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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l 31. 2024

무채색 G여사의 어떤 하루

짧은 소설

G여사가 그 문자를 받은 건 이틀 전이었다. 중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성희의 문자메시지. 낮에 받은 문자를 식당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밤 11시 무렵에야 확인했다. 환갑하고도 삼년이 지나 식당 사장 노릇을 하기에도 체력이 딸릴 나이인데 G여사는 식당에서 밑반찬을 만들고 설거지를 한다. 남편이 사업을 접고 들어 앉은 지 벌써 이십년. G여사가 버는 돈으로 부부가 생활한지도 벌써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남편이 벌어뒀던 돈으로 두 아이 학교는 다 마칠 수 있었지만 아이들도 부부의 생활에 경제적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처지다. 가끔 첫째 아들네 손주나 하루이틀 봐주면 용돈 조금 찔러 받는 정도. 둘째 딸은 아직도 아르바이트나 전전하는 처지이고......


- 너 부모님이 꽃집 하셨던 G 맞지?

내가 너희 집에 놀러가서 몇번을 자고 그랬는데...


다음 날 통화한 성희는 목소리가 밝았다.


- 맞아, 그래. 너 정말 오랜만이다.

한번 보고 싶었는데 번호를 몰라서 연락을 못했지.


성희는 연락이 닿은 친구들에에 물어물어 겨우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깔깔 웃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을 함께 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우린 차로 한 시간 거리,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해서 오늘만 시간이 난다고 하자 성희가 오늘 점심을 대접할테니 자기네 집으로 오라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 터미널로 차를 가지고 데리로 오겠다며.



오랜만에 본 성희는 얼굴에서 광이 났다. 아이들 중학교 다닐 때, 남편 사업이 어려워 도움을 청했던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종종 연락하며 지냈기에 천만원 정도만 해주면 금방 갚겠다고 부탁을 했더랬다.


그때 성희는 받지 않겠다며 천만원을 내어줬었다.

이후 G여사는 3년에 걸쳐 그 돈을 다 갚았고 성희와 연락을 끊었다. 당시 성희의 남편은 대기업 임원으로 승진했고, G여사 남편의 사업은 여전히 하락세를 타던 중이었다. 성희의 남편과 G여사의 남편은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 성희의 남편은 과 대표였고 G여사의 남편은 아웃사이더였다.


- 야, 너는 참 그대로다. 하나도 안 늙었다야.


성희는 예전 그대로 착하고 예뻤다. 이렇게 푸석하고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며  저런 소릴 하다니.

불고기에 잡채, 마당에서 직접 키웠다는 각종 쌈채소에 뜨끈한 배추국까지. 한상 차려놓은 점심식사에서 성희의 마음이 전해졌다. 누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는 게 얼마만인지. 마당을 정비하고 들어온 성희의 남편과도 인사를 나누고, G여사는 정말 오랜만에 정성 가득하고 맛있는 식사를 했다.


성희의 남편은 G여사의 남편이 함께 오지 않은 걸 아쉬워했다.


- 둘이 지내니 사람이 그리워요. 누구든 와준다고만 하면 반갑고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고요.

별채에 침대도, 그릇들도, 소파도 모두 여기랑 똑같이 해놓고 자식들 오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뒀는데,

이 자식들은 뭐 일년에 서너번 볼까말까.

다음엔 부부 같이 오셔서 별채에서 하루이틀 묵으시죠.


성희도 성희의 남편도 참 얼굴이 선하다. G여사는 문득 남편을 떠올렸다. 이 시간쯤 라면을 끓여먹고 있겠지. 어제 신라면이었으니 오늘은 너구리 차례다.

사업을 접고 남편은 웬만해선 돈을 쓰지 않으려 한다. 옷도 사지 않고, 먹는 것도 라면이나 흰밥에 반찬 두어개로 끝내고, 무엇보다 집이 망가져도 돈을 들여 고칠 생각이 없다.


깔끔하게 정돈된 성희네 주택을 둘러보니 부러운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별채까지 포트메리온 식기들과 보송보송한 구스 침구들을 채워둔 걸 보니 ”야, 우리 실내화 신고 찐만두 사먹으러 다녔잖아.“ 같은 류의 대화가 더 이상 무색하다. 성희네 마당에선 형형색색의 꽃들이 열을 맞춰 자라고 있고, 소나무와 무화과 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도 알맞은 간격을 두고 손질되어 자라나는 중이다. 꽃은 성희가, 나무들은 성희의 남편이 담당한단다. G여사는 자신의 집 마당을 떠올렸다. 등짝이 깨진 두꺼비 석상, 붉은 벽돌 십여개, 군데군데 쪼개진 대나무 매트 등 모두 길에서 남편이 주워온 것들로 채워진 공간. 제발 쓰레기 주워오지 말라고 갖다 버리면 또 주워오고 멀쩡한데 누가 버렸더라며 또 새로운 쓰레기를 주워오는 G여사의 남편.

