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병술년

도피

by 김동의

두 번째 경찰간부후보생 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을 앞두고 문제집을 들여다보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 드러날 뿐이었다. 나보다 합격에 간절했던 아빠의 기대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무책임한 가짜 수험생활을 했다. 객관식 네 과목을 풀고 주관식 두 과목은 스스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줄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마구 써 내려갔다. 이렇게 하고 합격을 바라는 건 정말 도둑놈 심보와 다름없었다.


큰 아들놈이라도 자립을 통해 입을 덜 줄 알았을 텐데 기대를 철저히 무너뜨려 면목이 없었다. 절치부심하는 척이라도 할 것을 시험을 마친 후레자식은 때아닌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한다. 먼저 대기업에 종사하는 친구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친구가 내 여행경비까지 나누어 부담하겠다며 몸만 오라는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엄마에게 ‘한 이십만 원 쥐여 줘’ 하는 말과 동시에 깊게 내쉰 한숨이 너무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때까지 난 해외를 나가본 적이 없었다. 국제선을 탑승해 본 경험이 없어서 가끔 해외여행 가는 꿈을 꿀 때면 꼭 출국장 게이트 앞에서 잠에서 깼다. 그곳 슬라이딩 도어로 들어가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게 경비를 선뜻 분담하겠다는 친구들과는 국민학교 5학년 시절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우리가 스무 살이 되면 꼭 함께 미국 여행을 가자며 도원결의하듯 약속한 바가 있었기에 이번 제안은 뜻깊어 보였다. 물론 다짐했던 때보다 7년은 늦어졌고 장소도 다르지만 말이다.


친구들은 즉흥적으로 여행 목적지를 홍콩으로 정했다. 그들은 흔한 여행 책자 한 장 찾아볼 생각 없이 아시아나 항공에서 덜컥 티켓 세 장을 구입했다. 여권이 없던 나는 영등포구청 여권과에 신청하고 제때 발급이 될지 애를 태웠지만 다행히 적기에 발급이 됐다. 그렇게 인천 촌놈 셋은 부푼 마음으로 인천 공항의 무빙워크에 올라섰다.


혹시나 결격사유는 없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억누르며 보안 검색과 출국심사를 마치고 백화점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면세점 구경도 했다. 촌놈 하나는 돈도 이십만 원뿐이 없으면서 그곳에서 성급하게 CK 썬글래스를 집어 들었다. 항공 좌석은 비상문 앞이었고 다리를 뻗어도 불편함이 없었다. 내 앞에는 나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 간이 의자가 하나 놓였는데 승무원이 일이 없을 때면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친구 녀석들에게 그만 좀 두리번대고 촌티를 내지 말자고 당부했건만 눈치 빠른 승무원은 그걸 캐치해냈다 보다. 내 앞에 앉을 때마다 무슨 목적으로 어디를 가는지부터 많은 것들을 물었다. 어쩜 그렇게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냐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투였다. 그분에게 숙소는 어디가 합리적이고 어느 곳이 볼만한 곳인지 정보를 주워듣곤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에서야 홍콩 국제공항에 내렸다. 셋 중 영어에 능통하거나 광둥어를 할 줄 아는 이는 없으나 무작정 택시를 잡고 몽콕으로 향했다.


어둠으로 뒤덮인 도시는 금방이라도 주윤발이나 알란 탐, 유덕화가 쌍권총을 들고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다. 한참을 달려 내린 곳은 잿빛의 낡은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보도블럭으로 포장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콘크리트로 투박하게 포장된 그곳의 인도를 밟곤 난간에 잠시 걸터앉아 그곳의 밤공기를 흠뻑 들이켰다.


마침 허기가 진 셋은 유일하게 불이 켜지고 문이 활짝 열린 국숫집에 들어갔다. 손가락으로 메뉴의 그림 세 개 가리켜 어렵사리 주문을 마쳤다. 설렁탕 맛을 기대하며 뽀얀 국물을 한 스푼 떠서 입에 넣는 순간 고기 누린내 같은 것이 올라오고 치약을 풀어놓은 듯한 끝 맛에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수저를 내려놨다. 군대에서도 잔반을 남긴 적이 없었는데 처음 맛본 현지 음식을 너무 남겨 송구스러웠다.


승무원이 알려준 숙소들은 식당 건너편 건물에 보이는 듯했다. 옷장처럼 좁은 엘리베이터에 남자 셋이 오르니 괜히 숨이 차고 폐소공포증이 올 것만 같다. 한 개 층만 숙소 영업을 했는데 guest house라는 상호를 쓰고 있었다. 어쩐지 아까 택시에 오를 때 very cheap hotel please 했더니 기사님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날이 밝자 촌놈 셋은 몽콕 운동화 거리를 돌며 한 켤레씩 구입하곤 한국보다 싸다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야우마테이역까지 캐리어를 질질 끌다가 한 녀석이 힘들다며 징징대길래 침샤쭈이역까지 전철도 타봤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쾌적하고 빠른 지하철 환경을 갖춘 것이 놀라웠다. 아파트로 가득한 한강변과는 다르게 높이 솟은 건물들이 장관을 이룬 센트럴 섬의 야경을 감상하며 감탄을 연발했다. 브루쓰 리 동상 앞에서 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역시 승무원이 추천해 준 빅토리아 피크 트램에도 올라봤다.


