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요리하다

일상. 유머의 감성 테마시

by 정하

이야기를 요리하다


질긴 어둠이 슬그머니 물러나고

아침이 새벽창문을 열어

조용히 바구니 하나를 내밀었다.


바구니 안에는

싱그럽고

팔딱팔딱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어스름한 그물에 걸린

현실 이야기,


가슴 밑바닥에서

온기가 슬금슬금 차오르는 이야기,


현실을 박차고

도약하는 이야기,


밤하늘의 계단을 밟고

멀고 먼 행성에 다녀온

장미꽃 이야기까지.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이야기들을 골라

손질하기 시작했다.


개수대에서 깨끗이 씻어

도마 위에 올리고

‘탁탁’

리듬을 얹었다.


가슴을 벌컥하게 만드는

딱딱한 이야기에는

키위와 배를 갈아

연육이 되도록 재워 두고,


온기를 품은 이야기에는

달콤한 소스를,

도전을 향한 이야기에는

매콤한 양념을 뿌렸다.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이야기 곁에는

파릇한 채소를 곁들였다.


시간과 수고를 두른 이야기들이

마침내

식탁 위에 올랐다.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부드러운 이야기부터

포크로 콕 집어 들고,

너무 철학적인 부분은

나이프로 조심히 발라

잘게 나눴다.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스푼 위에 올려놓았을 때,


그제야

뱃속에서

조용히 시동이 걸렸다.


기대와 설렘이

슬슬 예열되며

김을 뿜자,

“아, 맛있겠는데?”

속이 먼저 반응했다.


삼킨 이야기는

가만히 머무르지 않는다.

속에서 익은 말들이

바깥 공기를 찾기 시작한다.


뱃속 어딘가에서

작은 뱃고동이 울리고,

문장은

바다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


식탁 위에는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지만

과식은 금물이다.


배부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끌 에너지를

얻기 위해

나는 이야기를 먹는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바다로 나아갈 힘은

필요하니까.


나는

이야기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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