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구리 먹방의 추억
아는만큼 보이는 국제도시 손구리
2020년 기준 한국에 등록된 외국인은 250만명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 등록 외국인이 80만명 내외하던 시절 포천 동두천 양주를 아우르는 염색 - 가구 벨트는 등록 외국인중에 10만이상이 상주하는 명실상부 한국의 주요한 외국인 벨트였다 등록 외국인만 그정도였고 우리가 흔히 '불체'라고 부르는 비등록 외국인이 훨씬 많았으니까 이동네에서 이루어진 가구와 염색이 얼마나 3D스러웠는지는 이글에서 특별히 부연설명을 하지않도록 하겠다
나는 한참 호기심이 왕성했을 고등학교와 대학 초입을 송우리에서 보냈다 송우리에서 포천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야자가 끝나고 밤늦게 버스를 타면 으레 외국인 노동자들이 버스를 탔다 열린 버스 앞문으로 사람들이 송우리를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보고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는지를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할수있었다 한국에 온지 오래된 분들은 그냥 말없이 버스카드 찍고 버스를 탔고 현지적응이 애매한 분들은 "아저씨 송우리 가요?" 를 또박또박 발음하는 편이었으며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된 사람은 송우리를 손구리 라고 발음했다 그나마도 손구리만 애처롭게 손구리 손구리를 반복했던것으로 기억한다
(송우리의 공식 표기는 Songu-ri 인데 영어권 국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손구리로 오해할수있다고 생각한다)
퇴근길의 피곤한 72번 버스기사 아저씨도 이런일이 엄청 많다는듯 갑니다 안갑니다 대신 가는경우에는 "가" 하고 말았고 안가는경우에는 그냥 문을닫고 가버렸다 그때는 그랬다 손구리를 다니는 버스기사님들이 쿨내가 진동했던적이 있었다
그때는 야구를 한참 많이할때였는데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동네형들과 사회인야구를 하고 낮술을 거나하게
마신다음 부모님께 걸리면 혼나기때문에 후라보노를 씹고 송우리 초입인 3단지입구나 송우터미널에서 걸어서 집에 갔다 술한잔 걸치고 터벅터벅 땀내나는 몸으로 뉘엇뉘엇 지는해를 바라보면서 집에가는 그 길에 송우사거리에서 가산 가는 20번 버스가 등장하면 분위기는 급격하게 반전된다 내촌-가산 역시 포천에서 공단이 많은 지역으로 일요일 늦은 오후는 볼일을 보고 귀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번에 몰리는 그런 시간인데 20번 버스가 송우시장 사거리에 등장하고 문을 열기가 무섭게 탑승 러쉬가 시작된다 열린 창문으로 먼저 머리부터 타고 오르는 사람, 뒷문으로 타려다가 실패하는 사람, 버스카드 찍어야되는데 잘 안찍혀서 뒷에있는 다른국가 외국인에게 한국말로 한소리듣는사람,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나뒹구는 의정부 국빈관 나이트클럽 전단지를 보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것을 느꼈다 '아...여기가 정녕 한국이란말인가.....'
고삼때는 야자마치고 집에가는길에 아랍어를 배워본답시고 아랍어를 배웠는데 알고보니 방글라데시 생활회화였다던지 외국인인줄알고 어디에서 왔어요? 했다가 한국사람이어서 봉변을 당할뻔 했다던지 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많지만 손구리가 먹방의 주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외국인 식당때문이다
처음 어떤 식당에서 어떤음식을 먹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명확한것은 처음은 확실히 호기심으로 그곳에 갔다는것이다
사마르칸트라는 우즈벡 식당이었는데 송우리 시장안에 있었다 대표메뉴는 꼬치구이인 샤슬릭.
