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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Oct 08. 2021

방글라데시 치타공 PAO일기 1

치타공 라이프

처음 방글라데시 선발 공고를 본건 올 6월쯤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방글라데시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것이었고 여기에 파견될 초급전문가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네팔에 언제 복귀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고 또 지금 당장 가지 않는다면 네팔에 보내줘야 할 현지 직원의 월급을 고민해야 했으므로 단기간에 커리어도 쌓을 수 있으면서 파견비용도 높은 방글라데시 공고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나는 방글라데시 경험도 있었으므로 시작부터 내가 안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공고는 6월이었는데 파견이 결정된 건 파견 2주 전쯤 9월에 와서였다 겨울을 나기 위한 집 근처 용접회사에 막 취직했었고 일주일 정도 용접을 하고 있었을 무렵 방글라데시 파견이 결정되었고 파견 업무가 정리되었다 그 후로는 무난한 흐름이었다 서울에서 사전교육을 받고 출국용 PCR 검사를 받은 다음 인천에서 두바이로 떠났다 한 시간에 30편의 비행기가 이착륙하던 인천공항은 하루에 30편 정도로 비행기가 줄어들었고 여행 중에 들렀던 한적한 선진국 시골 공항 느낌 같았다 코로나 시국에 해외파견을 선택한 내 결정에 대해서 출국장 문을 밀고 나설 때 에어커튼 바람이 유난히 차가운 것 같았다  


이전에 방글라데시에 일 때문에도 가고 놀러도 갔었는데 그때 만들어둔 인적 네트워크가 효과를 발휘했다 공항에서 입국절차도 무난했고 하루 묵을 임시숙소에서도 무난했다 함께 파견되었지만 다른 기관으로 파견되는 다른 전문가와는 숙소에서 이른 아침 이별이 3개월 뒤의 만남을 의미했다 나는 치타공 직업훈련원으로 그 친구는 라즈샤히 직업훈련원으로 간다 둘 다 수도 다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 세상 참 좁은 게 내가 네팔에 있을 때 네팔 대사관 행정직원으로 잠시 근무했었다고 했다 해외에서의 생활은 넓고도 좁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의 임무는 명확하다 코이카에서 방글라데시에 직업훈련원을 지어주는 10년짜리 프로젝트를 했고 그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방글라데시 전국의 직업훈련교사를 직업훈련원에 모아 직업훈련에 관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나의 주요 임무는 정산과 모니터링이지만 결국은 기관과의 업무협의가 주된 업무였다 전국에서 모인 90명의 직업학교 선생님들이 정해진 교육기간 동안 자격 취득을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의 또 협의 하는 일이다


치타공에서 숙박 옵션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 재는 게스트하우스로 보통 하루에 80불을 받는데 장기투숙 할인으로 조금 할인된 금액을 오퍼 받았다 3식 제공 및 세탁 모든 생활필수품이 포함된 가격이지만 개도국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금액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두 번째는 기관에서 제공하는 관사였는데 이 관사를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초기에 쏟아야 할 에너지와 비용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세 번째 옵션은 치타공 한국교민 집에 하숙하는 방법이 었는데 그동안의 방글라와의 인연으로 치타공 한인회장님 댁을 추천받았고 장고 없이 바로 하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시작되는 모스크의 기도소리는 늘 새롭다 스리랑카에서는 아침저녁 하루 두 번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하루에 다섯 번을 기도한다 그나마 낮에 하는 기도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묻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른 새벽이나 잠자리에 들무렵 들려오는 기도소리는 무척이나 선명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기도 내용은 모르지만 '알라신은 위대하다'로 번역되는 '알라 후 아크바르'가 잔뜩이나 들어간 기도문은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신을 찾는 이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신을 찾고 있었고 신이 여기 있는지는 나는 알 수 없다 


