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희에게’ 감상 에세이
상실을 딛고 일어서는 이에게
지난봄 도쿄를 다녀온 뒤,
딸은 겨울이 가기 전에 홋카이도를 꼭 가 보자고 했다.
추운 곳은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딸과의 동행은 지금이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아 약속을 했다.
여행을 앞두고 우리는 몇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함께 보았다.
그중 한 편이 러브레터 촬영지, 오타루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윤희에게’였다.
화면 속 윤희의 얼굴에는
오랜 동안 켜켜이 눌러앉은 상실의 시간이
고요히 자리잡고 있었다.
메마른 표정과 체념한 듯한 텅 비어 있는 눈빛이
그가 지나온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영화는 오타루에서 온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첫사랑 쥰이 보낸 편지.
차마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엄마를 대신해
딸 새봄이 오타루 여행을 준비했다.
눈으로 덮인 도시, 오타루.
그곳은 말보다 침묵이 먼저 쌓이는,
시린 풍경으로 가득 차있었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오래된 창고들 위로
눈은 소리 없이 내려앉고,
가스등 불빛은 물 위에 길게 번져
희미하게 흔들렸다.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상점들 사이로
하얀 입김이 오가고,
바람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느리게 돌아나갔다.
운하 시계탑 아래
눈꽃이 흩날리고,
발자국 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거리.
그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머뭇거렸던 마음들이
눈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마침내 운하에서 쥰을 마주한 윤희의 얼굴에
아주 미세한 떨림이 번졌다.
지붕 높이까지 쌓인 눈.
그들 사이에 흐른 시린 세월도
저만큼은 되었으리라.
긴 시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침묵 속에 살아야 했던 두 사람.
그 사랑을 다시 만나자
윤희는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되찾기 시작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모든 상실은 사람의 표정을 앗아가지만,
어떠한 진실은
언젠가 다시 그 얼굴을 돌려놓는다는 것을.
이번 겨울,
딸과 걷게 될 오타루의 길 위
그 눈부신 설국 속에서
나는 어떤 마음의 울림을 마주하게 될까.
“오겡끼데스까—”
설원 위로 길게 퍼지던 히로코의 목소리일까.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조용히 떨리던 윤희의 고백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