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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pr 13. 2024

오늘도 활기찬 브런치마을에서

Outsider

어릴 때는 프린세스 메이커, 커서는 동물의 숲까지

나는 유독 가상세계에 잘 몰입하는 편이다.

꿈도 자주 꾸고 망상도 심하다.

중학교때부터 이어온 서너가지 망상들이 있는데

어쩌면 우주 저 너머 또 다른 초록별들에 사는

또 다른 윤성들이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또 다른 초록별들에서 나는 재벌가 며느리, 억대 배우, 절절한 사랑에 빠진 절세미녀로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자꾸 그런 망상들이 괜히 머릿속에 떠오르고

툭하면 꿈에도 나오며 지속될리 없다.


오늘도 의무처럼 그런 망상을 해대다가 문득

브런치에 대한 망상이 시작됐다.

시작은 아름다운 브런치마을 입구에서 서성이는,

누추한 행색의 나.


인스타그램이 셀럽들이 와인잔을 들고 고고한 척 돌아다니는 파티이고,

유튜브가 다양한 분야의 인싸들이 모여 소주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고 위스키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포장마차와 클럽이 공존하는 분위기라면

브런치는 파스텔 색깔의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고,

투명한 시냇물이 졸졸졸 소리내며 흐르는 마을이랄까?

삶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이 종이지도를 보고

물어물어 겨우 찾아오는 작은 마을 느낌.


나는 마을을 둘러본다. 브런치 마을엔 높은 건물이 없어 누가 어디에 서든 마을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잘 살펴볼 수 있다.


일단 아픈 사람들이 좀 있다. 유방암, 위암, 당뇨, 비만 등 이런 저런 병으로 고생 중이거나 완치 판정을 받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일상이 소중해진다.

아침 출근길 사먹는 토스트,

소중한 일터에서의 내 자리,

월급,

상큼한 봄꽃의 색깔들과 느긋한 오후의 바람 등

소소하지만 소중하지 않은 순간들이 없다.

나는 주춤주춤 그들에게 다가가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건강해야지,

별것 아닌 일로 스트레스 받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고개를 반대로 돌리니 이번엔 이혼한 사람들이 보인다.

싱글맘이나 싱글대디들, 혹은 애 없는 돌싱들이

여기저기 서서 수다떠는 중이고,

결혼부터 이혼까지의 과정을 무겁지 않고 맛깔나게

길지만 지루하지 않게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또 누군가는 엄청 큰 목소리로

배우자의 불륜을 고발한다. 적나라한 표현들이 자극적이고 재밌다.

재밌어서 눈이 간다.


심지어 여러 케이스들의 콜라보도 종종 있다.

이혼을 결심하고 암 진단을 받았다거나

당뇨 투병 중에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되었다거나

특정 작가의 저격이 될까 구체적으로 쓸 수는 없지만

클릭하지 않고는 아니 다가가 귀를 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천인공노할 글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근처엔 사람들이 유독 바글바글하다. 어떡해요, 응원해요 토닥이는 소리가 멀리까지 자자하다.

왜 인간은 남의 행복보다 고통에 더 눈길을 주는 걸까?

남의 고통에

휴, 내가 아니라 다행이야 안도하는 소리없는 아우성.

역시 성악설이 맞나보다.


마을 중간쯤 가니 이번엔 인싸들이 보인다.

그들은 마치 유튜버같다.

갖가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정신과 전문의, 대학교수, 변호사부터 대기업 퇴사자나 아나운서까지. 그들과의 대화는 고급지고, 몰랐던 세계를 보여주므로 상당히 흥미롭다.

그들의 가슴팍에 걸린 프로필에는 화려한 스펙과 이력이 빼곡하다.

하지먼 그걸 자세히 보지 않아도

전면에 나선 떳떳한 자세, 왠지 광이 나는 피부톤,

그리고 당당한 말투만 봐도 잘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세상 사람 같다.

저들은 신상을 공개했으니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왜 브런치 마을까지 온 건지 궁금하다.