 그리고 마당 빼곡하게 숲을 이룬 잡초들.


휴.


성희의 남편이 직접 내려 준 커피를 마시며 G여사는 한숨이 나왔다. 같이 학창시절을 보냈고,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남자와 결혼했지만 두 여자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간격이 벌어져있다. 세월은 이미 흘러버렸다. 칠순을 바라보는 남편에게 인생 역전을 위한 노력을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G여사도 무얼 새로 시작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늙어버렸다.

모든 결론이 나 있는 시점에서 노부부가 아슬아슬하게 하루씩 하루씩 버텨내고 있다.



내일도 식당에 출근하려면 이제 길을 나서야했다. 성희는 내일 남편과 골프를 치러 간다며 다음에 날 맞추어 부부동반으로 필드에 한번 나가자고 했지만 글쎄, 죽기 전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성희는 그래, 그러자고 대답했다.

식당 일을 한다는 이야기도, 남편이 이십년 째 백수라는 이야기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손주들이 오면 편하게 묵고 가라고 꾸몄던 이층 방은 천장 누수로 벽지에 곰팡이가 피고, 손주들은커녕 첫째아들 내외도 편의점 교대근무로 오지 못하고, 둘째 딸은 취직도 못한 채 마흔이 넘어서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완벽해 보이는 성희의 삶에도 약간의 무게는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G여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고 남편에게 연락하자 술을 마시는 중이다. 술을 마셔 터미널에 데리러 나오지 못한단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자 남편은 대문 앞에 서서 담배를 태우며 G여사를 기다리고 있다. 카악-퉤! 남편의 침 뱉는 소리가 역겹다.


- 성희 남편 기억나지? 당신네 과 대표였잖아. 사람이 어찌나 진중하고 인품이 훌륭하던지. 커피도 직접 내려주고 자식들도 하나같이 석사에 박사에 며느리도 사위도 잘 들어오고...... 그게 전부 성희 남편이 인성이 좋아서 그런 거러니까?

일이 잘 풀릴 수밖에 없는 인성이더라고.


딸이 허벅지를 꼬집지만 G여사는 할 말은 해야했다. 오늘 쏟아내지 않으면 속이 터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듣다 못한 딸은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버리고, 참다 못한 남편은 욕지꺼리를 시작한다.


- 그 남자한테 시집가지 그랬냐? 지랄도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어쩌라고!


결국 G여사의 무릎으로 후두둑 눈물이 쏟아진다. 종일 참았던 눈물이 왈칵왈칵 터져나온다.

삐그덕삐그덕 쪼개질 것 같은 마룻바닥을 밟고 아귀가 맞지 않는 현관문을 발칵 열었다 쾅 닫으며 남편은 또 담배를 태우러 나간다.


G여사는 축 처진 입 꼬리가 더더 턱을 향해 내려가지 못하도록 겨우 힘을 주어 끌어 당기며,

옷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는데 카톡! 메시지가 들어왔다. 성희다.


- 잘 들어갔니?

커피 마시고 싶을 때 언제든지 놀러 와.

오랜만에 보니 참말로 반갑고 좋았어, 내 친구.


탁! 신경질적으로, 폰 가죽케이스를 덮어버리는 G여사다.

성희와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없을 거라고 G여사는 장담했다. 물을 마시러 내려온 딸이 그러고 싸울 줄 알았다며 혀를 끌끌 찼다.


- 똑같아. 둘이 똑같다고. 그런 이야기를 왜 자꾸 아빠 앞에서 해? 칠십 노인한테 뭘 어쩌라고? 가만 보면 엄마가 아빠 성격을 긁......

- 오냐, 너 잘났다! 너 그렇게 잘 나서 그 나이 먹도록 시집도 못가고 취직도 못했지 그래!!!


스스로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오늘따라 희안하게 멈출 수가 없는 G여사다.


잠이나 자야지.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써 본다. 창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 내일까지 종일 비나 내리면 좋겠다. 그래서 성희의 골프 약속이 취소라도 되면 참 좋겠다. 그런 못난 생각을 하며 G여사는 스르르 잠이 든다. 남편은 오늘 아마 작은 방에서 잘 것이다.


그 정도 눈치는,

아니 그 정도 자존심은 있는 사람이니까.


빗소리가 점점 세차게 바뀐다. G여사의 내려갔던 입 꼬리는 조금씩 제 자리를 찾고 새근새근 아기같은 숨소리가 비 내리는 박자와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투두둑, 새근새근.

투두둑, 새근새근.


참 길고도 고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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