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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Jun 15. 2021

라의모든것 라싸나이다

코코넛으로 만드는 스리랑카 전통주

라싸나이다’ 


1. 예쁘다아름답다는 뜻의 스리랑카 말.


2. 라-에 사이다를 타서 먹으니 참으로 맛이 좋더라.


스리랑카로 파견되기 전, 국내교육 받을 때의 일이다. 89기 스리랑카 팀은 남자단원만 세 명이었고 연령차가 심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스리랑카에서도 현지어 선생님은 굉장히 애를 먹었다. 수업을  잘 못 알아듣거나 지루해할 때마다 현지어 선생님들이 남자 학생 세 명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유용하게 쓴 단어가 바로 ‘라-’라는 것이었고 그 단어는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현지어 선생들은 매번 스리랑카 음식은 모두 좋은데다 전부 맛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코코넛으로 만드는 막걸리 같은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 전폭적인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라-’라는 싱할러 알파벳이 주는 알지못할 친밀한 느낌과  더불어 ‘막걸리 같다’는 토속적인 친숙함이 겹쳐, 어느샌가 스리랑카에 가면 반드시 마셔보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1순위가 되었다. 


기억 속의 라를 다시 만나다


처음 콜롬보에 도착하여 정신을 차리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라’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현지어가 무척이나 미숙하기도 했거니와 어렵사리 만나게 되는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는(영어를 잘하는) 현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라-' 에대한 보편적인 생각은 시골에서나 먹는 구하기 어려운 술인데다 맥주나 와인, 아락을 두고 굳이 자기들도 잘 마시지 않는 ‘라’를 외국인 봉사자가 찾는 것에 대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마치 숨기고 싶어 하는 자국의 마이너 문화를 외국인인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는 배타적인 느낌까지 풍겼다. 유일하게 남은 건 한국에 있을 때 현지어 선생님이 전해주었던 “네곰보 위쪽의 코코넛이 유명하다.”같은 전언같은 말 뿐이었다. 미련을 안고 임지인 암파라(Ampara)로 부임하였으나 보수적인 스리랑카, 그것도 보수적인 동네에서 갓 부임한 외국인 선생이 임기 초반부터 스리랑카 전통술에 대해서 물어보고 찾아다니는 것에 대해 현지인이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해 사뭇 불안한 감이 있기도 했고 일단 스리랑카 맥주(라이언 라거)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에 시나브로 ‘라-’는 한동안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라와 첫 번째 만난 것은 2014년 5월 8일 오후 두시쯤으로 기억한다. 71기 선배의 현장사업 세레모니 방문 차 수도 콜롬보에서 ‘만나르(Mannar)’로 이동하는 길이었는데 서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북쪽으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네곰보를 지나 땅마저 낮선 길을 지나칠 무렵, 현지어 공부시간에 그렇게도 집중해서 외웠던 무수히 많은 ‘라-’ 간판을 발견했다. 급기야 설렘을 안고 차를 세워서 드디어 '라-'를 마셔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길가 양조장의 위치가 음주운전을 조장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기대감을 안고 처음 마셔본 라의 느낌은 살짝 시큼하긴 한데, 텁텁하지는 않은 막걸리 맛이었다. 막걸리의 진중한 텁텁함 대신에 이온음료의 말끔한 맛이 뒷맛으로 남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나르 가는 길에서 ‘라-' 를 처음 만났다 


-’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


라는 보통 코코넛 나무 수액을 통해서 만드는 술을 통칭하는 말인데, 스리랑카에서는 라가 만들어지는 나무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종류로 정의한다. 현지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킹 코코넛 라’부터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면서 가장 고급스러운 ‘뀌뚤 라’, 자프나를 비롯해 바티칼로아 북부지역에서만 재배되는 ‘탈’ 코코넛을 이용한 ‘탈 라-’가 세 가지 종류의 스리랑카 라-다.


