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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펠링으로 자녀들을 다그치지 마세요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날 작은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Early Literacy moment"라고 제가 부르는 순간들이에요. 예를 들면 동생과 같이 온 3살 누나가 제가 스토리타임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책을 동생 쪽으로 펼쳐서 그림을 읽어주는 장면 같은 거죠. 엄마가 책을 고른다고 그런 귀한 장면을 놓치면 제가 뛰어가서 "빨리 사진 찍으라"라고 닦달하는 장면이에요.


가끔 부모님들이 도서관에 와서 집에서 찍은 비디오를 보여주시기도 해요. 저와 스토리타임에서 불렀던 노래를 집에서 부르는 비디오예요. 그럼 정말 기분이 좋죠.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 때는 아이들이 직접 쓴 카드를 많이 받아요. "You're the best librarian!"이라고 적힌 카드를 받으면 황송하면서도 보람 있어요. 오늘은 특별한 그림을 받았어요. 저를 위해 그렸다면서 5살 아이가 준 그림이에요. 혹시 뭐라고 썼는지 알아챌 수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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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쓰고요. 미국 국기를 그린 그림이에요.


한국 엄마들 같았으면 이렇게 엉터리로 스펠링을 썼냐며 이걸 도서관으로 가져가서 사서에게 선물한다는 건 꿈도 못 꿀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 그림을 받자마자 엄마에게 소리쳤어요. "Connor is starting to spell out!" 엄마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바라봅니다. United States of Americ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거죠. 미국 아이들은 t 발음을 세게 하지 않으니 t 대신 d 를 쓴 게 너무 당연하고요. American의 첫 A는 short vowel "uh" 소리가 나니 A 대신 u를 쓴것도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아이들이 phonetic awareness가 잡히는 시기부터는 스펠링을 스스로 만들어서 쓰게 됩니다. 한국어와 영어가 둘 다 표음문자라 발음 나는 대로 글자가 쓰이기는 하지만 phonetic rule에 맞지 않는 단어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단어의 스펠링이 틀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예외가 많은 영어 탓을 해야죠.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스펠링을 inventive spelling이라고 합니다. Inventive spelling은 야단을 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려해야 합니다. 파닉스 감각을 가지고 스스로 단어를 만드는 훈련을 하는 학생들의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해서죠.


한국 학생들이 25퍼센트 정도인 Fort Lee라는 동네에서 저희 동네로 이사 온 1학년 학생의 엄마와 대화를 했어요.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 작문 숙제에 대한 proofreading을 안 해준다면서 불평을 하셨어요. Fort Lee 공립학교 다닐 때는 스펠링 체크를 빨간펜으로 다 해줬다는 거예요. 제가 일부러 좀 자극적으로 대답을 해 드렸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Fort Lee 선생님들이 Inventive spelling의 어마어마한 장점을 모르시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많은 한국 학부모들이 하도 불평을 하니 '그래... 내 새끼가 아니고 니 새끼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해주는 걸 거예요."


진심입니다. 스펠링 몇 개 고쳐주는 것보다 스펠링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본인 스스로 유창하게 글을 쓰는 것을 칭찬해 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게 더 어려운 일이에요. 예전에 도서관에서 글 없는 책으로 작문 활동을 할 때 한 학생이 flabbergasted라는 단어의 스펠링을 틀리게 썼어요. 저는 그 틀린 스펠링 단어 위에 happy face를 그려주었어요. "놀라는"이라는 저 단어는 평소에 아이들의 단어로는 그냥 surprised나 shocked로 쓸 만한 표현인데 그 표현을 글로 쓴 거잖아요. 그 아이가 스펠링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기가 완벽히 알지 못하는 그 단어를 글로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이기에 듣고 이해하는 단어와 말로 표현하는 단어가 스펠링까지 완벽하게 아는 단어보다 훨씬 많다는 전제가 깔린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영어 공부를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에요. 한국어도 표음문자이니 같은 메커니즘인 거예요. 한국어의 철자를 고쳐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에요.


미국 선생님들은 ‘inventive spelling’을 하지 않는 학생들을 도리어 걱정스러워합니다. 스펠링 틀리는 것이 두려워서 표현하고자 하는 말을 못 쓰거나, 완벽히 알고 있는 단어만으로 써 보려고 하기 때문에 표현력이 부족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죠. 이 시기의 학생들에게는 Accuracy (정확성)보다 Creativity (창조성)을 키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Independent Reading Level이 되는 2학년부터는 미국 공교육 과정에서도 Essay Writing을 할 때 스펠링을 체크합니다. 그때부터야 스펠링을 조금씩 잡아줄 필요가 있는 것이죠.


Invetive Spelling -> Errors & Corrections -> Coventional Spelling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펠링을 배워가면 됩니다. 그리고 요즘은 스펠링으로 한 사람의 역량을 판단하는 것이 구식인 시대가 되었잖아요? Auto-correcting 기능이 있는데 괜히 스펠링으로 아이들을 다그쳐서 아이들과의 관계만 나빠지면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뭐라고 썼는지도 모르겠는데 한 페이지를 가득 쓴 아이의 종이는 너무 소중합니다. 버리지 말고 간직하세요.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면서 칭찬해 주세요. 다음엔 그런 종이를 두 장을 받게 될 거예요. 아이가 작가가 되어가는 첫 발걸음을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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