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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l 31. 2024

브런치 고독사 포비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 브런치 마을에서 고독사하면 어떡하지?

이십대 초중반 혼자 살면서 늘 고독사가 두려워 고독사를 다룬 다큐들은 꼭 챙겨봤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어느 봄날을 상상했다.

나는 원룸 바닥에 눈을 감고 누워있고 작은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왔다 나갔다 아침이 되었다가 낮이 되었다가 밤이 되었다가 또 다시 아침이 되고,

세탁기는 돌아가다가 멈추고 보일러도 제멋대로 돌아가다가 멈추고 이윽고 방안이 무섭도록 고요해지면

밖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말소리도 잦아들고,

그렇게 여름이 되었다가, 가을이 되었다가, 겨울이 되었다가 다시 봄이 되었을 때 누군가 나의 시체를 발견하는 거다.

끔찍해. 너무 무서워.

사랑하는 남자랑 운 좋게 만나 결혼하고 애들도 낳고 살면서 이제 그런 공포는 내 안에서 사라졌겠거니 생각했는데 세상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그 느낌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라진 게 아니었어!


이렇게 아무도 읽지 않는 일기 같은,

아니 일기라고도 할 수 없는 생각의 찌꺼기들을 모아 주섬주섬 글로 만든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생각 찌꺼기 모음에 별로 관심이 없다.

브런치 마을에 얼마나 재밌는 글들이 많은데? 파란만장 직장 적응기, 찬란한 해외 여행기, 읽기만 해도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맛깔스런 요리 소개 글들은 물론이고,

별것없이 소소한 일상을 절로 미소가 나오게 글로 표현한 행복한 작품들, 투병기, 고난 극복기 등등

시간 가는줄 모르게 읽히는, 재밌는 글들이 너무 많다.

다들 어찌나 아는 게 많고 글 재주도 좋은지, 삐빅- 또 [열폭버튼]이 눌린다.

현실도 모자라 이곳에서도 열폭하다니,

참 못났다. 못났어.


그래서 상상했다.

브런치 마을에서의 고독사를.

현실에서처럼,

잘 나가는 사람들 구경만 하다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죽어갈 글쓰는 돼지의 모습을.

나의 글들은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고 나중에 브런치 관계자들에 의해 발견되겠지?

그리고 클릭 한 번으로 [삭제처리] 되겠지.

마치 유품정리사가 고독사한 고시생의 고시원 방 한칸을 치우듯이 나의 계정은 폭파될 것이다.

끔찍해. 너무 무서워.

발견이라도 빨리 되면 다행이지,

내가 절필한 후에도 오래오래 부끄러운 글들이 남아 있다가 한참 지난 후에 유품정리사, 아니 브런치 관계자들에 의해 발견되는 건 더 수치스럽다.


휴.


그래서 결국 이 곳에서도 노력을 시작했다.

의무적으로 사람들의 글을 읽고, 라이킷하고, 구독하기도 하고, 댓글도 달고..... 응?

이게 뭐지? 내가 왜 브런치 마을에서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아니, 하루하루 현실 사람들 만나기도 힘들고 일하기도 고되고 오래 살려고 운동까지 하느라 삭신이 쑤시는데

왜 힘든 세상을 하나 더 만들어서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거지?

여기서 한발짝 더 내디디면 곧 싸움도 터질 것 같은데? 나 얻어터질 것 같은데?

둘셋만 모여도 싸우는데 알록달록 각약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이 곳에서 싸움이 나지 않을 리 없다.

현실에서야 잘나고 못난 사람들이 골고루 섞여 있기라도 하지. 여긴 하물며 글 좀 쓴다 하는 똑똑하고 주관 또렷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인 곳인데 더 고차원적 싸움이 되겠지.

무섭다. 무서워.

파스텔 톤으로 그려오던 브런치 마을의 풍경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한다.

잿빛 마을 골목 구석에 앉아 야아아아아......몇번 나지막하게 외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돼지 한 마리가 보인다. 고독하고 쓸쓸한,

글 쓰는 돼지.


하지만 그런 절망적 미래를 그리면서도 나는 쓰고 싶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만큼 성취하지 못한 현실을 글을 통해 보상받고 싶고

그래서 똑똑한 사람으로 존중받고 싶고,

암울했던 과거든 행복한 일상이든 모두 글로 써서 타인의 인정도, 스스로 만족도 얻고 싶다.

적절한 단어들을 조합해 트집 잡을 것 하나 없이 완벽한 문장을 만들고,

그런 문장들을 모아 근사한 글을 완성하며 희열을 느끼고 싶다.

또 고액이 아니어도 좋으니,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말고 부가수익도 올리고 싶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내가 쓴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고 돈을 주고 사서 읽게 만들고 싶다.

나를 손절한 누군가가 내가 쓴 고상한 글을 통해 상처 받는다면 정말 좋겠다.

힘들 때 순간순간 지나가버리는 생각들을 글로 보존했다가 나중에 비슷한 일로 고된 어느 저녁, 보존했던 글을 다시 꺼내서 읽으며 힘을 얻고 싶기도 하다.



오늘도 평화로운 브런치 마을,

저기 멀리 잘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게 보인다.

어쩜 저렇게 빛이 나지? 하나같이 똑똑하고 예쁘고 멋지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다 한다.


나는 오늘도 골목 구석에 앉아 그들을 구경한다.

육개장 사발면 국물에 참치김밥을 찍어 우적우적 먹으면서,


행복하다.


응? 이상하다.

구경만 하며 거적대기 같은 글을 마무리하는데 갑자기 행복해진다.

오늘은 봄볕 때문인지 봄바람 때문인지,

나도 언젠가 잘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이 고독사 포비아를 삼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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