나무의 생김새가 다른 만큼 맛도 다 다르다     


라는 보통 코코넛 꽃의 수액으로 만드는것을 정석으로 친다. 이른 아침과 저녁, 하루 두 차례에 걸쳐 주류 제조업 허가 및 ‘하쿠루’라고 불리는 ‘전통 시럽 제조 허가자’들이 꽃이 핀 코코넛 나무에 올라서 꽃줄기에 상처를 내고 수액받이 통을 설치하고 교환한다. 나무 한 그루당 보통 하루에 2리터 정도의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데, 라는 이렇게 채취한 수액을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모아 넣고 약간의 이스트를 첨가한 다음 이틀간 숙성시킨다. 현지인 중에서도 세세하게 맛을 따지는 사람은 아침 ‘라-’ 인지 저녁 ‘라-’ 인지도 따진다 숙성온도가 높은 낮과 비교적 낮은 밤의 맛의 차이가 미묘하다는데 초심자에게 밤낮의 맛을 구별하기는 갈길이 멀다 


지역 양조장에서 숙성된 '라-'를 양조장주인이 병에 담아 팔고있다 

      

정말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현지인의 경우 그냥 킹 코코넛 과즙에 이스트를 조금 섞고 일주일 간 집에서 발효시켜서 마시기도 하는데 이것은 맛도 굉장히 없을뿐더러 사실 집에서 술을 만드는 것 자체가 스리랑카 국내법 위반사항이기도 하다.

      

현지 술들이  현지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려면 일용직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을 생각해 보면 그 존재감을 이해하기 쉽다 스리랑카의 경우 수입와인은 한병에 이천루피, 증류주인 아락은 한병에 천 오백 루피정도에 거래되고 있으며  현지 맥주는 한캔에 이백루피 정도 한다. 반면 비숙련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임금은 천 이백루피 정도이며 가정을 부양하면서 퇴근 후에 현지 담배 한 개피와 얼큰하고 속든든하게 술을 마시고 잠들 수 있는 데는 바로 일리터 한잔에 100루피  '라-'가 커다란 대안이자 스리랑카 서민의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다

  

물론 현지인들도 좋은날 기념해야할 중요한 날에는 아락과 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매일 마실 수 없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아쉬워할 뿐이다 매년 세수가 줄어드는 스리랑카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가는 주요 세금 항목에 술과 카지노로 대표되는 유흥문화가 있고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세율로 서민의 숨통을 쉬게 해주는 '라-'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그 옛날 피우던 솔 담배 한개피와 탁배기한잔 마시고 테이블에서 젓가락 치기같은 의미를 준다


라의 가격은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양조장에서 나누어주는 커다란 플라스틱 컵을 기준으로 100루피 정도에 형성되어 있다. 뀌뚤 라의 경우 한 컵 당 150루피 정도가 정가인데 뀌뚤 라가 비싸고 고급으로 쳐주는 이유는 뀌뚤 야자나무가 비교적 고산에서 자라는 꽃을 자주 피우지 않는 야자나무이기도 하고 이 나무의 수액을 불에 졸이면 뀌뚤 시럽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뀌뚤 라는 시큼함과 더불어 진한 여운이 남는 달콤함을 뒷맛으로 주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업계 1위 마담페 병 라-

스리랑카는 한국에서 시행하기도 했던 비살균 탁주의 지역 이동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라를 접하기가 매우 어려웠었다. 그러나 최근 마담페(Madampe) 지역에 살균 시설을 갖추고 ‘병입’을 하여 지역이동이 가능한 코코넛 라 공장이 성업 중에 있다. 브랜드 이름은 ‘이글 라’이다. 한 병에 120루피(병 보증금 20루피)를 받고 있다.


따라서 라를 찾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라를 찾으려는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코코넛 라에 대해서는 접근이 용이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병입을 하지 않는 비살균 탁주인 뀌뚤 라와 탈 라를 구해서 마시고 싶다면 라의 주 생산지인 누워라 엘리야나 자프나에 직접 방문해서 마시는 수밖에 없다. 


병입 라와 지역 양조장에서 파는 생(生) 라의 차이점은 알코올의 도수인데 보통 병 라가 조금 센 편이다. 생 라가 8도 정도의 스트롱 맥주의 도수를 보인다면 병라는 약 15도 이상의 와인느낌을 준다. 병입을 하고 운반되는 과정에서 내부 발효가 되는 영향인지 일반 지역 양조장 라보다 도수가 세게 느껴지고 탄산이 강한 편이다.


잘 발효된 누룩의 향기라의 맛


라의 맛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와인은 한 잔 마실 때마다 수십 가지로 다르게 맛을 표현하는데 라의 맛은 어떻게 표현하면 정확할지 난감한 편이다. 심지어 현재 글을 쓰는 책상 위에도 라 한잔을 따라놓고 마시고 있지만, 고민은 쉽지않다. 


