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게 굳은 뇌를 깨우는 콩당콩당 망치질이다
요즘 들어 무엇을 자주 잊는다.
친구 이름이 안 떠오르고, 책장을 덮고 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잠시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뇌가 스스로 말을 걸지 않는구나!
나는 그동안 뇌를 너무 오래 방치, 내버려 뒀다.
책장을 덮듯, 생각을 덮고, 하루하루를 그저 목적 없이 흘려만 보냈다.
그러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내 안의 굳었던 뇌를 깨우는 쿵쾅~~ 망치질이었다. 그 순간부터, 내 삶엔 다시 '마음결'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만의 게으름 핑계는 그만. 뇌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 나이에 뭘 새로 배워.” 이 말은 뇌에게 주는 가장 무서운 독약이다. 우리 뇌는 90세에도 뉴런을 계속 만든다. 단지, 내가 게으름으로 인해스스로 뇌의 기능을 포기할 뿐이다.
그리고 안평대군은 왜 꿈을 그렸고, 오성과 한음은 왜 웃음을 잃지 않았을까? 그렇게 살다 가신 조선의 큰 선비를 잠시 떠올려 본다.
안평대군은 형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 칼 대신 붓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머물었던 ‘몽유도원도’를 화폭에 옮기며, 현실보다 더 찬란한 내면의 꿈을 길어 올렸다. 그 그림은 시였고, 그 시는 또 다른 글쓰기였다.
그는 말했을 것이다.
“내 비록 정사에는 졌지만, 내 맑은 정신은 끝내 굳지 않았다고.” 그 쩡쩡한 마음은 아직도 영원하다!
여러 번 반복되는 작업은 뇌의 근육운동을 통해 활성화된다
글은 하루에 하나씩 서두르지 않고 써야 그 느낌이 생생히 살아난다. 다만 게으름 없이 꾸준해야 한다. 우리 뇌는 적어도 스무 번 이상 반복할 때 서로 연결돼 학습화된다고 한다.
한음 이덕형이 그랬다.
그는 오성과의 대화 속에서도 늘 자신을 삼가며 다듬었고, 수많은 대화를 되새기며 스스로 말의 품격을 쌓았다.
오성 이항복은 조정에서 논쟁이 일자, “한음의 말이 옳소” 하고 농처럼 말했지만, 그 안엔 반복된 깊은 우정과 서로 다름의 냉철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재치는 반복에서, 지혜는 성찰에서 나 온다. 그리고 그 모든 출발점은 글쓰기에서 시작한다.
아무런 방향도 목적도 없이 떠 다니는 뇌는 결국 표류한다
글쓰기는 ‘생각의 나침반’이다. 목표 없이 쓰면 그냥 말장난이 되고, 어떤 의도를 품고 그 방향대로 쓰면 내면의 생각 지도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조선시대 대학자들, 대부분은 매일의 '자기 반성문'을 써 내려갔다. 오늘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내일은 무엇을 하며 다짐할 건지. 하루 한 장 글이 그들의 뇌와 삶을 새록새록 깨웠다. 삶의 목표를 보다 의미 있게 키우며 스스로 내면화하였다.
지금 내게도 그런 글 한 줄이 필요하다.
'왜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 말이다.
휴식이 필요한 에너지, 잠은 우리 뇌의 편집기다
잘 자지 못한 날은 글이 흐릿하고, 생각이 구겨진다. 수면은 뇌가 ‘오늘의 나’를 정리하고, ‘내일의 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오성과 한음은 그 어려운 시절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하루의 피로를 웃음으로 털어냈고,
그 웃음은 결국 뇌의 회복력이었다. 때론 잠보다 더 좋은 보약은 사람과의 깊은 웃음이다.
몸이 깨어나야 뇌도 깨어난다
하루에 10분이라도 걸어 보자. 그 걷는 시간이 바로 생각의 리셋 버튼이다. 고강도 운동보다 중요한 건 자주, 가볍게, 그리고 꾸준함이다.
안평대군이 꿈을 꾸고 그림을 그린 것도, 무수한 사색의 산책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걸음은 몸을 움직이고, 생각은 걷는 동안 자연히 스며든다.
외로움은 뇌를 얼음처럼 굳게 만든다
뇌가 살아있으려면, 관계가 필요하다. 글쓰기는 혼자서 쓰지만, 그건 결국 누군가에게 잔잔히 다가가 스스로 닿기 위해 쓰는 것이다.
오성과 한음의 우정처럼, 때로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살린다. 내가 쓴 글 한 줄이 어떤 이의 고단한 하루에 작은 불빛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살아 있는 셈이다.
낯선 자극이 뇌를 스스로 확장시킨다
뇌는 반복과 안정 속에서 자라지만, 진짜 성장은 낯선 충격에서 온다. 초현실적인 예술 감상, 문화 충격을 주는 오지 탐험, 기묘한 이야기나 미스터리한 퍼즐 풀기 같은 경험은 뇌의 문제 해결 능력을 근본부터 흔들어 깨운다.
익숙한 자극에 갇힌 뇌는 편안하지만, 낯선 자극 앞에서는 생존 본능처럼 깨어난다. 그리고 그 자극은, 글로 이어질 때 가장 진한 내면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줄을 쓴다
조용한 밤, 환한 모니터 앞에 앉아한 문장을 쓸 때면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굳은 뇌는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잊고 있던 열정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글쓰기는 대단한 행위가 아니다. 다만, 나를 기억하게 하는 가장 작고 확실한 행동이다.
글쓰기는 대박 사건이다. 무너진 뇌를 다시 세우고, 잊힌 꿈을 다시 깨우고, 혼자인 나를 다시 연결하는… 이음과 재 연결의 행복한 시간이다.
그 모든 시작은, 딱 한 줄을 쓰는 바로 지금의 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