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그리고 대게와 맥주의 밤

홋카이도 여행 테마 에세이

by 정하

설원, 그리고 대게와 맥주의 밤

삿포로 외곽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대욕장은 어제보다 훨씬 넓었고,
눈이 흩날리는 곳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가족 단위의 노천탕이 있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 속에 몸을 담그자
여행의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뜨끈한 온천수는 위로의 온도를 지녔다.
여행의 노곤함도, 하루치 설렘도
따뜻한 온도 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렸다.

아침은 상쾌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대설산, 비에이.
속옷 위에 핫팩을 붙였더니 뜨끈뜨끈했다.

모자와 목도리, 옷까지

단단히 챙겨 길을 나섰다.
홋카이도의 겨울 추위,

무장하고 맞섰더니 견딜 만했다.

끝없는 설원을 세 시간쯤 달려

비에이에 도착했다.


일본 CF에 자주 등장한다는 ‘패치워크 로드’.
겨울의 들판은 색을 모두 거두어 간
거대한 흰 도화지였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 몇 그루.
그 단순한 구도가 감성을 자극해
한 자동차 광고를 대박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캔과 메리’라는 이름의 두 인물이
설원을 배경으로 달리던 그 장면 덕분에
두 그루의 나무는 이제
‘캔과 메리 나무’라 불린단다.
사람은 떠나도 장면은 오래 남아

많은 관광객의 시선이 머문다.


계절이 바뀌면 이 길은
감자, 밀, 옥수수 꽃으로 색이 달라진다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조각천을 이어 붙인 패치워크처럼 보여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그러나 우리가 본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
흰색이 이렇게 많은 표정을 가질 줄은 몰랐다.

잠시 후, 절벽을 타고 여러 갈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나타났다.
혹한에 얼어붙어야 할 물줄기가
수염처럼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흰수염폭포.

이곳은 화산의 땅.
온천수가 스며 나와
얼음과 물의 경계를 흐렸다.
알루미늄 성분이 섞인 물은
에메랄드빛을 띠며 유유히 흘러가는 중이었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한곳에서 공존하는

이색적인 풍경.

멀리 대설산이 흰 눈에 덮여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오겡끼데스까?”
영화 속 한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이후 우리는
마에다 신조의 사진으로 유명한 탁신관을 둘러보고,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
시키사이노오카에서 썰매를 탔다.
나와 딸의 웃음이 설원 위로 튕겨 올랐다.

그리고 저녁.
삿포로의 유명 식당에서
무한리필 대게와 목초지에서 길러진 소고기, 와규를 만났다.

대게는 꼭 리필까지 해서

먹어야 할 음식이었다.
우리는 배가 부를 때까지
성실하게 껍질을 벗겨

입안으로 옹골지게 넣었다.

와규는 두 접시까지 가능하다고 했지만
먹성이 기본인 우리는

이미 대게 두 접시로 충분히 포만감 가득이었다.
욕심은 설원에 살짝 두고 왔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삿포로 물 좋은 곳에서 빚은 맥주를 마다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딸과 잔을 부딪히며 함께 마신 맥주 한 잔.
시원한 거품이 입안을 채우고
목을 타고 내려가
심장까지 짜릿하게 했다.

마지막 디저트는
홋카이도 명물 멜론 아이스크림.
달콤함은 늘 마무리에 강하다.

그날 밤,
삿포로의 마지막 호텔은 최고급이었다.
창밖의 도시 불빛은 차분했고,
우리는 꿀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은 풍경만이 아니라
함께한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설원 위를 달리던 차도,
흰수염폭포의 물줄기도,
대게의 달콤함도
결국은
딸과 나란히 웃던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청어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오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