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섬에서 마주한 인간의 결핍
'나홀로’ 발리 여행을 선택한 이유
어느 책에서인가 종교는 ‘홀로 있는 연습’이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종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게 그 글귀는 깊게 와닿았다. 물론 종교에는 함께 참여하는 미사같은 의식들도 있지만, 기도나 음악 감상 등 나에게 가장 깊은 영감을 주는 순간들은 늘 홀로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논문조차 결국은 홀로 하는 일이니, 혼자는 외려 나에게 자연스러운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홀로 있음을 불편해하기보다는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깊은 영적인 감정들을 사랑한다.
학기가 끝나고 발리 여행을 혼자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발리는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휴양지를 넘어서 신전들과 사원들, 그리고 종교 예식 등 풍부한 힌두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신의 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붓(Ubud)이라는 지역에는 사원들 뿐 아니라 요가와 명상을 가르치는 센터들도 많아 그 종교적 색채가 한층 짙다.
작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주로 해변을 여행해 우붓의 영적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석사도 어느 덧 3학기차로 졸업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번엔 ‘나 홀로’ 여행을 통해 앞으로 내 공부와 삶에 대해 더 깊은 다짐과 통찰을 얻고 싶었다. 거창하게는 철저한 고독과 명상 속에서, 타고르나 루미 같은 종교시인들이 그러했듯, 나의 미래에 대한 ‘신적 영감’을 얻고 싶었다.
‘고독’이 아닌 ‘고립’에 처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발리의 신은 내게 그 모습을 보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우붓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맞이한 열대 우림의 장대비는 이번 여행이 절대로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예표였다. 그 시작은 숙소였다. 군장 같은 짐을 멘 채 비를 뚫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차!”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도를 따라 가보니 예상과 달리, 숙소는 골목 저 구석에 있는 한 가정집이었다. 심지어 이 무더위에 에어컨도 없었다. 당황도 잠시, ‘이건 아니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예약을 취소했고 급하게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다행히도 합리적인 가격에 깔끔한 시설과 분위기를 갖춘 숙소였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이튿날 이번 여행의 지침을 통째로 돌려놓은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터트렸다. 이 역시 암시가 없진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SNS가 ‘먹통’이 된 것이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도 멈출 기미가 없었다.
정글 깊숙이 들어가 사원의 운치를 즐기려했던 계획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대체 여행지를 찾기 위해 결국 SNS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분께서는 침묵할 뿐 답이 없으셨다. 순간 짜증이 단전부터 올라왔고, 그만 핸드폰에게 ‘핵꿀밤’을 한대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진정으로 한 대 맞은 것은 핸드폰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터치스크린이 말을 듣지 않더니, 화면에 불길하기 그지없는 보랏빛 얼룩들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발적 고독이 비자발적 고립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장님이 내어준 김치찌개 한 그릇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금 전까지의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위기의식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나마도 노트북을 한국에 두고 오는 바람에 이제 나는 그야말로 고립된 섬이 되었다. 반쯤은 “이러다 국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도 엄습해왔다.
그러던 중, 구원의 동아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숙소에 오는 길에 보았던 근처 한식당이 생각난 것이다. ‘목구멍’이라는 식당 이름이 인상 깊어 기억에 남았는데, 이젠 나의 ‘숨구멍’이 될 셈이었다. 한달음에 식당으로 찾아가 잠긴 문을 두드리자 현지인 직원이 나를 맞았고, 그의 안내로 한국인 사장님을 뵐 수 있었다. 사장님은 예상과 달리 밝은 인상의 청년이었다.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주저 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쓰게 해주셨고, 다행히도 친구와 어머니께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근처 핸드폰 수리 가게도 찾아주셔서 덕분에 수리를 맡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한 숨 돌리다보니, 어느덧 비는 잠잠해졌고 지는 해가 말없이 정글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오랜만에 햇빛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나는 도착한 지 하루 만에 드디어 시내로 나갔다. 숙소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길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진 숙소들, 나른한 음악과 현지 음식 특유의 향을 풍기는 식당들과 술집들. 이 모든 것들이 하마터면 잊을 뻔했던 사실, 즉 이곳이 동남아 제일의 휴양지라는 사실을 되새겨주고 있었다.
시내 구경을 짧게 하고 오는 길에 감사 인사를 드릴 겸 한식당을 다시 들렀다. 저녁 시간이라 정신없을 법도 한데 사장님은 외려 내게 식사는 하셨냐며 신경써주셨다. 그리고는 밥이라도 먹고 가라면서, 돈도 안 받고 김치찌개 한 그릇을 그냥 주셨다.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그날은 고생을 해서인지 유난히 ‘고향의 맛’이 그리웠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사장님의 마음만큼 국물도 따끈했다.
내 공부도 '김치찌개 한 그릇'이 될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숙소 입구에 있는 명상하는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분노에 휩싸여 사고를 쳤기 때문일까. 고요히 눈을 감은 채 앉아있는 그 모습이 유달리 숙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꽤 예민한 몸의 소유자다. 그래서인지 육체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를 종종 실감하곤 한다.
그런데 그 조각상을 보고 있자니, 인간은 육체 뿐 아니라 감정도 이고 살아야 하는, 헤아릴 수 없는 짐의 상속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의 감정 그 자체가 치유 받아야할 불완전한 무엇은 아닐까. 기쁨과 사랑도 있지만, 분노와 절망, 혐오 같은 감정은 때때로 자신도, 타인도 해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당장 그날 아침 나 역시 그 시한폭탄의 희생양이 되었다.
결국 우붓에서 나는 신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순 없었다. 다만, 그분은 사람의 손길로 돌려 말했다. 그날 나는 고독은커녕,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처럼 연약한 존재였고 그 연약함은 생각지도 못한 신비로운 인연으로 치유되었다. 그렇게 나는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결핍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나를 구원했던 것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고독 속에서 떠오른 심오한 영감이 아닌 사장님의 작은 친절과 김치찌개 한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누워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도 길 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내 공부와 내면의 여정이,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는 따끈한 김치찌개 한 그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