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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퐁당 Jun 28. 2023

숲 속 레이싱



40대 아이 둘을 낳고 출산 전과 후로 몸이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열손가락 모두 뻣뻣하고 전신이 아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어진 몸으로 바뀌었다. 머리카락도 첫째를 낳았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졌고, 한 올 한 올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삐죽삐죽 나오는 중이다. 이런저런 검사를 했지만, 특별한 건 나오지 않고 관절염 류머티즘 또한 없다. 출산이 이유이다. 방법은 없다. 늦은 나이에 출산했으니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병원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것은 운동밖에 없다.
난 먼저 첫째를 낳고 안 좋아진 몸을 느꼈을 때 하루 2시간씩 걸으면서 이미 몸이 달라짐을 느꼈다. 둘째까지 낳은 지금 더 안 좋아진 몸을 이끌고 난 걷는다.

아이 둘을 유치원 어린이집에 보내고 걷기 시작한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온다. 기분이 좋다. 아파트 근처 옥구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배곧에 오며 옥구공원을 알게 되었다.

옥구공원은 서해안 매립지 한가운데 솟아 있는 해발 95m의 옥구도에 조성된 공원이다. 넓은 잔디밭과 숲, 체육시설과, 물놀이까지 가능한 놀이터, 모래놀이터, 작은 도서관과 목공체험장, 취사존과 산책로까지 시설도 잘 되어있고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옥구산도 마음에 든다. 게다가 오이도, 시화방조제, 선재도로 이어지는 서해안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근에 오이도와 소래포구, 송도 등이 있다. 옥구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제1주차장과 놀이터를 지나 나무 사이에 숨겨놓은 듯 곰솔누리숲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인다.
    
    
곰솔누리숲은 정왕동에 조성된 인공 녹지 공간이다. 옥구공원부터 시흥천까지 이어진 약 4km의 긴 도시 숲 공원이다. 옥구공원을 기준으로 왕복 한 시간에서 두 시간정도가 소요된다. 곰솔누리숲은 순우리말인 '곰솔'과 '누리'의 합성어로, 곰솔은 바닷가 소나무인 해송의 순우리말이고,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숲길을 이용하는 모두가 마음껏 숲을 즐기자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천천히 옥구공원에서 곰솔누리숲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 숲길로 들어선다. 도심이지만 숲 속에 들어온 듯 냄새가 다르다. 발밑에 흙길은 발이 노곤노곤해짐을 느낀다. 발에 힘이 들어가고 귀에 꽂은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기분 좋게 걷는다.

조금 걷다 보니, 흙과 나무냄새로 가득 차있던 나의 콧속에 누룽지가 들어온다. 누룽지인 듯, 알 수 없는 꼬순 냄새가 들어옴을 느끼는 순간, 백발에 허리를 약간 숙인 할아버지가 내 옆을 빠르지도 않게 스쳐 지나간다. 빠르게 지나갔더라면 빠르니까 당연히 지나간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건 모지! 한눈에 보이는 느림이다. 느린 걸음으로 나를 느~리~게 지나쳐 간다. 기분 좋게 걷다가 내 마음속 쨍 해짐을 느끼며, 내가 이 정도로 걸음이 느렸던 것인가. 차라리 강한 스피드의 발걸음이었다면 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눈에 보이는 걸음걸이는 걷고자 하는 의지는 크게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스침과 함께 내 코를 향해 들어오는 ‘나 아침에 누룽지 먹고 나왔다’고 말하는 듯 누룽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거 왜 이래  아침에 소고기미역국에 흰쌀밥 말아먹은 여자야’ 임을 속으로 외치며 이대로 질 순 없지 속도를 내본다.
아무도 모르게 발끝에 힘을 주고 ‘나 속도 내는 거 아니야’ 말하는 듯 슬며시 할아버지를 지나쳐 가본다. ‘히히’ ‘그럼 그렇지 나 40대에 애 둘 낳았어도 40대라 규 할아버지에게 질 순 없다 규’, 다시 라디오에 빠져 걷는다.
뭔가 뒤통수, 아니 뒤꿈치가 뜨거워짐을 느낀다.
허리가 살짝 굽어진 할아버지가 내 뒤꿈치를 노려보시며, 여전히 누룽지를 뿌리시며, 내 옆을 또 스쳐 지나간다. 스피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내가 저 속도에 또 지다니’.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치열한 숲 속 레이싱이 벌어지는 순간 우리 옆으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 없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 또한 그들에게 관심 없고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백발의 할아버지와의 대결뿐이다.
이미 할아버지도 날 의식 하기 시작했다. 우린 서로 말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각자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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