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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Apr 15. 2024

눈썹문신 후기

사장님이 꼼꼼하고 친절하세요

나는 눈썹이 없다. 희미하게 흔적같은 게 있긴 하지만

숱이 없는데 색까지 옅은 갈색이라

없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래서 1년에 한번씩 눈썹 문신을 받는데

어제가 그날이었다.

평일엔 늦게까지 일을 하고 주말엔 아이들과 일정이 늘

빡빡하여 시간 맞추기가 영 어려웠는데

사장님이 나만 괜찮다면 토요일 아침 일찍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나야 뭐, 새벽 3시에도 가능했다.

기존 눈썹 문신 색깔이 다 빠져 눈썹 없이 지낸 게 벌써 3개월 째,

매일 아침 눈썹을 그리는 게 너무 고역이었다.


- 일과시간만 아니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어요.


그렇게 어제 아침 7시로 예약이 잡혔다.



예약시간보다 10분 일찍 샵에 도착했는데도 사장님은 벌써 출근해있었다.

늘 그렇듯 요가원에 온듯 편안한 피아노 연주곡과

커피향이 나를 반긴다.


- 일찍 오셨네요?


사장님이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을 내어주며 웃었다.


- 몇 시에 나오신 거에요?

주말인데 감사해요.


나의 미안한 기색에 사장님은 자긴 아침 잠이 없고,

애들 아직 자는 시간이라 주말 일정에 지장도 없으며,

나 말고도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던 손님 한 분을

8시반에 예약 받아뒀으니 나로 인해 이번 주말 두둑하게 돈 벌어서 되려 감사하다고 고개를 꾸벅한다.

외모도 성격도 참 사랑스러운 사람.


5년째 내 눈썹을 맡아주고 계신 사장님은

나보다 4살 어린데 애가 셋인 워킹맘이다.

1인샵으로 애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10시쯤 출근해 5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하면 아이들을 순서대로 픽업하여

저녁 차리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남편이 퇴근한다고

했다. 힘들 것 같은데 1년에 한번,

아니 리터치까지 두번 정도 보는 사이지만

한번도 지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늘 생기가 넘친다.



바 의자에 날 앉히더니 사장님이 디자인을 시작했다.

디자인만 보통 20분 정도 걸린다.

눈이나 코에 비해 존재감이 적은 듯하지만

한끝 차이로도 인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게

바로 눈썹이다.

미세한 차이로도 이미지가 확확 달라진다.

눈썹 산이 0.1mm 높아도 표독스러워 보이는가 하면 꼬리가 0.1mm만 길어져도 어딘가 만만해 보인다.


사장님은 단아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내게 딱 맞는

눈썹 디자인을 5년째 한결같이 찾아낸다.

그리는 장면을 볼 수는 없으니 피부로만 느끼는데

처음엔 와, 이렇게 과감하게?

너무 치켜세우는 거 아니야? 눈썹 머리가 두꺼운 느낌인데...... 등등 여러 걱정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완벽한 그녀의 실력에 신뢰가 쌓였기에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수준이 되었다.

샤샥, 샤샤삭.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니 사장님 눈빛이며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남자 연예인들이 여자 연예인들을 위해

매너다리를 하듯 두 다리를 삼각대 모양으로 만들고

내 눈썹 높이에 자신의 시선을 오차없이 맞췄다.

눈빛은 날카롭고,

미술학원에서 봤던 4B연필처럼 길쭉하게 깎은 아이브로우가 이쪽저쪽 눈썹 위를 빠르게 오간다.

점 몇개가 찍히나 싶더니 이내 점과 점이 연결되고,

휘어지는 15센티미터 자가 이마에 놓여 수평이 잡히고,

나중엔 각도기까지 등장하여 눈 꼬리와 눈썹의 각도가 맞춰진다. 문신에는 미술 뿐만 아니라 수학도 과학도 녹아있다. 나는 요리에도 뜨개질에도 심지어 글씨쓰는 것에도 손재주라고는 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손끝에서 뭔가 창조시키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문신샵 사장님, 헤어디자이너, 종이접기 유튜버, 레터링 케이크 파티쉐 등 내겐 없는 재주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부럽고 경외롭다.