교육훈련 입교식을 했다 행사가 준비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안되는 것을 되게 만들기 위해 여기 왔음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나로 치면 고용부 차관쯤 되시는 분과 함께 입교식 행사를 치러냈다 높은 연단에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기분이 가볍지만은 않다 불과 나는 이 주 전까지 용접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단상에서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우정과 공동의 번영을 영어로 말하고 있다 보통 PAO의 포지션은 인턴과 막내의 중간쯤. 입교식에서 스피치를 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정장을 챙겨 오지 못했다 급하게 회장님께 빌려 입은 파란 정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무척이나 더웠다 


보통 해외에서의 삶을 정의하게 되면 외국인이 현지 문화에 동화되어 살게 되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외국인만의 문화를 형성하며 살게 되는 경우로 나뉘게 되는데 방글라데시는 철저하게 후자에 속했다 이곳에서 외국인은 현지 문화에 스며들 수도 없었고 또 스며들게 허락되지도 않았다 문득 넷플릭스에서 본 인도영화 화이트 타이거가 떠올랐다 영화를 보는 동안 스리랑카와 네팔에서 만났던 운전기사들이 스쳐 지나갔다면 이제는 길에 있는 운전기사들이 오버랩되었다 처절하리만큼 높은 계급사회의 벽들에 둘러싸여 도대체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막혀버린 밀림의 한 복판인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숨이 막혔다 


현지 직원 고용에 대해서 파견 전부터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프로그램에서는 현지 직원치고 굉장히 높은 급여 수준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미리 내정된 후보자는 파견 전 내가 이메일로 물어본 질문에 대해서 불쾌감을 느꼈는지 다른 일이 생겨 프로젝트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컴플레인을 우회적으로 비춰왔다 이전 프로젝트에서 좋게 생각했던 직원에게 제안을 했었는데 다카에서 치타공으로 파견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치타공에서 현지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을 상대로 현지어 과외를 하는 대학교 4학년 여학생을 추천받았다 스물두 살 여자. 무슬림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 면접 전부터 어쩌면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개인적인 성취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면접을 보러 온 학생은 한껏 멋들어진 복장으로 나를 찾아왔지만 밝고 수다스러운 분위기는 이내 곧 잠잠해졌다 급여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현지 직원의 임무 롤 자체가 광범위한 포지션이었다 간단하게는 심부름부터 통역, 기관과의 협의도 무난하게 해내야만 했다 스트레스에 내성이 없는 순진한 친구에게 어쩌면 높은 급여를 미끼로 스트레스를 강요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큰소리를 내거나 말을 빨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현지인이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단어 선택의 통찰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눈물 방울이 떨어지기 직전 내가 바라는 현지 직원의 미래에 대해서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같은 무슬림 국가에서 여성과 소수민족의 신분으로 능력만큼의 성취를 이루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유리천장을 멋지게 부숴줄 미래의 너를 기대해도 될까" 소수민족 대학생은 지금 방글라데시의 국무총리도 여자라면서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재치 있게 대답했다 얼마 전 바뀌었다는 기관 교장도 내 또래 여자분이었고 교감도 중년의 여자분이었다 어쩌면 이 친구가 이런 종류의 일을 배우는데 충분히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이 결정에 대한 후회나 실망은 없다 


어려움도 없으나 딱히 즐거움도 없다 이대로 흘러가버리는 시간이 통탄스러워 안전화와 청바지, 작업복을 샀다 용접반 교실에서는 한국에서 보내준 고사양 티그 용접기가 놀고 있었다 학교 용접반 교사가 속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절박하게 티그 용접이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나에게 외부활동 자제를 요청했지만 정신건강을 고려할 때.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스로에게 이 정도 용접교육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포카라 게스트하우스 사장이자 퀄리피케이션 웰더이자 프로젝트 코오디네이터는 아마 다음 주부터 현지 용접 교사에게 티그 용접을 가르칠 것 같다 


작업복을 사러 옷가게에 들렀는데 면소재에 두꺼운 셔츠를 찾고 있었다 진품 가품 여부를 떠나 루이뷔통 셔츠가 3만 원이었고 라코스테 셔츠가 만원이었다 라코스테 입고 용접하게 생겼다 그래도 루이비통보다 마음이 좀 편하다 루이비통 작업복이라니 


치타공이 그렇다 인샬라. 신의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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