능력 좋고 돈도 잘 버는데 주체할 수 없는 필력까지

타고 난 걸까?

매력이 넘쳐 흘러 감당이 되지 않는 건지.

현실에서든 브런치 마을에서든 저런 사람들이 싫다.

너무 다 가졌잖아?


비슷한 느낌으로 해외에 거주하거나

여행 전문가, 스타트업 CEO들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다.

그들은 이국적인 사진들과 그래프, 통계자료 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소재 자체가 화려하니 있는 그대로 툭 털어놓아도

즐겁고 유쾌하다. 표정에서도 여유가 넘친다.

나는 그들 또한 싫다. 너무 부럽다.

해외여행 한번 못 가보고 사업할 자본도 용기도 없이,

빡빡하게 하루하루를 채우는 나.

월급쟁이 나. 자심감 없는 나. 못난 나.

삐빅- 열폭버튼이 눌려 후다닥 자리를 피한다.

하여간 누구 잘난 꼴을 못 본다.


당장 눈이 가는대로 그렇게 쭉 둘러보고도 시간이 남아

이제 골목 구석구석을 훑어보기로 했다.

브런치 마을에는 골목들이 많다. 굽이굽이 비좁은 골목들에도 사람들이 꽤 많다.

아니, 지금껏 봐왔던 당장 시선을 끌던 사람들보다

골목에 사람들이 더 많이 숨어있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는

나같은 사람들. 커다란 바위가 아닌,

자잘하게 날아드는 돌멩이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평범함 일상에서 소중한 순간을 조명하는 사람ㄷ.....

와,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야말로 레드오션이다.


이래서 다들 나한테 관심이 없었군.


밑천 두둑한 사람들이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만 해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밑천 없고 평범함 사람들의 이야기는

엄청난 필력이 아닌 이상 눈길을 끌기가 어렵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대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소소하게 걸려 넘어지는 순간들을

조명하여 기발하게 그려내고 공감을 이끌어낸다.

저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도록.


물론 브런치에도 그런 능력자들이 보인다. 별것 아닌 일상을 기깔나게 쓰는 사람들.


- 어머, 이 분은 나랑 비슷한 월급쟁이네?

- 이집도 맞벌인가봐!

- 눈 뜨는 순간부터 정신 없는 게 딱 나 같네.

- 얘도 인성 더러운 상사 만나 고생하는구나.

- 아빠랑 손절친 게 딱 나 같네.

- 이거 내가 쓴 글인가?


술술 읽히길래 생각 없이 봤는데 가만 들여다봤더니,

라이킷수도 구독자도 넘쳐나는 작가들.

현실에서의 상황은 나랑 비슷하지만

브런치 마을에선 내가 올려다봐야 하는 사람들.

부럽다. 현실에서도 이곳에서도 나는 평범 그 이상이 되지 못하는구나.

한때 내가, 나의 글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다시 한번 반성한다. 브런치를 통해 억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재차 내려놓는다.



화창한 날씨, 봄이 벌써 끝났는지 햇볕이 따갑다.

너무 뜨거워 밖으로 나가기 두려운 나는 오늘도 브런치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언제나 활기찬 브런치 마을,

작지만 밀도 높은 이 곳에서도 나는 현실에서 못지않게 아웃사이더다.

구석에 숨어 사람들을 구경하고

붉은 바다에 빨간 물감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려도 본다.


그래도 이 곳에서는 현실에서처럼 얼굴과 학력과 몸매와 패션 따위를 전면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되어 좋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비해 신상을 적당히 꾸며서

말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그래서인지 브런치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난 현실세상에서보다는 조금 용기있는 아웃사이더가 된다. 현실에서 억눌린, 하고 싶지만 못했던 말들을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쓴다.

비록 붉고 넓은 바다에 빨간 물감 한 방울이지만

긴장하고 애쓰던 속이 풀리는 느낌이다.


그게 내가 매일 브런치 마을에 오는 이유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 아닌 이 곳이

더 편하고 매력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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