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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천경마 May 09. 2024

두번째 암_다섯번째

좋은소식 하나와 나쁜소식 하나

그다음에는걱정거리 하나없는 여느 팔자 좋은백수처럼 오늘이 무슨요일인지도 모르고 그냥 흐르듯이 살았다. 이 흐리고도 불투명한. 낮은 혈액수치들이 주는 한없는 고통의 시간이 어떻게든 흘러야. 그리고 흐르는것이 끝나야 이 모든 불행이 끝난다고 생각했으니까 예린 날처럼 깨어 모든 고통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자세보다 내가 잡고있는 고통을 놓아주면서 서둘러 그리고 에둘러 이 시간들이 지나 가주길 바랬다 언제 그랬냐는 듯.


2-2 항암을 하면서 중간평가 일정을 맞췄다 중간평가는 내가 하고있는 항암이 제대로 진행되고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로 펫시티랑 시티를 찍어서 처음 치료전 영상과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최소 50점이상 보통 90점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일정대로 무난한 항암이 진행된다고 했다 촬영일은 5월2일. 당일에 촬영과 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걸로 결정했다 운명의 하루가 결정된것이다.


날짜를 받아놓으니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하다. 부정적인 복잡함 보다 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항암이후에 삶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봤다가 '아직 평가전인데 이게다 무슨소용이냐' 하다가도 이가 두개밖에 안난 아들이 아장아장 동화책을 들고 다가와서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책을 읽어주고 컨디션이 좋으면 가까운 공원에서 아들과 아내와 비누방울 놀이도 했다. 시간이 지나니 연락오는곳도 없고 마땅히 연락할곳도 줄어든다 남는것은 가족뿐. 해외생활과 나의 삶이 그렇듯 남은것은 아내와 아들. 삶에서 지켜야하는 제일 소중한것만 남았다


평가에 있는 촬영에 방해가 될까 백혈구 촉진제를 안맞았는데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맞을수도 있었는데 그럼 2주가 더 지연된다고 했다. 그래도 버티면 흐를것이고 지나갈 시간이니까 그렇게 믿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커다란 굴에 들어가서 움직이지 않는것. 이제는 너덜너덜 해져버린 팔 혈관 어딘가 조영제를 넣는일 '그래 버티자 버티면 가을이 오겠지' 가을에 나는 가족과 일본을 갈까 울릉도를 갈까 우리 아들이랑 낚시는 할수있을까


늦은 오후 모든 촬영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기위해 진료실 앞에 앉았다. 보호자인 아내와 아이 장모님과 포천에서 부모님도 올라오셨다. 문득 단톡방에서의 조언이 떠올랐다 '너무 걱정 마시라고 잘못되었으면 잘못된 느낌을 본인이 제일 잘안다고' 솔직한 내 느낌은 그냥 그랬다 잘못된 느낌도 잘된 느낌도 없이 버티고 흐르기만을 바랬으니까 이런 촉을 바라는 자체가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이름이 호명된 진료실에서는 환자에대한 예습을 하기에 늘 시간이 부족한 교수님은 앉으라는 찗은 인사를 하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불행해지는걸 직감했다. 이게 앞서 말한 잘못된 느낌이구나... 처음 이 병을 진단할때도 매끄럽지 못했듯. 복잡한 내인생을 쉽사리 정리내지 못하듯. 심지어 중간평가 결과까지 그렇게 되는것 같았다. 몇분의 침묵끝에 결과를 전해주었는데 일단 처음 촬영에서 발견된 종양은 모두 제거되었다는 좋은점 한개와 처음촬영에서 없던 새로운 종양3개가 나타났다는 안좋은점 한개를 알려주었다 펫씨티가 없던 과거에는 완전 관해라는 판정을 내렸겠지만 민감한 펫씨티에서 뼈에서 종양이 발견된 이상 엠알아이와 골수검사를 하고 추가적인 조직검사가 필요할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외진을 마쳤다.


