을 많이 뽑은 것 같았다. 호야에게 합창단 합격했네, 축하해! 했더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오리엔테이션 날짜가 되어 아이를 데리고 합창단에 갔다. 지휘자와 선생님들이 인사를 했다. 참석한 부모들을 보니 아, 이곳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학부모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었다. 정기 연주회는 원래 11월에 있는데 올해는 특별히 아트센터 재개관 기념 연주회를 해야 해서 5월에 첫 연주회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연습했다. 노래 연습을 집에서 해오라고 했다. 악보를 보니 영어 노래도 있고 호야가 보통 좋아하는 신나는 리듬의 노래가 아니다. 호야가 할 수 있을까? 토요일 아침에 식탁에 앉아 악보를 펴놓고 이거 외워 오래 하니 음원을 들으면서 아이가 따라 부른다. 오 신기한데…. 악보를 읽는구나. 아이가 어려워해서 중간에 그만두긴 했지만, 피아노 가르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 아침마다 호야를 연습 장소에 데려다주고 나는 민이와 시간을 보냈다. 민이도 나와 단독으로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니 이 시간을 좋아했다. 이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아침에 호야와 민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 연습 장소에 갔다. 어느 날은 호야가 아침에 버스 타고 혼자 연습 장소에 가고 싶다고 했다. 호야가 보통 다니던 길이 아니라서 새로운 길을 익힐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다. 버스 혼자 타고 싶다길래 등교할 때 내리는 초등학교 정거장에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 반응이 영 못 알아듣는 것 같다. 결국 민이도 데리고 같이 버스를 타고 갔다. 정거장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버스 안에 있는 안내판을 가리키며 저기에 다음 정거장 이름이 나온다고 말해주고 안내판 화면을 동영상으로도 찍었다. 버스에서 같이 내려서 연습 장소까지 걸어갔다. 호야를 들여보내고 나는 민이를 데리고 성당에 갔다.
그날은 성당에서 특강이 있는 날이었다. 호야 연습 끝나기 전에 데리러 가야지 했는데 호야에게 전화가 온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끝난 모양이다. 호야와 영상통화를 해보니 벌써 버스정류장이다. ‘엄마, 내가 혼자서 버스 타고 집에 갈게.’ 아차, 그런데 그 길에서는 아직 한 번도 혼자 버스를 탄 적이 없다. 핸드폰 화면을 가만 보니 방향이 반대 방향이다. “호야. 거기는 우리가 아까 내린 정류장이야. 집에 가려면 길 건너서 반대 방향에서 타야 해.” 그랬더니 호야가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한다. 하긴 반대쪽에서 버스를 탄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없지. “거기서 기다려 엄마가 곧 갈게.” 했더니 호야가 “엄마 그럼 나 지상철 타고 갈게.” 한다. 다행히 호야가 있는 곳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지상철 정류장이 있다. 장구 배우러 다닌다고 지상철은 많이 타서 혼자 탈 줄 안다. 집에 가는 최단 거리는 아니지만, 호야가 아는 길로 빙빙 돌아서 지상철 타고 버스 타고 집에 온다고 한다.
합창단 연습도 그다지 맘에 들어하진 않는데 이런 보너스라도 있어야지 싶었다. 10분 걸릴 거리를 30분 걸려서 온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이날 이후로 호야는 합창단 연습 끝나고 혼자 버스와 지상철을 타는 재미에 빠져 큰 저항 없이 합창단 연습에 갔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학부모회에 참석하여 분위기를 보니 호야로서는 합창단에 단원으로 계속 있으면 다행인 듯했다. 내가 보기에 합창단의 장점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여러 학년이 섞여 있고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야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우니 계속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나이가 더 들어 발달센터를 그만 다니게 되더라도 합창단 활동을 하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느린 아이들의 특징인 조금만 힘들면 그만두겠다고 하는 부분, 그릿 정신 부족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연주회 한 달 전부터는 연습 시간이 토요일 10시에서 3시로 늘었다. 이때부터 아이가 조금씩 힘든 티를 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연습 장소도 먼 곳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버스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이다. 어느 날은 민이를 데리고 호야 연습 장소로 가고 있는데 성당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내가 도서관 왔다가 식당에서 호야를 만났는데 호야가 배가 아프데요. 점심시간이라 합창단 연습 장소 옆의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모양이었다. 내가 물었다. 많이 아파 보여? 아니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내가 곧 갈게. 식당에 도착해서 호야를 보니 식당에 혼자 앉아있는데 하나도 안 아파 보인다. 연습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았다. 호야에게 가방에 들어있던 어린이 소화제를 하나 먹이고 연습하러 들어가라고 했다. 호야는 집에 갈 수는 없어? 하더니 차마 안 들어간다는 말은 못 하고 느릿느릿 연습 장소로 간다. 내가 너무 심한가? 싶었지만 일단 두고 보자고 생각했다.
박수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아홉 곡의 노래와 앙코르 공연까지 공연이 모두 끝났다. 멋진 공연이다. 이런 공연에 호야가 참석했다는 것이 감개무량하다. 호야를 가르쳤던 피아노 선생님도 오셨는데 호야가 신나게 공연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하신다. 호야가 드디어 나왔다. 성당 공동체 어른들이 오셔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 호야의 모습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날씨가 아주 좋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연주회장 앞에서 호야가 여러 자세를 하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다. 호야가 이번 공연만 하고 합창단 그만두고 싶대요 했더니 사람들이 호야가 제일 신나게 노래 부르던데 한다. 아파트 앞에 있는 단골 치킨집에서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다. 호야 연주회 보러 와주신 성당 분들과 우리 식구가 함께했다. 올해 들어 가장 뿌듯하고 올 상반기 내내 아이 챙긴다고 신경 쓴 것이 보람 있게 느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