사장님의 손가락이 코 앞을 오가는데

행여나 나의 콧바람이 그녀를 방해할까 나는 잠시 숨도 참는다. 그녀의 집중에 조금도 누가 되고 싶지 않다.


디자인이 끝나면 마취크림을 바르고 기다리는데

따끈하게 데워진 침대가 날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터 전기매트를 틀어두신 건지,

보송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우니 사장님의 배려에

마음까지 딱 알맞게 데워진다.

요즘 직장 동료들의 앞뒤 다른 면모와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었는데,

마취가 되는 잠깐의 시간이나마 폰을 놓고

눈을 감고 있으니 말 그대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돈을 주고 하는 문신이긴 하지만 정성스러운 대접에

일상 속 상처가 치유된다.

눈썹에 일부러 상처를 내고 상처에 잉크를 넣는 시술을 받는 동시에 마음의 상처는 조금이나마 아물다니,

묘한 뭉클함이 밀려왔다.

역시 사람 간에 주고 받는 마음은 시간이나 재무관계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돈을 내고 일년에 한두번 보는 사이인데

사장님의 소소한 배려가 나의 마음을 다독였다.


아쉬운 마취 대기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칼질하고 잉크를 주입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마취를 했지만 혹여 크림이 덜 발라진 부분이 있을까

잔뜩 긴장이 된다. 어깨를 너무 움츠렸더니 사장님이 아프냐고 물었다.


- 아뇨, 아플까봐요.


애도 낳은 사람이 이게 뭐 그렇게 무섭냐면서 사장님이 웃는다. 그녀는 애 셋을 제왕절개로 낳은 후, 세상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단다. 위내시경도 몇년째 마취 없이 쌩으러 하고 다음 주에는 위와 대장내시경을 함께 받는데 역시나 쌩으로 받을 거라고 한다. 목소리가 너무 결의에 차서 사장님 긴장되시죠, 한 마디를 하니 속마음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다.


- 고객님, 저 사실 너무 무서워요. 위는 대충 몇번 웩웩거리면 끝났는데 대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잖아요?

어떡하죠? 수치스러울 거 같아요.

제가 저번에 위내시경 하라 갔다가 누가 대장 내시경 기계 옮기는 걸 봤는데 기계에 끝도 없이 긴 호스가 달렸고 너무 무시무시한 거에요. 지금이라도 수면마취로 진행하겠다고 예약 바꿀까요?


귀여운 사람.

그렇게 대장 내시경 방식에 대한 논의를 하다보니 벌써 작업이 거의 끝났다. 이제 상처 위로 잉크를 넉넉하게 올려놓고 색이 잘 들어가기를 기다리면 된다.


- 한숨 주무세요.


사장님이 조명을 낮추고 음악소리를 살짝 낮춘다.

랩으로 눈두덩이까지 싸놓은 상태라 폰을 보기 어렵고 나는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잔잔한 음악이 이마를 따라 콧등, 턱, 가슴과 배를 지나 발 끝까지 시냇물 흐르듯 졸졸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그러다 잠이 들었나보다.


- 고객님, 마무리할게요?


사장님의 목소리에 잠을 깨니 소중한 힐링타임이 벌써 끝났다.

일어나기 싫은데, 계속 누워있고 싶은데......

잉크는 내 머리카락 색깔과 맞춰 잘 주입되었고,

눈썹디자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딱 좋다.

나이스, 내일부터 맨 얼굴에 선크림만 바르고도 출퇴근할 수 있다!

계산을 하고 2주 후로 리터치 예약을 잡고, 사장님의 활기찬 배웅을 받으며 샵을 나서는데 발걸음에 왠지 프레트토 박자가 실렸다. 룰루랄라.


주말 아침 8시, 아직 출근하려면 하루 이상 남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또 출근하더라도 나도 사장님처럼 나의 자리에서 내가 잘 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지, 다짐이 섰다.

평소 하기 쉽지 않은 다짐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토록 누군가에게 격려가 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의 사소한 배려는 뜻밖의 거대한 손길이 되어 삶에 지친 상대를

다독이기도 한다.


사장님, 이번에도 감사했어요.

오래 그 자리에 있어주세요. 리터치 때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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