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여행’이라는 환상(2)

: 신의 섬에서 마주한 인간의 결핍

by 하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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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우붓의 외로운 밤


그런데 인연의 신비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한식당을 나오는 길에 어디서 본 듯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우붓에서 동행하기로 했던 여자였다. 여행 전주쯤 잠시 카톡으로 일정을 맞춰본 게 전부였던 터라 사진으로만 봤지만 금방 알아보았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이목구비도 진하고 옷차림도 과감한 편이었다. 다행히(?) 그녀도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짧게 인사를 건넨 뒤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원래대로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사실 우붓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동행을 취소하려 했다. 어차피 며칠 뒤면 친구와 비치 클럽에서 관능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으니, 우붓에서만큼은 ‘완전한 고독’ 속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막상 ‘비자발적 고립’에 처하게 되자 외롭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특히 숙소 앞 골목에 있는 감성적인 술집들과 식당들은 없던 연인도 생각나게 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텅 빈 밤공기도 유달리 야멸차게 느껴졌다. 그랬던 찰나에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주치게 됐으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부활한’ 핸드폰을 찾자마자 그 한식당 앞으로 약속을 잡았다. 어색함도 풀 겸 잠시 골목을 구경하다 근처에 있는 근사한 와인바로 향했다. 물에 젖은 몽환의 숲 같은 우붓의 밤을 그대로 압축해 담아놓은 듯한, 이미 그 자체가 한 잔의 와인인 술집이었다.


예상대로 연인들도 많았다. 나는 비록 애인과 함께는 아니었지만, 이성과 같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나름의 위안은 되었다. 아마 혼자 왔었다면 현장에서 고독사로 즉사했을 테니 말이다.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해 미리 사과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서로 연애 얘기도 하고 가벼운 터치도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달콤씁쓸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갈망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빛에 나그네의 그림자만 길게 드리웠다.


관능 속으로


다음날 아침, 긴 혼란과 외로움의 시간을 뒤로 하고 우붓을 떠나 짱구로 향했다. 짱구는 정글에 있는 우붓과 달리 해변에 있는 도시로 발리에서 가장 ‘핫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친구와 함께 가기로 한 핀스를 포함해 라브리사, 아틀라스 등 비치클럽들과 서핑 스팟들이 짱구를 대표하는 이미지들이다.


즉, 우붓이 명상과 영성의 도시라면 짱구는 쾌락과 관능의 도시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창 너머로는 수영복 차림의 남녀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했더니 친구가 미리 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근황을 공유하는 것도 잠시, 우리의 관심은 곧장 핀스 비치클럽으로 향했다. 화두는 당연하게도 ‘여자’였다. 대개 핀스는 처음 보는 남녀들이 동행 채팅방에서 일정을 맞춰 함께 이용하는데, 그날도 친구가 동행할 여성분들을 미리 구한 상황이었다.


다만, 대부분 프로필을 공유하지 않는 오픈채팅방인지라 얼굴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일종의 ‘러시안 룰렛’인 셈이다. 가는 길 내내 친구와 나의 머릿속은 베일에 쌓여있는 그녀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사실, 어렸을 적에도 클럽을 꽤나 갔었지만 이곳은 조금 특별하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남녀가 수영복 차림으로 한데 어울려 논다는 사실이 그렇다. 한국인들의 정서상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벼운 스킨십 정도는 무리 없고 “벗어라”는 말도 자연스럽다. 래쉬가드라도 입었다간 분위기 못 맞춘다는 핀잔듣기 십상이다.


장소에 맞는 복장(?)을 하고 친구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니 하나 둘 일행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군분투한 친구 덕에 석양이 질 때쯤 되자 우리 테이블엔 나와 친구에 더해 여자 4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 말문을 터보니 나이는 전부 또래였고 직업은 의사, 승무원, 비서 등 다양했다. 외모와 분위기도 직업만큼이나 각양각색이었고, 그에 맞는 매력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였을까, 다들 비키니 차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많이 가지 않았다. 외려 내 마음의 눈은 육신의 눈앞에 있는 그녀들의 곡선이 아닌 추상화된 이상(理想)의 곡선, 쉬운 말로 하면 상상 속의 여인에게로 자꾸만 향했다.


