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대박 사건(11)

끝내 건너지 못한 '강', '소' 한 마리 사랑이다

by 오엔디

이중섭은 사랑을 '소' 그림으로 표현했다.


제주도에 살 던 그는 일본의 한 여인 '야마모토 마사코'를 사랑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그리고 이남덕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자"이란 이름을 지어 준다. 그의 그림 속 주인공, ‘소’는 이남덕이었다. 평생을 그리워하며 '소'를 그렸고, 끝내 닿지도 건너지도 못한 강, 그리운 사람을 위해 사랑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가 마흔이 되었을 무렵,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부인의 아버님이 병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625 전쟁도 잠시 피하고, 아버님도 돌 볼 겸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 화백은 즉흥적으로 그녀가 쉽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아 챈다. 그날부터 "건너오지 못 한 강"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금단의 강이 "소"가 되어 평생을 그리워한다. 그녀는 일본으로 떠난 뒤, 평생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올 수 없었다.


정치, 전쟁, 시간 거리, 운명적 타이밍—그 어떤 것도 사랑 앞에선 사소해야 했지만, 현실은 늘 사랑을 시험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한 사랑”이 되었다.


최근 어느 한 인터뷰에서 90세 초로의 이남덕 여사는 세련된 모습이었다. 브로치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도 잘 어울리는 전혀 90대로 보이지 않았다. 피부도 반짝이는 느낌이었는데, 사실은 살아오면서 많은 고생을 한 분이셨다. 그럼에도 ‘곱고 우아하다 ‘는 분위기는 여전하였다.


그녀는 이중섭을 만났을 때 이야기, 행복했던 신혼 생활을 이야기할 때는 꽤 오래 말씀을 하셨다. 정확하게, 아주 밝은 표정으로. 마치 엊그제 일처럼 행복하게 그려내 회상하였다.


그가 보낸 엽서화 '하나가 되는'에 그녀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바람이 담긴 듯하다.

그가 살았던 원산, 부산, 통영, 제주 모두 바다가 있다는 게 모두 인상 깊었다. 그녀가 있는 곳을 생각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에서 두 분이 사셨구나” 싶었고, 제주도와 부산에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들 부부와 떼어낼 수 없는 곳이 바다였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와 7년을 함께 살았고, 그 후 70년을 그리워했어요. 다시 태어나도, 나는 그 사람과 함께 할 거예요. 그는 내 운명이었으니까요.”​


이 얼마나 단단한 고백인가. 마치 '사랑의 완성'이란, 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한 방향, 지순한 마음이라는 듯. 그녀는 하루하루를 사랑의 연장선으로 살았고, 그는 매일 '소' 그림에 이별을 덧칠했다.


조선의 큰 명의, 허준도 그랬다.

왕의 곁에서 말보다는 마음으로 남았고, 병을 고치되 인간의 마음을 먼저 보았다. 동의보감은 질병의 백과이자,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서사였다. 그 당시에 선조는 그를 ‘궁 안의 어금니’라 불렀다. 어금니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없으면 모든 게 흔들리는 중요한 치아다.


사랑도 글도 그렇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삶의 균형을 지탱하는 속 깊은 마음이다.


또한, 숨은 현자, 세이노의 가르침처럼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의 지도’를 건넨 순수한 사람 세이노를 상상해 보자!


그는 글을 통해 위로했고, 질책했고, 그러나 도움이 필요하면 늘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나는 누구냐고? 나는 단지, ‘너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 순수한 어른일 뿐이야.”


그의 책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고요하게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 각자가 잠시 잊고 있던 자존, 절제, 노력, 통찰의 언어들을 다시 깨워주었다. 그 긴 터널에서 다시 일어나도록 지나간 회한을 뛰어넘는 깊은 울림이 되어 준 것이다.


이중섭은 한 마리 소로, 허준은 한 권의 보감으로, 세이노는 단 한 권의 무명서로 그렇게 확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흔적을 남겼다.


그들은 모두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을

글로, 그림으로, 침묵 속으로 분명하게 남겼다.


그래서, 종종 글쓰기는 대박 사건이다.


왜냐하면, 글은 끝내 건너지 못한 마음의 강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건너야 하는 유일한 다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도 그런 ‘건너지 못한 강’이 있다. 사과하지 못한 사람, 붙잡지 못한 순간, 멈췄어야 했던 말, 혹은 꺼내지 못한 진심 등.


그것들이 가슴속에 눌려 있다면, 이제는 써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든, 지나간 나를 위해서든. 우리는 언젠가, 그 말을 글로, 마음으로 남겨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람은 내 운명이었어요’라는 고백도, ‘넌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외침도, 시간을 건너 조용한 내면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글쓰기는,

마음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유일한 방식이다.

사랑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들이 말을 아끼고 진실되게 최선의 마음을 다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글은 지금, 어떤 사랑을 데리고 있나요?

혹여, 어떤 강을 건너고 있나요?


그리고 그 모든 말하지 못한 것들을

이제는 종이 위에 놓아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당신에게도 잊히지 않을 대박 사건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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