소고기 양고기 두종류를 팔았는데 가격에 비해 엄청 푸짐하게 나왔으며 한국말이 1도 통하지 않던 사장님 아버님. 연세 지극한 할아버님이 나오셔서 꼬치 하나를 시키던 두개를 시키던 부채질을 해서 숯불에 구워주셨다 보드카는 한병에 만원. 보드카에 꼬치두개, 당근샐러드에 쌈사(무슬림 스타일 삼각형 고기빵) 후식으로 차 한주전자를 먹어도 이만원이 안넘었다
나는 인생에서 육즙이라는 존재를 이 식당에서 배웠는데 한입 베어물면 입안에 흥건하던 고기의 향연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고기만 먹고도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가 되는 맛
이 식당 딸 둘이 쌍둥이로 송우초등학교에 다녔던것으로 기억난다 나중에는 장사가 잘되서 대구로 이사갔다는 소식만 들었다 송우리에서 사라져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슬픈 식당 신년을 이곳에서 보내본적이 있었는데 테이블을 구석으로 다 밀고 러시아 노래틀고 사람들 춤 엄청 추는것 구경했었다
꽁짜술도 엄청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항상 여기서 계산하고 집에가는길에 '오르빗' 이라는 러시아 껌을 사서먹었다 수박맛껌이 엄청 생소했었는데 나중에 직접 우즈벡에 가보고 나서야 알았다 우즈벡에는 수박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난다 러시아 맥주 마스터피스 발티카 맥주와 수박맛 오르빗, 당근샐러드와 샤슬릭 메뉴라인업이 한곳도 빠지는곳이 없었다
송우리 시장안에는 방글라데시 식당도 있었다 우즈벡식당이 무난한 인테리어였던데 비해
이곳은 방글라취향이 가득 반영되어 핑크색에 붉은 정육점 불빛으로 처음에는 굉장히 낮선 느낌을 주었으나
몇번 가보니까 분위기는 크게 중요하지않았던것 같다 방글라데시 식당은 순전히 호기심에 방문한곳으로
한국에서 식당하는 사장님치고 한국말을 되게 못하는 사장님이었는데 처음방문에 메뉴를 추천해달라는 나에게 "한번먹어 맛없어 두번먹어 맛없어 세번먹어 맛있어"를 피력하면서 첫방문은 완전 무료 두번째 방문은 반액할인 세번째부터 제값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세번째부터 맛있어졌다)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 주구장창 사슴카레와 난(밀가루 빵), 고수가 듬뿍들어간 샐러드를 먹었다 우유를 설탕넣고 조린 요거트도 먹었는데 요거트는 너무 비싸서 맨날있던 메뉴는 아니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이곳은 시장 이층에 위치해 있어서 엄청난 특장점이 있었는데 접근이 무척 쉬웠다는 점 말고도 고등학생이 교복을 입고 술을마셔도 미성년자 단속반이 이곳을 생각조차 못한다는것이었고 우리가 등장하면 자연스레 사장님은 가정용 참이슬 한병과 재떨이를 가져다 주셨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때 담배는 피우지않음)
야자를 중간에 도망치고 방글라식당 문을 밀면 사장님이 배시시 웃으면서 " 공부 없어 학생 괜찮아?"를 연발하셨었고 나는 그때마다 "공부 많이 많이 머리아파 소주 괜찮아요"로 대답했던것으로 기억한다
송우리에는 필리핀 식당도 있었다 롯데리아 뒷골목에있었는데 필리핀 식당답게 부페식으로 운영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접시에 밥을 푸던 반찬을 올리던 나중에 사장님이 다 보고있다가 접시에 올린만큼 계산을 했었다 이곳을 자주찾았던 이유는 필리핀 특산물 산미구엘 맥주 때문인데 당시 작은병(300미리) 한병이 홍대에서 팔천원정도 할때 이곳에서는 무려 1리터 산미구엘 병맥주가 오천원이었었다 산미구엘 맥주에 바나나튀김, 코코넛에 요리한 돼지고기 이렇게 많이먹었고 이렇게 먹다가 배부를것같으면 게브라 미구엘이라는 증류주로 폭탄을 만들어먹었다 필리핀 식당답게 교회커뮤니티의 중심이었으며 식당겸 교회였던곳으로 기억한다 성탄절에 구석에서 술먹다가 케익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외국식당이나 식당 한켠에 물건을 파는 구역이 있는데 여기가 제일 컸다 필리핀 식자재를 많이 팔았는데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식자재일뿐. 바나나튀김에 산미구엘. 송우리 롯데리아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가벼운 메뉴는 어디를 가든지 1차먹고 2차갈때 들러가기 참 좋았었던 기억이다
