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교향곡 2악장
‘결심’의 배신
-살림 교향곡 2악장-
밤이 깊어지자
불이 하나둘 꺼지고
묵언 수행 중이던 이들이
맑은 눈을 뜨고 일어났다.
굳게 닫힌 서랍 안에서
노크 소리를 곁들인
예의 바른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정하 님,
요즘 자산 관리
안 하시죠?”
오늘 주식 그래프가
타박상을 입은 듯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파랗게 질려 있었다.
가지고 있는 배당주가
분리과세 이슈로 하도 오르락내리락해서
방치하고 있었는데
바닥에서 구조할 절호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자산 노트는
타박하려는 양 페이지를 넘기며
파란 그래프를 쓱 들이밀었다.
나는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괜찮아.
우린 일희일비 안 하는
성숙한 사람… 이잖아.
그때
가계부가 슬쩍 끼어들었다.
“정하 님,
저는요…
요즘 이름만 가계부예요.”
아.
그러고 보니
새해 첫날
단단히 약속했던 ‘결심’이
아침에 문지방을 넘다
문턱에 걸려
고꾸라졌었다.
심폐소생술까지 해서
간신히 침대에 눕혀둔 참이다.
아직은…
숨만 쉬는 상태.
벽시계는
밥을 못 먹었다며
초침을 멈추고
파업 선언을 했고,
양말 한 짝은
제 짝을 찾겠다며
주변 탐색 중이었다.
먼지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바닥에서
슬라이딩 연습을 했다.
아주 신이 나 있었다.
그때,
캘리그래피 통에 꽂혀 있던
점잖은 붓 하나가
먹물통에 몸을 담그더니
화선지 위로
일필휘지로 미끄러졌다.
“침묵에서 깨어나는
우리들의 순간을
예술로 만들 수 있다면.”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시계는
눈치를 보며
초침을 다시 움직였고,
양말은
제 짝을 찾은 양
평온을 찾았고,
먼지들은
재빨리 빛 속으로 흩어졌다.
그때
혼수상태였던 ‘결심’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아직 비틀거리지만
완전히 죽진 않았다는 얼굴.
사물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했고,
방 안에는
작고 느린 리듬이
경쾌한 멜로디로 흘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은 돌아가는,
살림 교향곡 c major 2악장.
지휘자는 나였지만,
‘결심’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여전히 병가 중이었다.
배경 이야기
2026년 새해 꼭 지키자는 결심들이 있었다.
그런데,
결심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다른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희한한 상황,
그 자리를 희화화해서 유머결로 쓰다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