좋은소식 하나와 나쁜소식 하나. 어떤것을 먼저 전하거나 강조해서 전달하든 잘못이 없고 틀림이 없다. 아내는 먼저 좋은 소식을 보다 힘주어 전달했고 양가 부모님들은 기뻐하셨다 나는 안좋은 소식을 덤덤히 말하고 이후 일정을 설명했지만 아내가 진료실에서 찍어온 치료전 종양사진과 두번의 치료로 없어진 종양 사진은 부모님들 눈에서 눈물이 충분히 흐를만큼 감동적이고 극적인건 맞았다. 나는 다음날 겨우 자리를 만든 엠알아이 촬영으로 허벅지 뼈에 생긴 엠알아이 촬영을 했고 7일에 골수검사 8일에 진료일정을 잡았다. 


어린이날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근막염에 좋다는 걷기좋은 신발도 사고 아이 장난감도 샀다. 여느 행복한 가정처럼 흘러가는 휴일이었고 대체공휴일이었다. 내가 앞으로 추구해야할 삶같은것. 나는 첫번째 골수검사를 떠올리면서 다가올 골수 검사가 슬슬 긴장되기 시작했다. 2월 어느날에 했던 골수검사는 급작스러운 만큼 많이 고통스러웠고 지혈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당장 내일이  골수검사인데 전날 저녁에 춥고 열이났다 39.5도 밤 열시에 응급실에가서 접수를 하고 검사를 한다음 대기실에서 잠을 잤다. 다행히 감염도 없고 해열제도 잘들었다 내심 골수검사가 전날의 응급실 입원으로 밀리길 바랬지만 당직 선생님은 그런거 없다고 못박았다. 소문에 새로왔다는 골수검사 선생님을 내일 만나게 되는거다 어차피 가야하는 길에 넘어야할 산이면 빨리넘고 매도 빨리 맞는게 낫다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건 속도보다 방향이니까 


응급실 옆 대기실 침대에서 아침이 밝았고 오전 늦게 검사가 있을거라던 응급실 선생님 말과 달리 검사실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나를 데리러 왔다 침대를 타고 6층 골수실에서 대기 없이 바로 처치실로 들어가서 바로 검사가 시작됐는데 젋은 목소리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도 술기에 무척 능했다 허투루 쓰는 손이 없이 그리고 손속의 자비없이 양쪽 골반에서 골수를 뽑았다 정신없이 응급실로 돌아와서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대고 활처럼 휘어 지혈을 시작했는데 고통이 무척 심했다. 표현하기 미안하고 두려울 만큼. 진통제를 맞고 다섯시간 반이 되어 겨우 피가 멈췄다. 그러니까 이제 입원실로 간다고 또 나를 데리러 왔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니까 진통제를 또 맞고 잠들었다. 간호간병 통합병동은 면회가 되지않는다. 아내와 아이도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병원에 남았다. 힘들어서 푹 잘줄 알았는데 진통제 때문에 잠을 너무 많이 자서인지 밤잠을 설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집에 갈줄 알았다. 다음날이나 모레나 집에가라는 결정을 듣는줄 알았던 다음날 회진에서 약을 바꿔 항암을 진행한다고 했다 두번더 항암을 하고 다시 평가한다고 했다. 엠알아이 결과가 좋지않았다. 이주에 하루 하던 항암 일정이 4주에 일주일로 변경되었다. 그만큼 약이 세다고 했다. 생각했던 둘째는 어려울것같다고 힘내시라고 담당 간호사가 넌지시 말해주고 갔다. 이번 입원은 이주 일정이다. 생기지도 않은 둘째가 사라져 버린것같은 공허함이 왔다. 담배가 있으면 한대 피우고 싶을정도로 공허하다.


새로운 항암은 새로 바뀐약으로 내일부터 한다고 했는데 오후에 갑자기 항암 시작한다고 정맥잡고 담당 간호사들이 부산해졌다. 어차피 할거면 빨리 하는게 맞는데 또 이렇게 빨라지니 당황스럽다.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저 고통 없이 이시간이 흘러 다시 가족과 행복해 지는 생각을 한다. 가을에 일본간다고 엔화샀으면 큰일날뻔했는데 겨울에는 울릉도 못간다 파도가 너무 세다. 그럼 다시 엔화를 사야되나. 아니 우리가족 머물 보금자리부터 사야되는데 로또 부터 사야겠다.   


고통스럽지않은 항암을 바라며 봉성체를 했다.


모두에게 평화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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