생애 첫 홍콩 여행


하루는 침샤쭈이 근방의 낡은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곳이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했던 청킹맨션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곳에서 촬영한 사진도 없고 워낙 비슷한 건물이 많았으므로 추측으로만 남겨본다. 이래서 사진을 많이 남겼어야 하는데 매일 같이 캐리어와 잡스러운 짐들을 비닐 봉다리에 넣어 들고 다니느라 지친 셋은 그러지 못했다.


나단 로드를 걸으며 구입하지도 않을 피규어 구경에 왜 그리 시간을 할애했는지 모르겠다. 북쪽으로 걷다 보니 다시 몽콕역을 마주했고 역과 역간의 간격이 멀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이후론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다. 온 김에 이곳의 야시장도 둘러봤다. 조악한 물건과 레플리카 축구 유니폼, 속옷가지를 판매하는 점포가 많았다. 도검류를 판매하는 곳을 발견했고 관운장이 들었을법한 언월도도 판매하길래 주인아주머니께 못하는 영어로 공항 통관 가능 여부를 문의했더니 전혀 문제없다고 말씀하신다. 남은 돈을 모두 털어 구입을 하려 했는데 친구들이 부피가 너무 크다며 말렸다.


아빠가 없는 돈을 쪼개 쥐여 준 이십만 원은 금방 소진됐다. 우리나라 편의점만큼 즐비했던 명품샵을 들어가 이것저것 시착해보는 친구들의 모습이 처음으로 부러웠다. 국민학교 시절엔 우리 집이 가장 여유로웠는데 지금은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들에 비해 내가 너무 보잘것없고 형편에 맞지 않게 무리한 여행을 빈대 붙어 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비참해졌다. 어느 周大福 간판 밑에서 경찰이라는 헛된 꿈은 깔끔하게 접고 조속히 복학해 취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별도의 절차 없이 등록금을 납부함으로써 복학을 했다. 부모님은 현금이 없는 관계로 내게 한국장학재단에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라고 했다. 엄마는 아빠의 직장에서도 학자금 지원 복지를 이용했고 둘째 큰아버지께도 학자금을 빌렸다. 필요한 학비를 넘어서는 목돈을 형성해 또 백화점 좋은 일만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훗날 취업 후 네 학기에 대한 학자금 대출은 내가 상환했는데 사정을 모르는 둘째 큰아버지는 아직도 자신이 우리(형제) 대학을 다 졸업시켰다고 큰소리치신다.


부쩍 가세가 기운 집에 용돈까지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과외 구직/구인 사이트에 가입하여 나를 홍보해 봤다. 계약까지 성사된 학생이 총 세 명 있었는데 두 명이 고3 여학생이었고 한 명은 83년생 검정고시 준비생이었다. 초보티를 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해 간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학생들은 정말 기초 학습이 탄탄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그들 부모 입장에서는 헛 돈 쓰는 것이 분명했지만 눈 질끈 감고 약속된 기간 동안 빠짐없이 횟수를 채웠다. 검정고시를 준비했던 83년생 예비 아빠는 시험에 합격했다며 걸어온 감격 섞인 전화에 다행스러웠고 작게나마 보람을 느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개최될 때 즈음 과외도 안 구해지고 용돈도 바닥나서 알바헤븐으로 지역 구인란을 살펴봤다. 구체적인 상호는 언급이 되지도 않았고 일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없었지만 시급도 낮지 않은 ‘실내 알바’ 타이틀만 보고 지원을 했더니 너무도 쉽게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안내받은 부천역 북부에 위치한 장소로 가보니 빛줄기 하나 들이치지 않는 1층 상가에서 호리호리하고 적당히 날티나는 남자가 나와 나에게 임무를 줬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이곳에서는 관리자를 맡고 있다.


어둑한 실내에 펼쳐진 대형 스크린에서는 쉴 새 없이 말들이 달렸고 레이스가 종료되면 눈이 따가울 정도로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나는 내내 서있다가 손님이 손짓하면 지체 없이 다가가 미리 줄을 그어놓은 만 원권으로 환전해 줬다. 정상적인 눈빛을 지닌 이들은 보기 어렵고 탐욕스러우면서도 좌절감에 쩌든 눈들은 좀처럼 화면을 벗어날 줄 모른다. 거리낌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걸며 게임장 안을 배회하던 아저씨는 돈이 없는지 한참을 서성이며 남의 경기만 하염없이 지켜본다. 담배를 물고는 내게도 학교는 어딜 나왔냐며 묻는다. 아저씨는 한참을 아는척하며 우리 학교를 백선엽이 설립했다고 설명을 했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달랐다.