먼저 술을 마시기 전에 향을 음미해보면 잘 발효된 누룩 향기가 난다. 현지 양조장에 가보면 ‘며칠 빨지 않은 양말’ 냄새처럼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냄새가 나는데 현지인들은 이것을 ‘라 익는 냄새’라면서 아주 좋아한다. 한 모금을 입안에 넣어 혀로 느끼는 라의 맛은 시큼한 막걸리의 맛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데 중간으로 넘어갈수록 가벼운 누룽지 향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코코넛 과육에서 맡을 수 있는 그 향기와 궤가 같다. 고소함을 느낄 새도 없이 목으로 넘기는 뒷맛은 막걸리의 텁텁함을 기대하게 되지만 사실 텁텁함은 없고 이온음료를 마셨을 때처럼 약간의 무게감이 있고,  곧이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목 넘김으로 라의 맛을 정리할 수 있겠다. 


사실 라는 모름지기 탁배기 마시듯 대접에 퍼서 꿀걱 꿀걱 마시는 것이 제 맛이라고 생각한다.                                                   


일요일 붐비는 현지 라 양조장.


늦은 오후가 되거나 주말이되면 삼삼오오 양조장으로 마을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양조장에서 주는 플라스틱 컵 몇개를 돌려쓰기때문에 마셔보고 싶다면 반드시 개인컵 지참할것 


사진 상으로는 막걸리와 라의 구별이 어렵다


  현지인들이 라를 마실 때는 특별한 안주 없이 실온의 라를 플라스틱 컵에 그냥 따라 마시는 편이다. 그러나 막걸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시원하게 냉장한 후 사이다에 섞어 마시는 ‘라사(라+사)’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것은 라에 부족한 단맛과 한국인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탄산을 보충해줄 뿐만 아니라 라에서 나는 구수한 누룽지 향을 사이다의 단맛으로 향을 순화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라 자체가 도수가 높지 않은 편(5-10도)이나 이온음료인 코코넛 수액의 특성상 맥주보다 빨리 취하게 되므로 이를 충분히 감안하고 즐겨야 한다.     


라와 궁합이 맞는 안주는


라를 원액으로 마실 경우 한국에서 권장하는 막걸리 안주 같은, 즉 해물파전, 도토리묵, 두부김치와 놀랄 만큼 궁합이 잘 맞는다. 많이 마시게 될 경우 물론 숙취가 생기지만 막걸리만큼 무거운 숙취는 아니며 대부분 취하기 전에 일단 배가 불러서 많이 못 마시게 된다.  그래서 '라-싸'는 간단한 파티나 여흥을 즐길 때 반주로 마시면 좋다.


또한 코코넛에는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해주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에 많이 마셨다고 해서 탈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간혹 비위생적인 현지 양조장을 이용하는 경우에 바이러스로 인한 세균성 설사병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장이 예민하신 분들은 참고하고  즐겨야 할 것이다.  

         

Spirit of Sri Lanka      


다른 나라로부터 지배를 받은 식민지 국가 나라들은 주류 패턴의 변화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초원에서 마유주를 마시던 몽골 사람들은 소련으로부터 보드카를 배웠고, 히말라야에서 창(발효주)을 마시던 네팔 사람들은 중국 사람으로부터 증류주인 락시를 배워 마시기 시작했다. 스리랑카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랜 식민지 삶의 한을 술로 풀어내야만 했던 것인지 아니면 빨리 취하고 빨리 일해야만 하는 산업화가 가져다주는 주류 문화의 세계적인 흐름 때문인지 어느새 스리랑카 사람들은 발효주인 라보다는 증류주인 아락을 선호하게 되었다.


애주가로서 나는 증류한 아락도 좋고 발효한 라도 좋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때쯤 ‘spirit’이라는 영어 단어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spirit은 ‘증류주’와 ‘영혼’이라는 두 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라를 증류해서, 모으고 모아서 spirit이 된다면 과연 이 영혼의 재료가 되는 탁주는 어떤 의미와 단어로 불러야 할 것인가? 우리가 아는 그 베이스 (Base)라는 단어가 과연 모두가 공감하는 그런 의미일까 

    

오늘도 더운 스리랑카에서  활력있게 하루를 살아가는 현지인들이 가장 가까이 찾는 술 ‘라-’  라- 들이 모여서 커다란 영혼이 되고 이것이 오늘의 스리랑카를 움직이는 하나의 보물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할지, 구수한 그리고 시큼한 라 한잔이 좋은 밤이다. 해물파전 먹고싶다.


Spirit of Sri lanka, 스리랑카의 정신, 그것은 라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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