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여행에서 발견한 어쩌면 나의 또 다른 직업
글을 쓰는 사람
초등학교에서 주는 상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항상 존재하는 성적 우수상, 개근상 외에도 자율상, 리더십상, 바른생활 상, 체육상 등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상의 종류가 지금처럼 다양하지는 않았다. 성적 우수상 외에 글짓기상, 그림상, 서예상 정도가 생각이 난다. 이 종목 중에서 나는 유독 글짓기상에 대한 부담이 컸었다. 일기를 하나 써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고, 문장도 수려하지 않아 글짓기로 상을 받아 본 기억은 없다. 글을 쓰기를 자꾸 피하다 보니 단어를 선택하는 데에도 실수가 많았다. ‘내일까지 학원비를 결재해 주세요.’라든지, ‘그는 작렬히 전사했다.’라든지.
내가 쓴 글 중 가장 긴 것은 대학원 논문이 아닐까 싶다. B5 용지에 여백도 많이 주고 더블 스페이스에 영어로 단면에 쓰긴 했지만, 모아 놓고 보면 두께가 꽤 되었다. 그때는 논문을 안 쓰고 프래티컴이라고 수업을 듣고 자신만의 수업계획서를 쓰기만 해도 졸업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글쓰기에 도전을 하고 싶었다. 왜 내가 싫어하는 작업을 스스로 하기로 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그림책에 있는 그림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영어공부에 도움이 되는지 알고 싶고, 그것을 글로 써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던 나는 최대한 문법에 맞게 쉽게 하고자 하는 말을 썼다. 한국어로 된 글이었으면 능력도 안되면서 수려한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 깨나했겠지만, 영어로는 수려한 문장이 불가능했기에 가능한 명료한 문장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히려 그런 문장이 논문발표에서는 빛이 났다.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된 것은 페이스북이 한창 유행하던 2010년 즈음이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2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모임을 하게 되면서 동창회가 페북지부에 생겼다. 그렇게 친구들은 소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남겼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나던 우리들은 서로에게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그들에게 음식을 떠먹이듯 소식을 전했고, 자신의 피드로 공급된 포스팅을 보고 댓글을 달며 서로 소통했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글짓기상을 받기 위해 억지로 글을 쓰며 고통스러웠던 글쓰기 시간이, 글로 남길 행복한 순간을 찾고 기록하고, 댓글로 친구들과 소통하는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내 글이 상대의 동의 없이 피드로 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페이스북에서는 절필(?)을 선언하고 인스타그램에 공연이나 책을 보고 느낀 점이나, 자연을 보고 깨달은 것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글로 적었다. 내용을 전체 공개로 해 둔 것은, 글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C. S. 루이스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글을 읽는다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사람. 막연히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받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무감이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인가요?”
지난봄 순천여행 중 한 어르신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순천만습지에서 한참을 걷다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 보이는 것이었다. 무작정 저 바다에 가봐야겠다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늦은 시간은 아니어서 시내로 가는 버스가 끊기지는 않았을 것 같았지만,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 아름다운 어르신께 물었다.
“순천시청 가는 버스가 또 있나요?”
“그럼요. 내가 시간 봐줄까요?”
“그래주시면 너무나 감사하죠.”
그렇게 버스 시간표를 받고 바다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도 이어 물었다. 한동안 같이 길을 내려가면서 그분은 자신을 소개하셨다 우리 하남시에 살고 계시고 스스로를 건달이라고 하셨다. 아, 순천이 목포랑 가까우니까 여기도 주먹 자랑 하면 안 되는 그런 어마무시한 곳인가? 주먹 자랑이 벌교인가? 하면서 어딘가 있을지 모를 어르신의 문신 그림을 찾았다.
“아… 건달이시면 젊으셨을 때 막 이렇게 그러셨어요? ”
“하하하. 내가 미국도 가고, 여기 동생네도 오고 맨날 놀러만 다니니까 건달이랑 뭐가 달라? “
아, 너무나 멋진 어르신이다. 이렇게 멋진 어르신 눈에 내가 글 쓰는 사람으로 보인다니 나는 글을 써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순천기독교박물관 해설사님 부탁으로 선교사님들의 편지 번역작업을 하다 보니 순천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러 가는 여행 지였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는 무슨 대단한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을 글로 쓰며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고 소통을 하고 싶다. 그게 좋다. 글을 어디에 얼마나 써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오랫동안 글을 쓰며 살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브런치 작가가 되고자 하는 나의 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