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기억. 자각. 성찰의 감성 에세이

by 정하

학창 시절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좀 들었다.


구겨진 하루를 걷다가도

빛나는 한 줄의 문장을 발견하면

그 문장을 보석처럼

마음의 창고에 오랫동안 넣어두었다.


어두운 동굴을 지나가던 날에도

그 문장은

높이 들어 올린 등불이 되어

자박자박 걷는 내 앞길을 비추어 주었다.

밝아올 먼 새벽을 향해

힘차게 걸어갈 수 있도록.


고등학교 문학 교사가 되어

미리 소설을 읽고 교재를 연구한 뒤

다음 날 수업에서 줄거리와 맥락을

매끄럽게 설명해 주면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샘, 너무 재미있어요. 완전 이해돼요!”


그 말들이

내 어깨를 으쓱 올려 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꾸 깜빡거리는 일이 늘고 있어

옛날처럼 낙관만 할 수 없게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엄마, 무서워요. 왜 그러세요?”

며칠 전 함께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심각하게 반응을 했다.


나 스스로가 예전과 다른 내 모습을 직면할 때가 많다.

하루 전 읽었던 소설 제목을 기억 못하기도 하고

신문에서 접한 낯선 용어를 바로 잊어버리기도 해

내 마음속에는 염려의 회오리바람이 분다.


MRA를 찍어도 보고,

뇌 건강을 위한 약도 챙겨 먹어보았지만

걱정이 완전히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너무 많이 쓰고 오래 혹사시킨 뇌,

그 위로 겹겹이 쌓여온 불면의 밤들.


뇌 속 어딘가에서는

노폐물 처리를 버거워하는 신호들이

희미하게 울리는 중이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현재의 나를 기록하며 준비하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에서 흘리고

짧은 인연의 얼굴을 잊는 날이 오더라도

단 하나,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문득 생각했다.

내가 가장 붙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

그것은 결국

온 마음으로 붙잡고 싶은 ‘나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내가 나를 끝까지 기억하기 위해.


글은

나를 붙드는

작은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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