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살아래 동네 여기저기에 하얀 순백색 치자꽃이 진한 향과 함께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치자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에 하나로 장미. 천리향. 모란. 작약 등 어린 꼬마가 잡풀을 뽑기에는 너무나 커 보였던 시골집 앞마당에 따스한 햇살 가득한 계절이 되면 진한 향기 그윽한 다양한 꽃들이 만발했던 추억이 가득하다.
그래서 일까?
나는 향기를 좋아한다.
꽃향기는 말할 것도 없고 향수. 방향제. 섬유린스(피죤)에서 나는 향과 하다못해 한때는 향기 나는 볼펜을 줄곧 사용하기도 했다.
결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거의 30년 동안 지켜온 나만의 비밀인데, 남편에게 끌렸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만날 때마다 옷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에 반해서 결혼했을 정도이다.
치자꽃은 눈부신 신부의 면사포를 생각나게 하는 순수한 하얀색과 달콤한 향을 담고
있다.
길을 지가다가도 문득 어디선가 익숙한 향이 난다 싶어 고개를 돌려보면 곳곳에 치자꽃이 수줍은 듯 고개 내밀며 탐스럽게 피어 있다. 작은 바람결에도 한번쯤은 뒤돌아보게 만들고 바쁜 발걸음조차 잠시 멈추게 만드는 나의 연인같은 꽃이다.
언젠가 치자꽃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 화원에서 작은 화분을 사다가 키워 보기도 하고
작은 정원에 직접 심어 보기도 했는데 원래 식물키우기는 소질이 없던 터라 매번 애먼 나무만 죽게 만들어 생각보다 키우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는 길에라도 치자 꽃이 피어 있으면 은은한 향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큰 숨을 한번이라도 더 쉬게 되고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운동 삼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렀는데 한쪽 귀퉁이에 후레지아를 포함해서 몇 개의 꽃송이들을 가늘게 묶어놓고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노란 병아리를 생각나게 하는 후레지아 역시 내가 좋아하는 꽃이어서 가격을 물어보니 작은 것은 3천원, 다발이 조금 더 많은 것은 5천원이었다. 꽃값이 한창 비싼 철이기도 하고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꽃 한번 사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하는데 그것도 우연히
지나다가 들른 곳에 꽃 몇 송이 대충 묶어서 양동이에 담아놓고 파는 게 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그 이후로도 자주 들르는 단골집이 되었다.
근처에 사는 지인이 말하기를 ‘누가 저런 꽃을 사가나? 팔리긴 할까?’ 궁금해 했다는데 나에겐 작은 금액으로 얻은 큰 행복이고 소소한 기쁨이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가면 하나 둘 꽃망울이 피어올라 집에 들어오는 모든 이를 반겨주는 것 같고 은은한
향기가 퍼져있어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분도 좋아졌다.
나의 오랜 추억의 일부를 되찾은 기분이다.
오늘은 오랫만에 단골 마트에 들러야겠다.
또 어떤 꽃들이 손님들을 방긋 반기며 기다리고 있을지 살짝 설레기도 하고 아직 피지 않은 이름 모를 꽃송이 몇 개 사다가 꽂아놓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