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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사 (領選使)

by 김동의

상해(上海) 출장길에 올랐다. 국내든 국외든 나는 출장을 거의 가지 않는다. 다른 사업장을 점검하며 기나긴 이동길까지 고려하면, 평소 집중해서 일하고 퇴근하여 집에 당도하는 시간을 항상 넘어서기 때문이다. 협력사에서는 나름 고객사에서 왔다며 종이컵에 뜨끈한 믹스커피라도 타서 대령하는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심각하게 중요하고 바쁜 일도 아니면서 남의 일하는 시간을 잡아먹는 행위는 몹쓸 짓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배우자의 눈치에 12년 만에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출장 품의서나 계획서는 마치 제갈량의 출사표와 같이 비장하기까지 했다.


비행기 표는 아시아나항공권인데, 회사 후배 놈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주차는 최악이라며 빨리 발레파킹이 되는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않으면 불행해질 것처럼 겁을 줬다. 아... 벌써 눈앞이 캄캄해지고 피곤해져 모든 인간사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십이지장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다.


출발하는 날 내 몸은 아침부터 생존을 위한 저전력 모드로 돌입했다. 세상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둔감해지기 위해서였다.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나무늘보처럼 몸에 힘을 쫙 빼고 움직였다. 자다가 일어나서 내 옆에 화식조나 슈빌이 앉아 나를 응시하고 있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공항까지는 아주 뜸하게 배차되는 공항리무진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배우자는 아이를 챙기고, 나는 코스트코에서 특가에 겟한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십자가를 진 것처럼 무겁게 정류장까지 끌었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 보도의 품질은 정말 구리다. 휠체어나 유아용 유모차가 지날 때에도 울퉁불퉁한 표면이 삶을 괴롭게 할 것이 분명했다.


티켓팅이나 수하물 위탁도 모두 키오스크로 진행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안 검색 때도, 비행기 탑승 시에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배려를 받았다. 이전의 절차보다는 한결 나아진 기분에 잔뜩 긴장된 몸을 조금은 누그러뜨리고 입꼬리를 올려봤다.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앉으니 팔걸이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보면 왼쪽 팔걸이가 내가 점유해도 되는 것 같다가도, 오른쪽부터 보면 또 그렇지 않다. 가운데에 앉아 좌우 팔걸이를 모두 타인에게 점령당한 나를 상상해 보니 조금 숨이 막혀왔다.


상해는 모든 것이 거대하고 휘황찬란한 인공의 극치를 느끼기 쉬웠다. 공기는 시원하면서도 높은 하늘은 뿌옇게 흐린 이곳도 미세먼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디디(DiDi)' 운전수들은 다소 거칠었으나 한시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매우 애를 쓰는 눈치였다. 호텔 직원들, 음식점의 종업원, 편의점 직원, '화이트 래빗(White Rabbit)' 사탕 전문점 직원은 물론 현지 협력사의 노동자들까지 누구 하나 게으름 피우는 일 없이 저마다의 역할에 매우 충실해 보였다.


처음 그 모습들을 목격하며 조금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독재 국가 속에서 모든 것을 통제받으며 쳇바퀴 돌듯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볼만한 애니메이션이 있을까 싶어 켜본 호텔 TV는 OTT나 유튜브는 전혀 없이 CCTV와 같은 중국 방송사 몇 개가 전부였다. 언론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세뇌당하며 인민 하나하나가 물화(物化)되고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듯했다. 그래도 퇴근하면 가족, 연인과 함께 와이탄을 걸으며 웃기도 하고, 식당에선 동파육과 마파두부를 먹으며 신나게 토커바웃하는 그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주말에는 오픈 10주년을 맞은 상하이 디즈니랜드에도 가봤다. 표값이 싸지 않음에도 현지인이 매우 많았다. 그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함박웃음과 환호를 터뜨리며 어트랙숀을 이용하는 모습은 우리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들도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데, 내 삶이 얼마나 낫다고 이들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봤던 것인지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헌법 제1조에 명시하고 있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양국 모두 인민이나 국민이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계층이 존재하며 계층 이동이 매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농구선수 야오밍과 같이 걸출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 한 대부분의 인민은 그들이 속한 계층에서 부여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며 생을 마감할 것이다. 땀 흘린 만큼 성공의 길이나 계층 이동의 자유가 주어진 듯한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살지만, 십중팔구 큰 반전 없이 어정쩡하게 끝이 날 내 인생도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다를까 싶다.


체제가 어떻든 어쩌면 우린 행복하다고 믿으며 살뿐인데, 다른 체제와 다른 종교를 신봉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혐오하는 데 이른 것은 아닌지 행군하듯 광활한 디즈니랜드를 걷는 내내 떠올려봤다.


아! 아니구나. 언론의 자유가 박탈된 나라에서는 '브런치(Brunch)'에 글을 쓰지 못하게 할 것이다. 거대한 장벽 뒤의 세상이 알려질까 무서워 유튜브와 구글, 각종 글로벌 SNS를 차단해 놓은 중국에서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반역에 가까울 것이다.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며칠 지내보니 우리나라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 약 1.3GB 데이터 사용량만 허용되는 e-SIM 덕분에 뜻하지 않게 디지털 디톡스를 하며 타인의 행복, 외국인들이 느끼는 행복의 실체는 어떤 것들 일지 관찰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반복된 노출에 절여진 뇌와 정서적 소진 상태에서 잠깐 벗어난 것이 이번 출장의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