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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동윤 Jun 22. 2024

대학원 후기(1)

영혼의 허기


“배를 굶는 게 영혼이 굶는 것보단 낫지”      


예전에 어느 커뮤니티에선가 인문학 전공자의 자기변명이라며 올라온 댓글로 기억한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것은 배를 굶기 딱 좋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문학이 가진 매력은 단순한 경제적 풍요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번 학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대학이라는 기관에서 수행하는 연구 중심 인문학의 목적은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현대 학문 전반은 실증성과 엄밀성에 근거해 지식을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개인의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학도 마찬가지다. 영혼의 충만은 ‘종교’의 존재 이유이지, ‘종교학’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그런데도 종교학과 진학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영감을 주는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는 것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아나운서를 준비한 이유도 앵커가 되고 싶어서였기보단, 방송인이 되고 싶어서였다. 대중들에게 나를 드러내고, 나의 언어로 위로와 영감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뉴스 수업보다는 라디오 DJ나 MC 수업이 더 즐거웠고, “표현력이 좋다”라는 칭찬이 가장 듣기 좋았다. 재능도 있었다. 하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통해서는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어 공부를 더 하기로 선택했다. 시인이 될 정도의 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나에게는, 교수라는 직업을 갖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였고, 종교학 대학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나의 최대 관심사가 종교라는 점이었다. 비록 기독교인도, 불자도 아니지만 나는 꾸준히 인생의 초월적 의미에 관심이 많았다. 대입에 성공한 20살 이후로, 목표 달성으로부터 오는 성취감이나 타인의 인정과 같은 외적인 동기들로부터 별다른 위안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틀에 박힌 일상에 누구보다 심하게 염증을 느끼고, 그 방향은 알 수 없지만 ‘탈출의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성정도 한 몫했다. 종교현상학자 반 델 레에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모든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종교적 영혼”의 소유자인 셈이다.      


그러나, 종교와 종교학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붕어빵의 본질은 ‘붕어’가 아닌 ‘빵’에 있는 것처럼, 종교학의 본질은 철저하게 ‘종교’가 아니라 ‘학문’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여겼던 것보다 ‘학문’의 대상으로서 종교를 바라보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학문적인 토의의 가치를 계속해서 의심하는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미나 시간에 오갔던 개념어 하나하나를 둘러싼 찬반 토론이나 학자의 이론에 대한 비평이 내게는 공허하게 느껴졌다. 대중의 삶과 너무나도 유리되어 있으며,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의미를 갖기 어려운 담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짧은 식견으로 인한 거만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옳든 그르든, 허기를 채우러 간 곳에서 되레 더 강하게 허기를 느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한편, 그와 더불어 나는, 또 다른 진실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진실은 나 자신의 '그림자' 들춰내 보인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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