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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Nov 11. 2021

방글라데시 치타공 PAO일기 2

치타공 라이프

지난 주말 첫 번째 방글라데시 국가자격시험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그리고 호주에서 지나온 많은 시험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수험생들이 어떤 압박감을 느끼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평소에 잘해도 시험날 긴장해서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걸 조금 이나마 보정해보고 싶었다 시험 당일 아침 감독관들이 모이는 미팅에 나가서 정중히 부탁했다 " "방글라데시의 엄정한 룰대로 가되 응시생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부탁한다 단순한 응시생이 아니라 이나라 현직 교사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달라" 


시험 당일 저녁 결과가 나오자마자 IT부서 부서장에게 전화연락이 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합격률 달성 보장 각서를 받았었는데  "거봐라 나는 해냈지 않느냐"는 당당함과 자신감 같았다 조금 더 늦게는 교장에게도 전화가 왔는데 역시 내용은 같았다 둘 다 그냥 "알러뷰"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에 출근길에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치타공 최고 베이커리 페닌슐라 호텔에 들러가기로 했다. 3천 다카. 한국돈으로 4만 원쯤 하는 케이크를 하나 사서 학교로 갔다 시간과 돈은 흘러버리지만 문서와 결과는 남는다 결국 한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결과를 위해 푸시했던 미안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원래는 우리끼리 조용히 먹으려고 했는데 교장은 케이크를 잘게 잘라 모든 기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눴다 "레벨 1 시험에서 목표를 달성했으니 레벨 2 시험에서는 케이크 두 개를 걸고 각서를 쓰자"고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업무추진비가 없었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으면서 내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았다 만나는 교민마다 현지인을 조심하라고 당부를 주는데 네팔이나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사람은 결국 사람이다  


프로젝트가 안정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현지 직원과 업무 관계도 그렇고 기관과의 업무 스타일도 서로를 파악하고 있다 큰 무리는 없으나 언제나 변수는 존재하기 마련. 훈련생 한 명이 시험 당일 시험 감독관과 마찰이 있었다고 일일보고서에 내용이 올라왔다 치타공에서 300km 떨어진 지역에서 파견된 전기과 교사였는데 이 사람은 시험 감독관과의 마찰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허락 없이 수업을 이탈한다고도 표시되어있었다 심지어 같은 기숙사를 쓰는 25명의 교사들이 같이 살기 힘들다며 연판장을 돌려 서명을 들고 왔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훈련생의 선발과 퇴교조치를 포함한 직접적 인사권한은 나에게 없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이 교육생을 만나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안된다고 했을 때 혼자서 고집을 부려서 결국 여기까지 와버린 스스로가 떠오르기도 했고 무엇보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혹여 있을지 모를 놓치고 있는 훈련 프로그램의 중대한 오류를 면담을 통해서 찾아내고 싶었다 


차를 한잔 마시면서 현지 직원과 함께 셋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을 사람을 생각해서 차를 마시고 쓸데없을지도 모를 출신 지역과 전기과 자격 커리어에 대해서 물어봤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는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 가만은 훈련생 90명 중에 90명이 불만이 생긴 거라면 관리자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90명 중에 한 명이 불만이 생겨버린 거라면 그 사람으로부터 원인을 찾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면담의 이유를 사전에 설명했으므로 마지막 기회로 출신학교 교장의 재교육 요청을 포함한 레터를 요청했는데 늦은 밤 레터 작성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사람은 내일 300km 떨어진 학교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늦은 밤까지 이 훈련생의 출신학교 교장과 훈련이 진행되는 학교 교장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이탈에 크게 아쉽지만 룰은 룰이다 


방글라데시는 겪어본 기존 서남아 국가보다 조금 더 타이트한 느낌을 준다 고산으로 대표되는 네팔의 힌두 문화와 홍차로 대표되는 스리랑카 불교문화와는 격이 다른 또 다른 문화다. 돌과 산이 없는 무슬림 국가. '경쟁'의 화두가 언제나 공존한다 돌이 없는 진흙속에서 손에 잡히기 위한 몸부림 같았다 사람이 많으니 에너지가 넘친다 사회 구성원 안에서 도태와 선택이 매우 빠르게 순환되는 것을 느낀다 사실 세계 어딜 가듯 택시운전기사들과의 가격 흥정의 신경전이 여행의 묘미가 되기도 하는데 방글라데시는 언제나 외국인이 핸디캡을 지나 칠정도로 많이 받는다 가격 흥정이 안되면 스리랑카 택시기사들은 그냥 가버렸는데 방글라데시 기사들은 기어코 남아서 먼저 제시한 가격보다 조금 더 낮게, 조금 더 낮게를 부르고 이걸 본 다른 택시기사가 흥정을 하려고 시도한다면 이내 곧 손님이 처음에 제시한 가격에 동의하고 운행을 시작하게 된다 택시만 그런 게 아니다 바코드로 물건을 계산하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지나친 가짜와 지나친 흥정으로 넘쳐나는 에너지를 매 순간 상대해야만 한다 매 순간이 흥정이고 매 순간이 에너지와 에너지의 대립이다 이걸 힘들어하면 힘들게 되는 거고 이걸 파도로 넘게 되면 그순간부터 서핑이 되어 삶이 흥미진진해지는 거다 

일체유심조라 모든 건 결국 마음먹기 달린 일이 아닌가


동네에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우간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방글라데시 치타공은 좀 너무한 경향이 있다 동물원이 치타공을 처음 검색할 때부터 나와서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지 했었는데 날은 무척이나 더웠고 동물들은 좁은 우리에서 불안감에 같은 자리를 계속 반복적으로 왕복했다 포천 우리 동네에서 보기 어렵지 않은 실키 오골계가 여기서는 동물원 조류관 안에 있었다 


장어가 있다고 해서 장어를 구했는데 스리랑카 장어랑 또 달랐다 스리랑카 장어는 한국 장어랑 백 프로 같았는데 여기 장어는 그냥 뱀 같았다 기름기 없는 핑크색 근육덩어리. 등 따서 구이용으로 손질하는 법을 시장 소년에게 어렵사리 가르쳤는데 다시는 장어 사러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장어는 고소해야 되는데 맛이 쓰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집 인터넷 속도를 한 단계 늘렸다 한 달에 인터넷 요금이 한국돈으로 3만 5천 원쯤 속도는 50M라고 했는데 체감속도나 실제 속도나 그 절반도 안 나왔다 짜증 내봐야 나만 손해인 것을 잘 안다 그나마 이 정도가 어디냐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게 더 속편 하다. 열 받는다고 화내고 짜증 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특히나 더운 나라에서는 나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스무 살 문턱을 넘을 때, 삶이 정말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던 시절에 내 주위에 모두들 '나만 마음을 바꿔먹을 것'을 바랐는데 살다 보니 그렇게 안되던 것이 이제는 크게 어렵지 않다 멍청한 사람. 결국은 다 겪어 보고 나서 모든것에 다 아파보고나서 깨닫게 되었다 방글라데시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데는 거기서 거기. 결국은 맥락과 이해 뭐 그런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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