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감상 에세이
내 마음도 통역이 되나요
해가 기울 무렵의 낯선 작은 도시.
기찻길 옆으로 나지막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창문마다 얇은 커튼이 느슨하게 흔들렸다.
길은 좁고 조용했으며,
건널목 앞에는 노란 차단기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잠시 멈춘 두 사람 사이로
늦은 햇살이 기울어 비치고,
바람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기차가 길게 지나가며
말이 되기 직전의 순간을
조용히 삼켰다.
차단기가 다시 올라갔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끝내 건너지 못한 언어가
그녀 가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드라마 ‘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이 장면이
오래 뇌리에 남았다.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이
나오는 드라마라고 딸이 추천했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끝까지 보게 되었다.
통역사인 그는
누구의 말이든 정확히 옮길 수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 표현에는 회피 언어를 사용했다
배우인 그녀는
감정을 연기하는 데 능숙했지만
자기 마음을 말로 꺼낼 때는
두서 없는 말을 쏟아냈다.
캐나다의 호숫가에서는
물이 하늘빛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말이 필요 없는 고요가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오로라의 밤.
검은 하늘 위로 초록빛이 번져가며
빛의 물결을 만들었다.
마치,
하늘에 닿고자 하는 지구의 오래된 염원이
입자가 되어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 황홀한 풍경 속에서
그들의 마음과 언어가 닿는 듯했지만
끝내 같은 자리에 앉지는 못했다.
이탈리아의 골목에서는
석벽 위로 햇살이 흘러내리고,
빛바랜 언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사람들의 말과 웃음이 넘치는 공간에서도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건너지 못한 무엇이 남아 있었다.
풍경은 이토록 눈부신데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모습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언어가 있어
그것을 통역하는 일은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마음만이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딸과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눈꽃더미가 펼쳐진 낯선 도시
낯선 언어가 오가는 곳에서
우리는 일상의 말을 줄이고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언어는 통역할 수 있지만,
마음은
함께 걷는 시간 속에서
더 깊어진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는
낯선 자연이 건네는 소리를 듣듯
딸의 마음을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낯선 도시 눈꽃 날리는 모습을 유심히 볼
딸도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엄마의 속깊은 마음을
해독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읇조려 본다.
내 마음도
통역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