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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Apr 20. 2021

히말라야 산장에서 생긴일

 


푼힐에 오르는 길은 그렇게 만만치않았다 이른 아침을 산아래 비렌탄티 호텔에서 먹었는데 수더분한 사장님 말로는 고레빠니 까지 여덟시간이 조금 넘게 걸릴것이라고 했었다 나는 이말을 너무나도 철썩같이 믿었다 더욱이 아침에 헤어진 포터는 오고있기는 한건지 중간 지점인 울레리에서 한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보이지않았다 자기는 빨리 올라가니까 가게에 들러 뭐좀 사온다고 나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한것같았는데 아침에 헤어지고 저녁까지 못만나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것이다 고레빠니 롯지에 등산객과 롯지 사장모두 포터가 낙오해버린 흔하지않은 경우를 두고 모두들 재미있어 하는듯했다 비렌탄티에서 출발한 사람은 보통 울레리나 울레리 조금넘어서 하룻밤을 잔다는것을 나중에야 알게되었다

그당시 내 복장은 군대에서 입던 깔깔이와 반바지 한개 여벌의 양발이 전부 그나마 입고있던 티셔츠는 땀때문에 다시 입을수도 없었다 둘이상 출발하는 여행짐을 쌀때는 누군가 낙오할수있다는 점을 반드시 유념하고 짐을싸라는 오래전 선배의 조언을 무시하고 내 배낭에 먹을것과 전자 제품으로만 가득 채운 내 불찰이다 너무 동네 뒷산 오르듯 생각을 한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발 3천미터가 여기서는 언덕이다

뜨거운 차를 연거푸 두세잔을 시켜보았지만 히말라야 산중의 추위는 포카라의 기온과는 사뭇다른 초겨울날씨라 나는 롯지 사우지(사장님 현지어)에게 담요를 부탁하여  담요를 둘둘말고 포터의 안부를 걱정해야만했다 등산할때 서명한 팀스와 퍼밋(허가서의 일종)에 포터의 안전은 내책임 나의 안전은 포터의 책임이라는 이미 성립된 책임감보다 나때문에 산에온 사람이 혹여 무리한 산행을하다가 혹여 잘못되는것은 아닌지 하는 도의적인 걱정이 먼저인 마음이었다

저녁 일곱시가 넘었을까 '아랫마을에 포터가 반드시 있고 아침에 이곳으로 반드시 올것이라는' 롯지사장의 너무나도 당연한 '위로'를 받고나서 나는 볶음면과 만두로 늦은 저녁을 주문했다 '그래 어차피 여기까지 길은 하나이고 반드시 포터는 올것'이라는 마음을 먹고 걱정해도 바뀌지 않을 상황에대해서 조금더 낙관적으로 대처하기로했다

그때였다 문을열고 한명의 등산객이 들어왔다

지쳐보이는 표정을 한 동양인 관광객이었다 나처럼 비렌탄티 호텔 사장에게 속아 한번에 고레빠니 까지 올라온것일까? 혹시 한국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뜨거운 차를 급하게 주문하는 영어발음을 들어보니  중국사람 이었다  

정전된 산중, 롯지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않다 더욱이 여벌의 옷과 침낭이 없는 나는 롯지 사우지가 피워주는 난로 주변에 꼭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고 난로주위에는 한국인 여행객인 나, 중국인 여행객 한사람 카트만두에서 의대를 다니는 대학동기 네명이 난로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들 영어권 국가가 아님에도 영어로 대화해야하는 상황이 재미있기도 재미있지 않기도 한 상황에서 나보다 저녁을 먼저 주문한 대학생 녀석들이 음식을 받아들고 난로 넘어편으로 사라진 사이 나와 중국인 두명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중국인치고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으며 자신이 베이징 근처에있는 국영 물산회사에서 이것저것 원자재를 구매하는 구매담당 바이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외국친구들을 만나면 반드시 하게된다는 '내가 몇살로 보이냐?' 놀이부터 처음 우리의 시작은 그렇게 애매하고 모호한 감정은 아니었던것으로 기억한다  더욱이 엘리트  중국 사람을 만난다는것은 평소 만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있는지 알수있는 기회였으므로 '여행'이라는 나의 견문 넓히기에 부합되는 굉장히 좋은 기회 일수도있다고 생각했다