내 첫 해외여행이 몽골이었는데 그래서 몽골식당도 많이갔다 징기스칸의 손자이름을 한 식당이름이었는데 시장 초입에 있었다 우리나라 칼국수와 수제비의 유래가 몽골인데 몽골에서는 칼국수를 고리테슐이라고 불렀다 몽골음식이 원래 향신료와 야채를 거의 쓰지않는데 그래서 국물이 진했고 비가오는날 많이갔었다 호쇼르 라는 군만두는 튀긴만두인데 비오는날 고리테슐 국물에 보드카 한모금하고 기름 육즙 가득한 호쇼르 한입베어물면 손구리에 사는 즐거움을 느낄수있었다
몽골아저씨들이랑 술을먹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하게되는데 내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만달고비까지 간 이야기를 하면 공짜술을 많이 주셨었고 "진짜 남자" 라는 표현으로 으쓱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었다 구심점 답게 생일잔치부터 장례식까지 몽골인들의 경조사를 대부분 진행하던 식당이었다 우즈벡 식당과 더불어 새해가되면 말고기 햄을 서비스로 줬다 말고기로 햄을 만드는게 이상할수도 있지만 향신료를 넣고 고기를 갈아 훈연하면 그냥 햄이랑 별차이가 없다 말고기햄에 치즈로 보드카 먹으면 정말 맛있다
당시 송우리에 오래된 현지식당중에 한국인 아줌마랑 결혼한 집이 두집있었는데 한집은 호야치킨 한집은 설딴케밥이었다 호야치킨으로 말할것같으면 대부분의 업계 후발주자들은 업계1위 가게를 목표로 스타트업의 열정을 불어넣는데 당시 손구리 치킨 업계1위가 호야치킨이었다 우즈벡 잘생긴 사장님은 묵묵히 닭만 튀기셨고 아름다우신 한국 사모님은 홀에서 서빙하시고 계산을 하셨다 두분이서는 공장에서 만났다고 했다 특이한건 염지방법이었는데 당시에 잘안쓰던 침전 염지(양념물에 닭을 담궈서 염지하는방법) 으로 그냥 닭이 맛있었다 위치도 한목했던것으로 기억한다 퇴근길 송우리 메인도로에서 닭을 튀기는 위력시위를 해대면 배고파서 그냥 못지나치고 비오면 비온다고 못지나치고 집에갔다가 다시와서 먹고 그랬다 지금은 가게를 넘기고
한국분이영업하는것으로 안다 호야는 우즈벡어로 '오빠'라는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설딴케밥은 우체국근처에서 영업하던 파키스탄 케밥집이었는데 여기도 케밥이 엄청 맛있고 가격이 저렴했다 홍대에서 새벽까지 놀다보면 배고프고 지치고 그랬는데 작은케밥하나가 사천원 할 시절에 송우리 설딴케밥은 삼천원에 조그만한 캔콜라도 하나줬다 식당에 가도 먹을수있었고 케밥차를 운영해서 터미날에서도 팔았는데 대학생때 학생회장인 친구를꼬셔서 매주 수요일 학교안으로 이 케밥차를 불러들였다 반응은 가히 폭팔적이었는데 학교안에 상주해있는 업체들의 반발로 이주만에 더이상 오지 못하게되었다 가끔 길가다가 케밥보면 송우리 설딴 케밥생각이 난다 아줌마가 중년으로 기억하는데 사장님의 동생 도련님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면서 정말 살뜰하게 챙기셨다 한국아줌마가 부르는 파키스탄 도련님은 그런데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 못했다
송우리 터미널 3층에는 우즈벡여자와 방글라남자가 결혼해서 오픈한 식당도 있었다 청춘남여가 사랑에 빠지는건 당연한일인거고 그것이 손구리에서 인종과 국가를 초월해서 이루어졌고 결실을 맺었다 원래 호프집이었던곳을 인수해서 인테리어가 가장 좋았는데 메뉴가 우즈벡 + 방글라 퓨전메뉴였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활발하고 이런 새로운 식문화에 대한 체험이 불을 붙였을테지만 당시만해도 외국식당도 어려운데 외국음식끼리 퓨전을 하는것은 시대를 너무 많이 앞서간 시도였다 금방 사라졌다
