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끝에서, 남겨진 생각들

홋카이도 여행 테마 에세이

by 정하

설원 끝에서, 남겨진 생각들

여행의 마지막 밤은 편안했다.
유명한 호텔답게 식당은 높은 층고를 자랑했고,
9층에서 유리 벽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
레스토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침 식사는 훌륭했다.
신선한 생선회와 정갈한 디저트.
딸과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천천히 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홋카이도 3박 4일의 여정이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 땅은
그저 설원이 아름다운 여행지가 아니다.

홋카이도는 원래 아이누 민족의 땅이었다.
지형도, 문화도, 역사도
일본 본도의 세 섬과는 결이 다른 곳.

메이지 시대,
일본은 이곳을 ‘개척’이라 불렀지만
그 이면에는 원주민의 삶이 지워진 시간이 있었다.
군사 학교가 세워지고,
변방으로 밀려났던 사무라이들은

‘미스터 선샤인’ 드라마 속에서 ‘유연석’이 연기하였던

낭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다가
근대 국가의 군대로 재편되었다.

그들의 칼은 방향을 바꾸어
홋카이도를 지나
조선으로 향했다.

그들의 역사는 언제나 미화된 이름으로 침략을 대신했다.
개척, 근대화, 진출.
그러나 그 단어들 아래
감추고 싶은 학살의 얼굴들이 있었다.

지진과 화산의 땅에서 살아온 일본은
늘 불안과 함께 존재해 왔다.
대륙으로 나아가려 했던 욕망은
어쩌면 그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을지 모른다.

6·25 전쟁 특수로
경제를 회복했던 일본,
역사의 복잡한 계산 속에서
정직하게 우리 나라를 대하지 못하고

역사 청산도 회피한 그들은

언제나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편안한 이웃은 아니었다.

역사 앞에서
정직한 성찰과 반성이 없는 태도는
관계에 일어난 균열을 메우지 못한다.

나는 이곳에서
따뜻한 온천과,
설원과,
딸과 웃던 시간을 경험했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일은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홋카이도는
설원에 잠겨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품고 있었다.
지워진 역사와,
남겨진 풍경과,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까지.

나는 일본에 대한 단정 대신
복잡한 감정을 품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풍경은 아름다웠고,
역사는 무거웠으며,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여행은
언제나 풍경만을 보고 돌아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홋카이도는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설원, 그리고 대게와 맥주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