왜 여기까지 여행을 왔을까? 어쩌다 우리가 만나게 됐을까? 라는 지극히 상투적일지도 모를 운명론에 기반한 동양적인 사교대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중국인 친구는 나에게 굉장히 도발적인 말을 걸어왔다 "요즘 너희나라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이라며? 그래서 중국눈치를 엄청 보고 중국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한다면서?" 그는 선을 한번에 쎄게 넘었다 내가 1번을찍건 2번을찍건 그건 대한민국 영토안에서의 일이고 나를 긁어버린 녀석에게  그제 나온 뉴스기사 한줄을 읊어줘야만했다


"한국이 고등훈련기 50대 필리핀에 팔려고했는데 니네 나라가 팔지말라고 눈치 주더라? (필리핀과 중국은 영토분쟁중이다) 근데 우리나라는 그냥 50대 팔기로했어 이래도 눈치본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겠지?"

여기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말을 녀석은 자신이 가지고있는 대륙의 위대함(?)에 대해서 한참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고 중국이 일어설것이라는 진부한 스토리의 대륙굴기를 히말라야 산장에서 듣게되다니  나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티벳문제에 대해서 물어봄으로써  그의 잘못을 일깨워 주기보다는 서로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은 누구나 있는거니까 이쯤에서 그만두자는 화제 전환의 의미로서 던진말이었는데 그친구의 대답은 점점더 자신의 주제에 몰입되는 느낌이었다 밥 기다리다가 봉변이 따로 없었다. "티벳? 난 티벳이 별개의 나라이건 원래 중국이었건 그런건 관심없어  현재의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라구 친구 우리나라(중국)은 힘이쎄고 막을수있는 나라가 없지 따라서 우리가 '점령(Occupation)'을 하던 '통치(Governance)'를하던 어디까지나 힘의 논리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구 지금 네팔을 봐 우리나라 없이 네팔이 혼자 자립을 이룰수있을것같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네팔역시 난 중국의 속국이라고 생각해 국가간의 관계는 오직 힘에 의해서 존재하는것이지 정의같은것은 논할일이 아니야 "


그렇게 커다란 롯지가 아니었으므로 난로 건너편 촛불에 의지해 식사를 하던 네팔 대학생들의 표정이 어둠근처에서 더 어두워지는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나는 대화를 차분히 이어나갔다 "너희들은 항상 원 차이나 라는 말로 중국사람이 한개의 나라, 한개의 문화라고 '강요'하지 나는 너의 국가의 정책이나 통치자에 대해서 관여할 마음이 조금도 없어 그러나 분명한건 지금 이순간에도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분신자살을 꿈꿀만큼 너희 '통치' 혹은 '점령'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거야 그래서 티벳 난민들이 네팔이나 인도까지 넘어 와서 마을을꾸리고 살고있는것 아닌가?"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받아쳤다


"이봐 네팔에 있는 티벳 난민촌 마저도 우리나라가 통제한다니까? 아직도 모르겠어? 힘의논리? 언젠가 우리가 네팔을 통치 하게된다면 그 난민촌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어? 중국 정부를 부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중국이 네팔과의 국경에서 세관통과만 조금 까다롭고 거칠게해도 네팔은 한번에 무너질 그런 나라라고.... 그들이 자유를 말하건 분신자살을 택하건 아무런 의미없는 행동이야 지금 정부는 힘이세고 힘이센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것이 바로 정치고 국제사회의 정의 아니야?"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왔다가 포터가 낙오되었고 저녁을 기다리며 힘에 논리에 기반한 대륙굴기를 듣고있다 무려 히말라야에서

"이봐 대륙친구 나는 지금 한기를 느껴 내가 너무 건강하고 힘이센 나머지 포터가 미처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구 그래서 갈아입을 옷이없어서 이렇게 담요를 두르고 난로가에 앉아있지 나는 네가 나를 위해서 산장 뒤편에 있는 장작을 옮겨다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어 줬으면 좋겠어"

갑작스런 나의 화제전환에 당황한 기색으로 중국인 친구는 말을 되받아 쳤다

"내가 왜 너를 위해 난로에 장작을 넣어야 하지?"

나는 천천히 - 두배는 느린 발음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봐 대륙 친구 니가 방금 말한 그 힘의 논리를 잊은거야? 나는 지금 니가 나와 싸워서 이길수있을거라고 생각하지않아 나는 포터가 낙오해버릴정도로 튼튼하고 '군대'에서 누군가를 싸워서 이기는 기술을 배운사람이라고 설마 한밤중의 히말라야에서 나의 '통치'를 거부하는것은 아니겠지?"

나는 그날밤 아주 따뜻한 밤을 보낼수있었다  산중의 별은 늘 시원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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