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문득, 남편이 나에게 핸드폰 녹음기를 들이대며 녹음된 내용을 들려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코고는 소리...
전부터 남편이 내가 코를 심하게? 곤다고 해서 “말도 안된다”며 증거도 없이 나를 모함한다고 화를 냈는데 새벽에 드디어 증거를 잡았단다.
정말 코고는 소리가 맞았다. 그것도 생각보다 심하게 골았다.
'내가? 설마? 진짜? 말도 안돼!
나처럼 새근새근 잠버릇도 없이 차렷하고 일자로 얌전히 자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는 살면서 내내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절대 코를 곤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생 코를 골아 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절대 그런 소음을 낼 일은 없을 거라고!'
남편이 날 골탕 먹이기 위해 설마 다른 곳에서 녹음 해 왔을 리는 없고 살짝 나의 숨소리인 것 처럼 느껴지는 와중에 저렇게 대놓고 증거라고 들이대니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해서 사실 많이 당황스러웠다.
남편이 거짓말 하는 거라고, 그것도 아니면 내 숨소리가 조금 커서 오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증거를 확인하고 보니 조금 미안해진다.
일단은 인정한다고 치고, 왜 나 같은 순한 양?이 코를 골 수밖에 없었는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가며 온갖 이유와 핑계를 찾기 시작했다.
'음.. 최근에 잠을 잘 못 잤던 것 같기도 하고 어제는 회의도 여러 번 있었고 업체와의
미팅으로 더 정신없이 바빴던 것 같기도 하고 저녁엔 모임이 있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충분히 코를 골았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애써 나를 위로했다.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황이 딱 ‘내로남불’ 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
남편이 코를 골면 살이 쪄서 당연한거고 내가 코를 고는 것은 정말로 그럴 수 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을거라 미리 정해놓고 모든 가능성을 찾게 된다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조금 부끄러웠다. 이런 증상도 나이 탓인건지 아니면 정말로 몸이 힘들어서 그런건지.....
지금도 여전히 부정하고 싶지만
‘그래.. 나이도 먹고 직장에 치여 오죽 힘들었으면 코를 골았을까’ 스스로 인정하며 이제는 내 건강을 위한 대책을 고민 해 본다.
'요새 몸이 허약해졌나?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더 무겁고 피곤한건가?'
남편의 경우에는 술을 많이 먹거나 과식하거나 피곤해 하면 코를 골던데...
인터넷을 찾아본다. 코 고는 이유, 코 골지 않는 방법 등.
남편이 또 증거랍시고 들이대며 잔소리하기 전에 빨리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봐야겠다.
나는 여전히 내 사전에 코고는 것이 절대로 무엇인지 모르는 요조아줌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