재미난것은 방글라 남편과 우즈벡 여자의 공용어는 한국어였다 두분은 한국어로 서로 대화했는데 외국인들끼리 한국어로 속삭였을 밀어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퓨전 식당 옆건물에는 나이 지긋한 우즈벡 아줌마가 운영하시는 우즈벡 식당도 있었는데 여기를 자주간 이유는 오롯이 포켓볼때문이었다 송우리에는 황실당구클럽이라고 국가대표 출신이 운영하는 국제규격 당구장도 있었지만 이 우즈벡 식당은 음식을 먹으면 포켓볼을 무료로 칠수있었다 보드카도 잔술로 팔아서 가볍게 들르기에 좋았다 발티카 맥주 큰잔에 따라서 포켓볼 테이블 구석에 올려두고 당구치면서 마시면 되게 맛있고 재밌었다 당구대는 물론 고된만큼 많이 비틀어져있었지만 그런게 중요한 나이나 실력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려니 했었다 이식당의 유일한 단점은 맛이 많이 어렵다는점이었는데 일단 메뉴에 한글표기가 없었고 (진심으로 현지인을 위한 식당) 만두그림보고 시켰는데 만두속에 밥이 들어있는등 요리의 난이도가 많이 높았다
메뉴에 한글표기가 없으면 사장님이 당연히 한국말도 못했다 우체국 골목 인도식당에서 그랬는데 옆테이블에 사람도 없어서 사장님의 메뉴설명 이런거 일체 없이 그냥 영어 메뉴만보고 대충 몇개를 시켰었다 탄두리 치킨이야 워낙 유명하고 무난한 맛이었기때문에 좋았었는데 크림치킨에서 신세계를 경험했었다 치킨 커리를 버너에 올려서 나오는가 싶더니만 난에다 찍어먹으려는 찰나 생크림을 그 치킨 커리에 부었다 생크림도 좋아하고 치킨커리도 좋아하는데 생크림 치킨커리는.........
이맛이 다시 그리워진것은 이로부터 15년쯤 지나고 나서였다
태국식당은 지금도 있는데 낮에가는 식당과 밤에가는 식당이 따로 존재한다 송우 사거리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밤이나 낮이나 한국 손님을 받는 식당은 주된 타겟이 한국사람이고 따라서 한국인을 배려한 맛이 느껴진다 낮에만 한국손님을 받는 식당은 98% 태국 본토의 맛 팟타이와 똠얌 쏨탐타이의 맛을 자랑하는데 오후 다섯시 이후에 한국손님을 안받는다 석양과 함께 일을 시작하는 태국분들 혹은 그냥 태국분들이 여기에서 기다리시는 경우가 많고 또 밥을 먹는경우가 많은데 술먹은 한국남자들이 시비를 걸고 말을걸면 사고가 많이난다고 했다 사장님의 영업방침을 부디 존중해 주시길 개인적으로 태국스타일 쌀국수보다 베트남스타일 쌀국수를 좋아하는데 이곳 쌀국수라면 꼭 베트남 쌀국수가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송우리에는 네팔 식당도 있다 원래는 두곳있었는데 한곳은 장사가 잘되서 동대문으로 이사를갔다 두곳다 네팔사람들이 영업하는곳인데 두곳다 간판에는 인도- 네팔 음식점이라고 표시되어있다 한국사람이 호주에서 스시집을 하는경우라고 생각하면 될것같다 인도식 치킨, 네팔식 만두(모모) 맛은 뭐 그냥 저냥인데 가격이 저렴하지 못하다고 느끼는것은 워낙 현지물가가 저렴하기때문이다 이곳에서 추천하는 메뉴는 명절이나 특별한날 준비하는 네팔 전통술이다 막걸리같은 동동주도 있고 뜨거운물을 부어 빨대로 빨아먹는 술도있다 비오는날 조용히 빨대로 조곤조곤 빨아먹다가 처음에는 와인처럼오는데 나중에는 이과두주처럼 오게되고 기어서 집에가는경우가 생긴다 서남아 사람들은 '케럼'일라고 불리우는 알까기와 포켓볼이 혼합된 게임을 즐겨하는데 여기가면 이 께럼을 체험해볼수있다 룰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스리랑카에 다녀온이후에 스리랑카 식당에 다녀온적도 있다 송우리 우체국 도미노 피자 골목으로 들어가면 스리랑카 슈퍼가 있는데 여기도 사모님이 한국분이시고 사장님이 스리랑카분이다 오랫만에 스리랑카 말을 할수있는 기회를 얻었고 스리랑카에서 바꾸지 못한 현지화를 여기서 한국돈으로 바꿨다(스리랑카 돈은 한국에서 환전이 안된다 개도국중에 한국에서 환전이 안되는 나라가 많다) 사모님도 돈을 바꿔주면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리랑카돈을 한국돈으로 바꿔줘봤다고 했다 평일 저녁이나 주로 주말에만 영업을 했는데 주말에 스리랑카 사람들이 모이면 스리랑카 음식도 해줬다 스리랑카식 볶음밥이나 롤튀김같은것 원래 현지에서도 현지식을 잘 안먹었기때문에 감흥이 없었지만 스리랑카술을 구할수있는것이 이곳의 큰 장점이다 아락이라고 불리우는 스리랑카 코코넛 럼주를 여기서 구할수있다
