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프로불편러
2026년 3월 20일 대전광역시소재 한 자동차부품제조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60여 명이 다쳤고 14명이 사망했다. 그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가장일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 화재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인재인지 불가항력적 재해인지는 더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불법 복층 증축이나 폭발성 인화물질 관리 부실 혐의가 보도되고 있는 만큼 그쪽 사용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러 언론사의 현장 영상을 보면서 나는 뿜어져 나오는 검은색 연기에 주목했다. 샌드위치 패널이 불길을 내주었고 그로 인한 유독가스로 괴로워하며 창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사람들을 목격했다. 이 노후한 건물은 2015년 건축법 개정(창고·공장 용도로 사용하는 600㎡이상의 건축물은 샌드위치 패널 심재로 '난연재료' 이상을 사용하도록 의무화) 이전의 기준에 맞춰 시공된 샌드위치 패널이 사용되었고 패널의 심재는 가연성 EPS(쉽게 스티로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한다.
검은 연기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1999년 동인천 상가 화재사건이 떠올랐다. 친구의 사촌 동생이 현장에 있었고 화재발생 당시 계단에 있었는데 앞을 가득 채운 검은 유독가스 한 모금을 흡입하자마자 기절하여 기억을 잃었고 영화나 드라마의 화재현장에서 ‘콜록콜록하며 탈출하는 장면’은 무서우리만큼 동떨어진 허구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대전 공장 화재 현장에 담긴 요구조자들의 몸부림이 더욱 간절하게 전달돼 요 며칠간 온몸이 괴로웠다.
만약 자신이 있는 곳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그런 시커먼 연기를 발생시킬 요인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 고급스러운 이름에 실체는 그렇지 않은 비닐벽지인 실크벽지(실크가 있긴 한 것인가?), 매끈매끈 표면을 자랑하는 필름으로 마감된 각종 몰딩과 합판가구류, 유기계 단열재까지 불의 통로 역할을 자처하고 온갖 유독가스를 뿜으며 경쟁하듯 존재감을 표출하는 물체들이 즐비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이 불에 타며 발생하는 가스들에는 대표적으로 일산화탄소(CO), 시안화수소(HCN), 염화수소(HCl) 등이 있고 흡입 시 1~2분 내에 뇌로 공급되는 산소가 즉각 차단되며 3~5분 정도 노출 시 뇌세포가 파괴되고 심정지에 이른다고 한다. 때문에 직접적인 불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 못잖게 외상 없는 질식 사망자가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재사고 시 생존 골든타임 1분 1초가 중요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해 불연 혹은 불에 취약하지 않는 건자재 사용과 시공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 짓기를 할 적에 불연 단열재인 락울(결국엔 글라스 울로 시공했지만...) 단열재 사용과 내부 드라이월로 사용된 석고보드 시공엔 타카가 아닌 스크루 사용을 주장했지만 시공 편의성과 비용이 운운되며 거절당했다. 내 집이나 사무실에 화재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전등은 꺼지고 온갖 연기로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 내벽과 천장을 마감하고 있는 석고보드는 스테이플러만큼 얇디얇은 타카핀에 의존하여 나무각상에 매달려 있지만 불길이 거셀 경우 그 핀은 쉽게 녹을 것이고 무너져 내려 우리가 빠져나갈 통로를 가로막을 가능성을 배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동주택, 단독주택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인테리어 마감은 9mm 두께 석고보드 2겹을 90년대 홍콩영화에서 처럼 권총 쏘듯 타카를 쏴대며 마감한다. 결국 시공 편의성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곧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축 관계 법령의 개정은 다른 것에 비해 매우 늦다. 민생과 직결된 법령의 재·개정의 속도가 짐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 정도라면 건축과 관련된 그것은 지게차 정도로 느껴진다. 공동주택 세대당 주차대수를 규정한 것이 언제인지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법률 재·개정되더라도 이전의 건축주와의 형평성과 사유 재산에 대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문제가 있어 법률 소급적용의 행정적·경제적 한계로 더욱 변화가 더디다고 한다. 화재 시 취약한 가연성 건축자재의 사용을 금해야 하지만 마찬가지의 사유로 기민한 대응이 어렵다.