스크린 경마장 관리자는 내가 불편했는지 아니면 내 표정이 상냥하지 못하다는 민원을 받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일부터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유쾌하지 않은 해고 통보였으나 늦게까지 꼿꼿하게 서서 간접흡연을 하는 게 안 그래도 고역이었는데 내심 잘됐다 싶었다. 이곳의 실질적 소유주는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 바다이야기도 운영하고 있었다. 횟집 이름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던 바다이야기를 비롯해 곳곳에 수없이 난립됐던 사행성 도박장은 머지않아 국가에 의해 전면 폐쇄되었다.


외롭게 수업을 들으며 모쏠로 살아온 지난날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기회가 되는대로 이성을 만났다.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소개받은 아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룸살롱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말보로 담배를 즐겨 피웠고 항상 지갑은 터질 것만 같이 현금이 수북했다. 데이트 비용은 거의 그녀가 부담했고 부담스럽게 연락을 많이 하는 정이 많은 친구였는데 활동 시간대가 너무 맞지 않고 나까지 담배에 너무 절여지는 것 같아 만남을 그만뒀다.


같은 학교 법대 후배도 만나봤다. 처음으로 나를 많이 좋아해 주는 누군가를 만난 것 같아 기뻤지만 너무나도 여린 마음을 지니고 국내에서는 흔치 않게 일본 갸루상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녀가 어느 순간 질려 역시 길게 만나지는 못했다.


싸이월드로는 고등학교 2학년 8반 동창회 예고 쪽지가 도착해 있다. 무슨 자신감인지 27살 먹도록 대학 3학년에 머물렀던 나는 덜컥 그 모임에 참석했다. 부평역 호프집에 모인 아이들은 누군가의 제안으로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근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한의사로 또 누구는 LG, 하이닉스 등의 대기업 종사자로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학생 신분은 나를 포함해 네댓 명 됐는데 나를 제외한 이들은 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쓸데없는 휴학, 남보다 한참 늦은 군 입대 그리고 2년여간의 방황이 몹시도 크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이들에게 적잖이 자극을 받아 TOEIC 이란 시험을 치러봤는데 결과는 500점 대였다. 공대 기준 취업을 하려면 최소 700점은 넘겨야 한다기에 고3 수험 시절 못잖게 문제집과 단어와의 사투를 벌였다. 윤선생 영어교실부터 15년을 영어와 직간접적으로 부대꼈는데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나의 부족함에 원인이 크겠지만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고등학교 동창이자 홍대를 졸업한 친구 L이 있다. 막상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대화가 많지 않았던 사이였는데 PC 네이트온 메신저로 부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뒤늦게 가깝게 된 신기한 관계이다.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그의 봉천동 고시원에서 신세도 져가며 고독한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려 한 듯하다.


밤 9시가 넘을 무렵이었는데 작은 회사에서 일을 마친 친구 L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세이클럽이란 곳에서 어렵게 여성 두 명과 만날 자리를 마련했다며 당장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어떤 사람들이냐 물어보니 단체 톡방에서 다른 동성 경쟁자들을 자신이 다 물리쳐 쟁취해 낸 기회이고 괜찮을 테니 빨리 나오기나 하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도 부탁을 하여 그 늦은 시간에 송내역을 거쳐 온수역에서 환승을 한 후(당시 부천 상동은 7호선 미개통 상태) 남구로역에 내렸다. 만남을 약속했던 5번 출구 쪽에는 친절하게도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긴 오르막 통로를 오르다 보니 친구 L의 곱슬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가웠던 나와는 달리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에 맞춰 서서히 드러난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고 입모양으로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전달하려는 듯 소리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친구 L과 약 2미터가량 떨어진 곳에는 낯선 여자 둘이 있었는데 그중 밀리터리 패턴의 7부 바지를 입은 작고 통통한 분이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서 얼결에 나도 목례로 답을 했다. 그녀의 옆에는 역시 밀리터리 스타일의 모자를 눌러쓰고 세상만사에 흥미가 없다는 듯한 눈빛을 지닌 덩치가 꽤 큰 분이 함께 서 있었다. 두 처자가 앞장서서 어디론가 향했고 친구는 내게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햐... X 됐어.”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럼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가자고 그에게 제안했지만 그는 이렇게 만난 이상 밥은 먹고 헤어지는 것이 예의라고 강조했다. 그 소저들이 썩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외모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짓임을 알기에 L의 의견을 존중하며 묵묵히 그녀들의 뒤를 쫓아 걸었다. 키가 작은 여성이 갑자기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회 먹으러 갈래?”


