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행기
지진의 땅, 칼의 기억
ㅡ에필로그ㅡ
홋카이도 도로는 대체로 왕복 4차선 이상이 드물다고 한다.
그 도로를 달리는 차들 또한 경차나 소형차가 많았다.
아파트 역시 소형 주거 공간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이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검소한 생활 태도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예전 대마도에 처음 갔을 때,
도로가 깨끗한 점에 놀랐다.
마을 집들이 어딘가 폐쇄적인 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유리창을 활짝 열어 둔 집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창문은 닫혀 있었으며 커튼까지 내려져 있어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리고 개인 여행으로 간 도쿄 여행 때 만난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했고
수많은 인파가 뒤섞여 끊임없이 부딪히는
시부야, 긴자, 신주쿠의 번화한 거리에서도
우리는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 없이
여행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예의 바르고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런 태도는 흔히 국민성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국민성이라는 것은 단순한 성향이 아니라
사회·역사·환경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결과일 것이다.
일본인의 국민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자주 언급된다.
하나는 지진이라는 지질학적 특성,
다른 하나는 사무라이 문화다.
에도 시대 이전,
일본은 사무라이가 번주가 되어
군주의 권력을 위임받아 지역을 다스리는 구조였다.
사무라이는 두 개의 칼을 차고 다니며
하나의 작은 칼은 할복할 때 쓰고
다른 하나의 긴 칼은
공동체의 질서를 해친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현장에서 처벌할 수 있는 권한으로 썼다 한다.
튀는 행동,
공동체 질서와 무관한 강한 자기주장은
사무라이의 눈밖에 나는 순간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의 바르지 못하거나 민폐를 끼치는 일은
단순한 무례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일본 열도의 지질학적 조건이 더해진다.
활화산이 많고,
지진과 쓰나미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땅에서
사람들은 언제든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감각 속에 살아왔다.
그래서 일본 사람은 지금도
정치적 소견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속마음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의 도로는
넓어 보이기보다는 기능에 충실하고,
아파트와 자동차 역시
과도하게 크지 않은 규모를 유지한다.
이는 단순한 검소함이 아니라
재난을 전제로 한 생활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일본인의 검소함과 겸손함은
타고난 국민성이라기보다
사무라이 시대를 거쳐 온 역사적 기억과
지진이라는 자연 조건이 새겨 넣은
후천적 태도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영화 몇 편과
도서관에서 빌려온 몇 권의 책으로
홋카이도 설경에 가려진 이면까지
볼 수 있어서
훨씬 깊이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관심이 있는 곳에
앎이 열리고
앎이 있는 곳에
이해가 열린다는 것
학살의 땅이었던
홋카이도는
겨울은 설경으로
여름은 서늘한 기온과 라벤다향으로
사람들을 부른다고 했다.
나는 이번 여행으로 일본의 역사 지층에
켜켜이 쌓인 삶을 조금 내다보고 온 듯하다.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있었고
뜻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