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치과를 다녀왔다. 양악 수술 이후로 왼쪽 윗잇몸에 종종 염증이 생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유달리 아파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잇몸 염증에다 충치도 있었다. 의사는 치아 사이 벌어진 공간도 메울 겸 내게 지르코니아나 금니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가격은 각각 35만원, 55만원. ‘인문학 전공자’인 나로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금액을 듣자마자 또다시 내 몸이 미워졌다. “이 쓸데없는 돈덩어리 같으니라고.”
나는 사실 지금도 내 몸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날에는 제때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줘야 하는 이 몸이 귀찮다 못해 짐짝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잔병치레로 병원이라도 가야하는 날이면 ‘몸은 영혼의 감옥’이라는 어느 현자의 말을 실감하기도 한다.
주걱턱 콤플렉스
내 몸에 대한 미움이 처음 싹텄던 것은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던 듯싶다.
어느 날 엄마가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턱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치과에서 받은 진단은 ‘3급 부정교합’, 시쳇말로 ‘주걱턱’이었다. 그때부터 콤플렉스가 시작되었다. 남들 눈에 거슬릴 정도로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잘생겼다는 칭찬을 받고 자란 내게는 참을 수 없는 결점으로 느껴졌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면 내 입과 목은 어떻게든 긴 턱을 숨기기 위한 몸짓으로 바빠지기 일쑤였다.
콤플렉스는 대학에 들어오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입시라는 목표가 사라지자, 자부심이 있던 자리에는 질투심이 들어섰다. 모델 같은 인플루언서들의 외모 앞에서 서울대학교라는 명패는 내 에고를 지켜줄 힘이 없었다. 결국 모든 자기 비난의 화살이 턱으로 갔다.
전전긍긍하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교정과를 갔다. 내심 교정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답은 수술, 그것도 그 위험하다던 양악수술뿐이었다. 절망한 나는 그날 아버지 앞에서 턱을 주먹으로 연신 때리고서는 이게 다 아빠 쪽 유전자 때문 아니냐며 서슬 퍼렇게 눈을 부라렸던 기억이 있다. 고백컨대, 나는 그 콤플렉스를 이후에도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3년 전 양악수술을 받고 나서야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현실과 속박의 상징
그나마 다행으로 주걱턱 외에 다른 콤플렉스는 크게 없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내 몸,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몸 자체에 대한 미움이 생겨났던 것 같다. 몸이 나의 이상을 가로막는 현실의 상징이자 속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제학부를 나왔지만, 나는 돈에는 소질도 관심도 없다. 물론 집안이 유복해서는 절대 아니다. 아버지가 실직하고 어머니가 가정교사로 네 식구를 먹여 살리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에게 돈은 늘 우리를 괴롭히는 무엇이었다. 그래서 나는 돈이 싫었다.
종교학으로 진로를 틀면서 그런 마음은 점점 커졌다. 영적 탐구와 나눔이라는 신성한 목소리를 좇는 데에 돈은 그 음성을 가로막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였다.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내 진로를 두고 돈 걱정이라도 할라치면 내 영혼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결혼 안 할거냐. 나이 들어 아프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대개 걱정은 이런 식이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몸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혔다. 언제 어디서 아플지 모르는 이 시한폭탄 때문에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직장생활이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렇게 아껴줘도 결국은 썩어 없어지고 말지 않는가?
이런고로 한동안 나는 영지주의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육체를 악신의 창조물 내지는 악의 소산으로 보는 이들의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들은 한 걸음 나아가 영혼 완성을 목표로 하는 인간은 신적인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 육체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신성의 세계로 귀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년 전에 살았던 이 지성인들도 아마 나처럼 이상의 실현을 방해하는 자신의 몸, 나아가 몸 자체를 미워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육체가 갖고 싶다
지금의 나는 그들에게 공감은 하지만 동의는 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라는 사람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주걱턱 일화를 통해 눈치챘겠지만, 예전부터 나는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한 갈망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몸 만드는 데에도 관심이 갔다. 요즘 말로 ‘테토력’ 없는 샌님이라는 열등의식도 있었던 나로서는 근육질의 육체는 손에 쥐고 싶은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고 했던가. 그것은 나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능이 부족했다. 나에게는 의지와 끈기만 있었지, 운동 감각과 유연성, 그리고 수행 능력이 부족했다. 여기에다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느끼기보다는 생각이 앞서는 성향도 한몫했다. 나는 또 한 번 내 몸의 박재(薄才)함 앞에 좌절했고 결국 운동을 한동안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다. 예전에 바랐던 그런 몸을 가질 수 있을 거란 기대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씩 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몸, 나의 영원한 배우자
영화 <마션>을 보면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척박한 땅에 감자를 심는 장면이 나온다. 와트니는 우여곡절 끝에 난 새싹을 빤히 보며 어색한 인사를 건넨다.
“안녕?”
와트니와 감자 싹처럼, 나도 우여곡절 끝에 막 싹트기 시작한 나의 몸과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사는 내내 몸에게 소리만 질렀지 제대로 된 대화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 서툴기만 한 게 사실이다. 때때로 운동이 잘 안되거나 어디가 불편한 날에는 다시 갖은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래도 계속 대화를 시도하며 몸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아프고 뭉친 부분은 귀찮아도 풀어주고, 컨디션이 너무 떨어지면 그날 하루는 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영혼의 위대함> 등에서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각각 남편과 아내, 즉 부부의 관계로 비유했다. 한 가정이 조화롭기 위해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마찬가지로 육체가 영혼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여겼던 듯싶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 그 자체가 탈출해야 할 악이라고 주장하는 사상가들과는 선을 그었다.
나도 이제는 육체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 내지는 그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리려는 시도는 인간이길 부정하는 시도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다. 여전히 몸이 미울 때가 많지만, 또 그것을 힘닿는 데까지 아름답게 가꾸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엔 감옥보다는 배우자라는 비유가 와닿는다. 그 자체가 나는 아니지만, 나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 미워할 때도 있지만 사랑할 때도 있는 존재. 다른 점이 있다면, 이혼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싫든 좋든, 몸은 적어도 내가 현세에 머무를 때까지는 함께해야 할 ‘영원한 배우자’인 셈이다.
다만, 아내가 남편에게 늘 복종하는 것만이 미덕은 아니듯이, 때로는 몸에게 져주는 법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내 몸은 내 말에 ‘부분적으로만’ 복종할 테니 말이다. 완전한 통제도 완전한 수용도 답은 아닌 것 같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치열한 ‘밀당’을 하는 것만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너무 피곤하지 않겠냐고? 조금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이 영원한 배우자와 맺는 관계 속에서, 어쩌면 인내하는 사랑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내 몸을 온전히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이 영원한 배우자를 통해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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