결국 그날 밤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친구는 터덜터덜 공수래 공수거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친구가 중얼거렸다. “수영장 딸린 빌라 있으면 뭐하누?”


우붓의 마지막 밤에서 느꼈던 그 씁쓸함을 친구 녀석도 같이 느꼈던 모양이다. 헛헛함을 달래려고 둘이 맥주나 한잔 깠다. 주린 영혼을 채울 수는 없었지만, 주린 배는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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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여인과 외로운 나그네


친구랑 나는 그 다음날도 핀스로 향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이쯤 되니 이번 여행은 신이 나를 철저히 홀로 두려고 했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게 야속한 시간은 흘러 어느덧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친구는 먼저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에 있는 자기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저녁 비행기라 시간이 빠듯해 근처에서 운동이나 할까 하려던 찰나에 이륙이 2시간 지연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덕분에 운동을 끝내고 비교적 공항과 가까운 꾸따 해변을 찾을 수 있었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막 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모래사장은 이미 아름답기로 유명한 발리의 선셋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나는 석양을 볼 수 있으면서도 한적한 곳을 찾아 한 바위로 피신했다.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앉아 수평선 뒤로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의 짐도 함께 내려놓았다.


그때, 바다와 모래사장이 만나는 지점쯤에서 한 여인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균형 잡힌 비율이 마치 관념 속에만 있는 이상적인 곡선의 육화(肉化) 같았다. 거기에 춤추듯 흩날리는 길고 고운 머리칼과 카메라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포즈까지.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바닷바람에 살랑거리는 한 송이 장미꽃 같았다. 사내로서 그 꽃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곧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우붓의 밤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니던 그 막연한 갈망이었다. 그 갈망은 파도가 되어 마치 당장이라도 그 여인을 삼킬 것처럼 내 안에서 요동쳤다. 분명 그것은 단지 외로움이나 성적 욕망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여인에 담긴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어떤 근원적인 결핍을 품은 충동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충동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고, 영혼은 그곳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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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영성


나는 공부를 통해 그 결핍된 충동을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은 ‘에로스’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에로스는 단지 애욕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불완전함과 완전함 사이에 있는 것으로서, 자신에게 결여된 아름다운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아름다운 육체는 그 출발선이다. 에로스를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영혼의 아름다움, 그리고 종국에는 신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즉, 플라톤은 에로스를 인간이 신에게 오르는 사다리로 제시했던 것이다.


다만 그 사다리를 오르는 방법은 각자 다른 것 같다. 나에게는 분명 영혼의 완전함을 향한, 막연하면서도 강렬한 영적인 사랑이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향한 근원적인 갈망도 못지않게 강렬함을 그날 꾸따의 해변에서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서인지 영혼의 완성을 위해서는 “인간의 살이나 피부나 다른 많은 가사(可死)적인 허접쓰레기”를 여의어야만 한다는 그의 주장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형이상학적인 사랑이 육체적인 사랑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신에게는 아름다운 여인의 몸이 가진 관능적인 곡선도, 촉촉하고 향기나는 피부도 없지 않은가.


귀국한 뒤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들러 이 의문에 답을 줄만한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인간의 성적 갈망을 통해 영혼의 완성을 추구하는 인도의 종교 전통인 탄트라에 관한 책이었다. 핵심만 말하면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았다.


하나는 영혼과 육체 모두를 나눌 수 있는 여인을 만나 그와 비범한 성적 결합을 이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수행을 통해 남성 에너지인 시바를 잠들어 있는 여성 에너지인 샥티와 결혼시키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어 보였다. 내 경험상 그런 여인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울뿐더러, 두 번째 방법은 더욱 엄두도 안 났기 때문이었다. 책을 덮으니 결핍의 구멍이 외려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결핍을 더 이상 말초적으로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은 뾰족한 답이 없는 것 그 자체가 신의 뜻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결핍에 오래 머무르며 그 무엇인가를 갈망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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