이천년도 초반만해도 송우리는 붐볐다 주말 여름밤이 되면 터미날 닭집앞은 늘 터번쓴 사람들로 붐볐는데 나중에 이 터번으로 국가와 종교를 구분할수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터번이라고 다 같은 터번이 아니고 국그릇모양의 모자를 썼다고 다같은 모자가 아니었다 송우리 터미날 건물 꼭대기에 교회라고 써붙여둔 건물이 있었는데 기독교 교회가 아니라 이슬람 교회였다 금요일밤 예배를 마치고 또는 토요일 일요일 일층 치킨집에서 사람들은 치킨을 엄청 먹었다 새로산 캠코더를 자랑하기도 하고 핸드폰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서 저정도 여유를 갖기위해 한국에서 보냈을 시간의 축적이 얼마나 고됐을지 나중에서야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호주에서 그랬고 스리랑카에서 그랬듯
이천년 초반에 매년 송우초등학교에서 외국인 축제가 있었다 국가별로 장기자랑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 팔고
각국 전통의상을 입어보는 행사였다 노래는 맨날 필리핀 아줌마들이 일등을 했는데 당시 일등곡이 아직도 기억난다 왁스의 '오빠' 였다 러시아 아줌마들은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고 그외 나라들은 어떤노래를 불렀는지 딱히 기억이 없다 나도 몽골에서 사온 전통의상을 대여해줬는데 몽골 전통의상은 생각보다 큰 인기가 없었다 두루마리 모양의 의상은 특이했지만 대학생때 돈이없어서 마무리인 허리띠와 모자를 좋은걸로 못샀다
축제의 백미는 먹거리 잔치였는데 좋아라하는 필리핀 부스에 튀긴 바바나, 베트남 부스에 쌀국수 네팔부스에 모모 만원으로 배불리 먹을수있었던 먹거리 천국이었고 축제의 취지에 맞추어 저렴하게 나누는 자리였다 이 축제는 외국인 노동자 이주센터에서 주최했었는데노무현 대통령 서거이후 애도기간으로 취소된후 아직도 다시 진행되지 못하고있는것으로 안다 다른것을 다 물리치고서라도 먹으러만이라도 갈만한곳인데 참 아쉽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이 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나는 동네에 있는 식당문을 밀고 들어간것이지 이 식당을 알아서 들어간것은 아니었다 몽골을 제외하고는 음식을 먼저 경험하고 나중에 출장다니면서 손구리 식당의 고향 나라들을 방문하게되었고 손구리에서 먹어보았던 그 음식을 현지에서 먹어보고 그 오리지날과의 차이를 음미하면서 과연 무엇이 오리지날인가하고 생각해본적이 있었다
음식은 문화다 지금 뉴욕에서 차고 넘치는 스시집을 세기전 미국에서는 생선을 날로먹는다고 야만인으로 취급했었다 식문화가 어떤식으로 전파되는지는 차고 넘치는 다양한 경로가 있겠지만 내가 해외에서 만나는 한식당이 반가운것만큼 그 이상으로 한국에서 손구리에서 고생하는 이들에게 반가운곳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한번먹으면 모른다 두번먹어도 모른다 세번먹어야 맛있다 우리를 세번 참아줬던 그 누군가를 위해서
타인과 공존하고 이해하는 그 길목에서 이번주말 송우리 외국인 식당을 추천한다
코로나로 떠날수없는 지금 여권을 챙기도 않아도 되는 세계여행
한잔먹고 두잔을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라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당신에게 감사해하는 우리동네 이웃을 만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