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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l 09. 2024

뚱뚱해 하지만 굳건해

모태 하체비만의 절규

재수없게 들리겠지만 나는 외모에 대해 큰 불만 없이 살아왔다.

코는 오똑하고 눈은 속쌍꺼풀에 커다랗고 피부는 하얗고 입술은 적당히 붉고 도톰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꽤 조화로운 편이다.

종종 귀엽다 종종 예쁘다 때로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가끔 잘생겼다(?)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고 소개팅에서 애프터를 받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뭐 연예인 급으로 예쁘다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 치고 괜찮은 정도라는 소리다. 연예인 할 것도 아니니 불만이 없었다. 성형수술은 한 적이 없고 아예 성형외과에 가본 적도 없고 치아 교정이나 피부과 시술도, 아니 눈화장이나 피부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눈썹 문신만 해놓고 선크림을 바르는 게 전부다.

그만큼 나의 외모에 불만이 없다.

사람들 속에 적당히 섞여 지내다가 가끔 예쁘다 소리 듣는 이 정도 외모, 딱 좋다.


만족한다.


단,


얼굴 한정으로다가 그렇다.

...... 몸을 보면 기가 찬다.


일단 허리가 굉장히 길다. 키가 큰 편이나 아무도 그 키로 보지 않는다. 그만큼 비율이 폭망이다.

어림잡아 전체의 2/3이 상체, 1/3이 하체인 듯.

그러다보니 허리 구분이 되지 않는 원피스 말고 입을 옷이 없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옷을 입으면 인상이 찌푸려질만큼 보기가 흉하다.


게다가 상체가 빈약하다. 며칠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마냥 앙상하다. 뼈에 가죽만 널어놓은 느낌이랄까?

쇄골부터 갈비뼈, 팔꿈치 뼈까지 너무 야위어서 여름 옷만 입으면 빈티가 좔좔 흐른다.


자! 여기에 마지막으로 그리고 치명적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엄청난 하체비만이다.

이렇게까지 살이 몰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체 대비 하체가 어마어마하게 뚱뚱하다.

한쪽 허벅지가 내 몸뚱이만하다면 설명이 될까.

몸뚱이처럼 거대한 허벅지가 양쪽으로 턱턱,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있다.


상체만 보고 내가 마른 줄 알던 친구들은 체육시간에 나의 실체를 보고 대박이라며 깔깔댔고,

길을 걸어도 뒤에서 쟤 다리 좀 보라며 수근대면서 낄낄대는 놈들이 있었고,

전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아도 늘 허벅지가 말썽, 옷을 사러 가서 어떤 바지를 집어도 피팅룸에 들어가서 입고 나온 적이 없다. 혼자 피팅해보고 아니 피팅 시도를 해보고 허벅지에서부터 들어가지 않아 포기하고 나오길 수십번.

다이어트를 하면 얼굴이랑 상체부터 빠지고 포기하고 먹어대면 허벅지부터 튼살이 올라오며 무서운 속도로 살이 올라 붙어버리는, 일명 저주 받은 하체.

모태 하체비만.


어릴 때는 이게 정말 싫었다.

2L 짜리 생수통에 수돗물을 꽉 채워 양쪽 발목에 묶고, 밤마다 곧게 누워 다리를 200번씩 들었다놨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리 살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다녀도 상체는 요령을 피우고 하체는 이를 악 문채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따라했지만 소용 없었다. 오히려 근육이 더 올라붙어 점점 더 두꺼워질 뿐이었다. 뭔짓을 해도 타고나길 두꺼운 다리는 절대 네버 결코 가늘어지지 않는다.

딱 붙는 청바지 아니면 살랑이는 플로럴 미니 원피스가 평생 로망이었지만 몇번 시도했다가 직장 동료에게, 한때 사귀었던 남자친구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야 그건 아니지 벗어라 소리를 대놓고 듣고선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삐빅- 열폭버튼이 눌렸습니다”

로 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나의 하체를 좋아하게 된 거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하체가 굵을수록 건강하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부터인 것 같다.

오늘은 헬스장에 다녀와서 샤워를 하는데 살인지 근육인지 뭔지 뭐든간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허벅지가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다.

갑자기 뚱뚱한 허벅지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한참을 들여다봤다. 빈약한 팔과 상체는 마치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데 하체가 굳건하니 바람에 아니 묄 불휘 깊은 나무 느낌이 난다.

더 이상 싱그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이렇게 튼튼한 두 허벅다리만 있다면 아무리 거친 길도 의연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살랑거리는 짧은 치마 아래 가느다란 다리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미끈하게 쭉 뻗은 다리랑 바꾸자고 해도 이제 바꾸지 않을 것이다.

결혼도 했고 출산도 했고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이성을 유혹하는 미끈한 다리가 아니라 건강의 상징, 장수하기 위한 거름이 되어 줄 건강한 하체다.

생각이 바뀌니 내 다리, 참 괜찮은 다리통이었다.

좀 짧으면 어때? 또 굵은 게 어때서?


좋지, 뭐.


빈약한 아니 가벼운 상체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니 좋기만 하지, 뭐.


오늘은 하체랑 복근 운동을 했더니 어째 앞벅지가 더 튀어나온 느낌이다. 팍! 근육이라 믿고 싶은 근육인지 지방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가 허벅지 살을 뚫고 나올 듯 뙇!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평생 컴플렉스였던 코끼리 다리통,

이걸 든든한 자산마냥 느끼다니!


이런 생각의 전환은 늙는다는 증거일까?

아님 이제야 제 정신을 차리는 중인 걸까?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편안함’이 내 마음에서 영역을 넓히는 중인 건 확실하다.


좀 돼지처럼 살면 어때?

건강하면 그만이지.


나무 밑둥처럼 두툼한 허벅지로

골골 팔십, 골골 백세 아니 골골 백이십세! 가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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