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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나의 행복일기 Aug 02. 2023

경계에 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애매모호함이다. 기면 기이고 아니면 아니지, 이쪽저쪽에 걸쳐있는 듯한 상황을 제일 싫어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명확히 대답을 안 하고 뭉개는 사람을 참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정과 행동이 빠른 편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보기와는 다르게 실수도 잦다. 결정해 놓은 것을 아차 싶어서 취소하는 일도 때때로 있다. 그런데 이런 내가 경계선 지능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어쩌다 보니 파란 원색을 좋아하는 내가 파스텔 색깔의 세계에 살고 있다. 아이가 경계선에 서 있다 보니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느린 학습자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강사가 말했다. 경계선 아이들과 부모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서 있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불안하고 외롭다. 내가 보기에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각자의 고립감과 싸워야 하는 필연적 과제를 안고 있다. 호야가 다니는 발달센터 대기실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부모들과 아이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모든 부모는 자동으로 나의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는 습성이 있다. 어느 날은 어떤 엄마가 ‘아이가 혼자 다니던데요?’ 물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센터에 혼자 온다고 했더니 그 엄마 입에서 한탄과 함께 ‘부럽다!’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 순간 난 멋쩍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 엄마와 더 이야기했다면 다음 말은 ‘아이가 혼자 잘 다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였을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특기는 부모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아이의 행동, 말, 주위의 평가에 더듬이를 길게 세우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또래보다 늦더라도 어느 순간 한글을 떼고, 구구단을 외우고 하면 역시 우리 아이는 그냥 좀 느린 아이야. 괜찮을 거야. 생각한다. 호야가 합창단 첫 발표회를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잘하네, 공부시키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호야가 초등학교에서 가져온 문제지에 담임선생님의 ‘문제 자체를 이해 못 함’이라는 빨간색 글씨를 보면 절망적인 마음이 든다. 호야가 초등학교 입학 직전에 발달검사를 하고 느린 아이인 것을 알았으니 나는 이 세계에 입문한 지 이제 삼 년째이다. 나만 이렇게 헷갈리나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특징이라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아이와 함께 경계선에 서 있다 보니 아이에 대한 상반된 입장과 의견에 늘 노출된다. 이제는 내가 중간지대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지만 초반에 나는 흡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 나오는 줏대 없는 임금님 같았다. 아이 상황에 대해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름의 조언과 충고를 해주는데 크게 두 부류가 있다. 

  먼저 청팀이다. 이 팀의 구성원들은 천성적으로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학업성적이 인생살이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이 양육에 엄마의 역할이 절대적이고 워킹맘의 아이들은 뭔가 결핍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그들은 말수가 적고 사교성이 부족한 나를 보면서 아이 양육에 뭔가 결함이 있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얼마 전 교육청에서 경계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바우처를 받아 미술치료를 하게 되었다. 보통 아이가 치료받는 동안 나는 기다리는데 그날은 원장 선생님이 교육청에 내야 할 서류가 있다면서 나에게 서명해 달라고 했다. 서명을 위해 서류를 넘겨보다가 상담사가 부모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아이의 첫 번째 상담 때에 짧은 부모 면담이 있었다. 첫 면담 후 상담사의 나에 대한 평가가 적혀있었다. ‘말이 어눌하며 표정이 무미건조함, 감정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주지 시킴’ 이런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같은 문장을 다시 한번 읽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첫 상담 때에 저녁 시간이라 많이 피곤했었는데 단조롭게 대답한 것 같다.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처음은 아닌지라 ‘이 상담사는 내가 온정적인 양육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어갔다. 

  다음은 홍팀이다. 이들은 내 아이가 느린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과도한 방어반응을 보이거나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의 자녀를 큰 문제없이 번듯하게 키운 부모님들도 보통 홍팀 소속이다. 이들은 학업성적을 아주 중요시하며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내 대학 친구 중 하나는 아이가 느려서 학교에서 하는 학습이 어렵다고 하니 일상생활은 가능해요?라고 묻는다. 아마도 이들은 주위에 느린 아이가 없거나 평소에 관심이 없는 이들일 것이다. 

  호야가 여름 방학 동안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초 학력 교실 참가신청서를 내는 걸 빼먹는 바람에 나는 갑자기 아이 방학 시간표를 짜기 위해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일반학원에 보낼 수는 없으니 아이가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하고 열심히 물색했다. 아이는 3학년 첫 학기가 버거웠는지 집에만 있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집에서 영상시청만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집 가까운 곳에 구청에서 위탁 운영하는 돌봄 센터가 있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 호야가 가기에 괜찮아 보였다. 급한 마음에 돌봄 센터에 전화하니 한번 와보라고 한다. 당장 다음 주가 방학이라 바로 찾아갔다. 

  입구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출입문을 열어준다. 내부를 둘러보니 아이들이 시간 보내기에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원장님을 스스럼없이 엄마처럼 대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원장님은 그곳 프로그램의 특징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대학생들도 자원봉사를 하러 오고 방과 후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보지에 쓰여 있는 내용과는 달리 초등학교 1~2학년이 주 대상이라고 했다. 호야는 초등학교 3학년이니 환영받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 가기를 점점 더 싫어하는 호야가 이런 곳에 다니게 되면 대학생들도 만나고 여러 아이와 어울리면서 활력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하던 중 원장님이 “그런데 아이를 왜 여기에 보내려고 하세요?” 물었다. 내가 그제야 느린 아이라 학원에 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다닐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조금 전까지 열성적으로 설명하던 원장님의 눈빛이 싹 돌변한다. 그 눈빛을 받는 내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마침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비 맞은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바람에 면담이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날 주차를 건물에서 먼 곳에 했는데 우산을 차에 두고 왔다. 우산이 없다고 하자 원장님은 일회용 우산 하나를 꺼내주시며 쓰라고 한다. 내가 “차에 우산이 있으니 돌려드릴게요” 했다. 원장님은 “안 주셔도 돼요” 하며 서둘러 나가신다. 친절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왠지 “다시 여기 오지 마세요”로 들렸다. 그곳은 학군지 중앙에 있어 부모들의 입김이 센 지역이라 뭔가 ‘정상이 아닌’ 아이가 돌봄 센터에 오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라는 책에 보면 20세기 초에는 ‘정상’이 아닌 어린이에 대해 부모와 가족이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다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보기에 느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수치심’이란 감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첫 번째 관문은 수치심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럼 경계선이라는 회색지대에서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 것인가? 

  첫째,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음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순간순간에 집착하지 말자. 어느 순간에는 아이 덕분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지만, 그다음에는 아이 덕분에 뒤통수를 맞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바로 찾아온다. 

  둘째, 아이가 나에게 던져주는 도전을 받아들이자. 내가 더 넓어지고 큰 지평을 가진 사람이 될 기회라고 생각하자. 엄마들은 느린 아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수도 없이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어느 강사가 농담처럼 말하기를 ‘왜?’라는 질문에 ‘엄마를 더 훌륭한 사람 만들려고’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셋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 아이, 가족은 주어진 삶을 최대한 누릴 권리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하루를 지치지 않고 덜 상처받고 살려면, 아이의 삶이 가능한 최대한 꽃피게 하려면 부모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최근에 알게 된 레너드 코언의 노래 송가(Anthem)에 나오는 가사를 음미해 본다. 

“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There is a crack,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https://www.youtube.com/watch?v=c8-BT6y_w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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