나는 좋다고 대답하니 그녀는 아는 집이라도 있다는 듯이 한층 더 경쾌한 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그 순간 아무런 말도 없이 친구 L이 발걸음을 돌려 후다닥 전력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앞서던 두 여성과 나는 눈이 마주쳤고 매우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아아... 쟤가 담배가 떨어져서 사러 간데. 내가 데리고 올게!”


하곤 학창 시절 100미터 달리기의 기억을 살려 최선을 다해 도망쳤다. 단숨에 다시 남구로역 지하까지 뛰었는데 무단횡단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갑작스레 과도한 공기가 비집고 들어온 내 여린 기도는 마찰이라도 된 듯 뜨겁게 달구어졌고 먼저 역 플랫폼에 들어와 있던 친구 L을 마주한 순간 괘씸하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뛰느라 입안에 가득 분비된 침은 젤리처럼 진득해져 몇 번을 휴지에 뱉어냈는지 모르겠다.


늘 언행이 주토피아 나무늘보처럼 느릿한 L은 군대에서 발목을 다쳐 영영 뛸 수 없다고 했는데 이토록 민첩하게 움직이던 모습은 전무후무했다. 소저들에겐 매우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녀들이 육상 선수도 아니고 적당히 뛰었어도 충분했을 일을 뭐 때문에 그렇게 사력을 다해 뛰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신을 차리고 왜 그랬냐고 L에게 물으니


“너는 돈 없는 학생이고 십중팔구 내가 계산해야 하는데 갑자기 걔가 횟집을 가자고 하잖아!”


하며 도주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할 수 없이 다시 L의 좁은 고시원에서 하룻밤을 신세 져야 했고 꺼두었던 L의 휴대기기를 다시 켰으나 그녀들도 마음이 상했는지 어떠한 연락의 흔적도 없었다.




모처럼 집에 붙어있던 저녁에 동생이 강아지를 데려갈 거라며 연락을 해왔다. 집에서 키우던 생명체는 모조리 죽어나가는 핏기 없는 이 집은 식물은 물론 병아리, 토끼, 금붕어 그리고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마저 무사하지 못했는데 강아지만 고생시키는 건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때문에 고성이 오가는 흉흉한 분위기에 동생의 눈치 없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쉽게 상상되지도 않았다.


동생이 품고 온 작은 아이는 우리 집 바닥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소파 밑으로 달려가 숨었다. 내가 얼굴 좀 보자며 다가가면 소파 밑에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볼 뿐이다. 강제로 그를 빼내어 안아주면 몸을 바르르 떨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알던 치와와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행태를 보였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이 아이는 당시 여자친구가 키우려고 데려왔는데 그녀의 부친이 개를 너무 싫어해 갖다 버리라며 매일같이 학대했다고 전했다. 강아지용 사료가 아닌 캔 참치만 조금 먹였다고 하니 아이가 이렇게 소심하면서도 좀처럼 경계를 풀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간간이 뜻하지 않게 아빠의 버럭 하는 말투가 나올 때면 아이는 또다시 소파 밑으로 줄행랑쳤지만 아빠와 엄마의 말다툼의 빈도는 다소 줄어들었다. 집에 생명체를 들이는 것을 내키지 않아 했던 아빠도 이 아이가 겪은 일을 듣더니 매우 반기는 눈치다. 아빠는 이 아이를 고이즈미라고 명명하려 했지만 엄마는 커다란 귀 때문에 미키마우스가 생각난다며 ‘미키’라고 부르자 했다. 당연히 나와 동생은 엄마의 의견에 동의했다.


더 이상 소파 밑에 숨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진 미키는 대소변 교육도 곧잘 따랐고 알고 보니 식탐이 꽤 강했다. 내가 홀로 BHC 핫후라이드 취킨을 한 마리 주문하여 방에서 섭취하는데 미키가 한참을 쳐다본다. 부담스러워 방문을 닫고 먹으니 구슬프게 울기 시작한다. 불쌍해서 퍽퍽살 한 조각을 떼내어 주니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잘 먹는 모습에 가능한 많은 살점을 먹였는데 머지않아 그의 피부에 불긋한 발진이 생겨났고 심한 부위는 피가 나기도 했다. 동물 병원에 가서 상담해 보니 강아지들에겐 절대 사람이 먹는 것을 주지 말고 특히 염분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기본적인 것도 몰랐던 초보 견주들은 시행착오 끝에 반려견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하나씩 깨우쳤고 삭막했던 1801호를 잠시나마 웃고 조금은 따뜻하게 만드는데 미키가 큰 역할을 했다. 자다 보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그의 등을 내 몸에 살포시 갖다 댔는데 그때 느껴졌던 그의 온기가 오늘따라 몹시 그립다.


우리 집에 온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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