잘난 사람들이 서로 잘났다고 경쟁하여 입법기관을 꾸렸는데 왜 실제 삶의 속도에는 반발짝도 앞서지 못하는지 그 분야에 무지렁이인 나는 불편하기만 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책임감과 경제적 보상이라던데 그렇다면 나는 아마추어 즉, 준 프로불편러라 칭할 수 있겠다. 현관문 손잡이를 비틀고 나가면 나는 불편한 것들만 눈에 띄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아무렇게나 도로변에 주차해 놓은 차량, 당연하듯 손 끝으로 튕겨내는 담배꽁초와 가래침부터 보도를 질주하는 바이크 등 쓰라고 시키면 최소 두 페이지는 불편한 것들로 꽉꽉 채울 수 있겠다.
나이가 들며 분명 육체적인 시력은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리는데 어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면서 괴롭고 겁이 많아졌다. “이것은 텅 빈 공기야.” 하며 지나칠 법한 상황에도 이제는 단위 부피당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그리고 방사성 기체의 농도까지 고려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사십 대 준 프로불편러는 과연 이대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포획된 밴댕이나 멸치처럼 스스로 몸부림치다 스트레스로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준 프로불편러는 오늘 배우자가 짠 일정에 따라 카페 체험단을 들렀다가 작년 요맘때 들렀던 화성시 만세구 서신면 궁평리 소재의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지도로 보니 목적지 인근에 작년에는 없던 장소가 두 군데 생겨났다. ‘씨랜드 참사 추모공원’과 ‘화성서해마루 유스호스텔’이 그곳이다. 잊고 지내던 19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사건도 떠올랐다. 씨랜드 수련원은 컨테이너를 쌓아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로 마감됐고 화재 당시 대량의 유독가스를 발생시킨 원인 역시 패널 속 스티로폼 단열재였다.
운전하는 내내 내 아들만 한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갔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넘어 괴롭기까지 했다. 목적지와 가까우므로 충동적으로 추모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씨랜드 참사 추모공원은 T맵으로 조회조차 안 됐다. 궁평관광로153번길 39로 목적지를 입력하곤 화성시가 2017년 ‘궁평 관광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놓인 것으로 추정되는 ‘궁평관광로’를 따라가다 보니 ‘화성서해마루 유스호스텔’ 안내판이 보였다.
씨랜드 참사 추모공원은 화성서해마루 유스호스텔과 붙어있었으며, 주차공간도 유스호스텔 주차장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 유스호스텔은 화성시에서 2025년 12월 20일에 정식 개관했고 추모공원은 같은 해 6월 30일에 조성했다. 추모공원에 발을 들인 준프로불편러는 몹시 언짢았다. 이곳이 추모공원임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변변치 못했고 규모도 100평은 될까 싶었다. 신축 유스호스텔 소속 조형물 내지는 조경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아 언짢음은 더욱 커졌다.
규모가 작은 것은 차치하고 민간사업자도 아닌 화성시는 왜 꼭 이곳에 유스호스텔을 만들었을까 의도가 궁금해졌다. 이 사업에 결재도장을 꾸욱 눌러 찍은 그 시장은 누구인지 역시 궁금해졌다. 이 유스호스텔을 찾는 사람들은 신축 건축물의 널따란 창을 통해 서해와 탁 트인 하늘을 차경하면서 과연 씨랜드를 1초라도 떠올리긴 할까?
내내 언짢았던 마음은 집으로 돌아오며 스스로 화를 돋운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도 했다. 그래. 내가 예민해서 그렇다. 삼풍백화점 참사가 있던 곳을 흙으로 덮고 그 위로 비싼 아파트가 들어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기만 한다. 내가 애써 집 지은 터에서 태초부터 누군가는 생을 마감했을 것이고 대한민국 일평균 사망자가 천 명에 육박해도 나는 웃고 먹고 잘 살아왔다. 괜히 불필요한 불편을 만들어 반나절 이상 표정이 무거웠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서도 차기 화성시장이나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는 이들에게 씨랜드 참사 추모공원과 화성서해마루 유스호스텔에 대한 생각을 묻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