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없는 인생 연습이다
내비게이션-경로 이탈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의 업데이트다.
요즘은 내비게이션 없이는 집 앞 마트도 망설여진다. 이게 뭔 일인가? 싶다. 예전엔 종이지도 하나 달랑 들고도 전국 어디든 다녔는데, 이젠 "잠시 후, 좌회전입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없으면 괜히 불안해진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과연 ‘이 길이 맞는가?’라는 질문은 늘 우리 안에 숨어 지낸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이 가장 빠를 수는 있어도, 가장 옳은 길은 아닐 수 있다.
우리는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주변을 제대로 바라본다. 정지화면 같던 일상도, 낯설고 불편한 골목도, 그제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글쓰기도 그렇다. 늘 계획대로 안 풀릴 때가 많다. 문장을 잘못 썼다 싶어 지우고, 뜻밖의 아이디어에 갑자기 방향을 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로 이탈’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 나은 문장을 발견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된다.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길을 모르면 길을 만들면 된다. 다만, 남 탓하지 말고 끝까지 걸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그는 ‘인생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보다 스스로 길을 찾아 실천한 사람이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사업에 뛰어들었고, 작은 무역사무소에서 시작해 해외와 국내를 오가며 바닥부터 익혔다.
처음엔 돈이 없어 3개월짜리 비자 하나로 해외를 돌며 거래처를 뚫고, 거절당할 때마다 손으로 손 편지를 쓰고, 다시 전화하고, 다시 찾아가서 결국 계약서를 받아냈다.
“길이 없으면 그 길을 만들면 된다.” 그의 말은 폼 나는 구호가 아니라, 몸으로 겪은 매일의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길을 만드는 일, 그 사실은 글쓰기도 똑같다.
정조는 늘 가는 길을 의심했던 사람이다.
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그 자리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선대의 권력자 자리였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했다. 익숙한 신하들에게도, 당연한 제도임에도 그것에 쉽게 기대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언제나 백성들의 삶을 세세하게 살폈고, 그렇게 수원 화성을 짓고, 규장각을 세우며 ‘조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했다.
그는 말한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늘 되묻는다. 왜냐하면, 가장 익숙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성군(聖君)”이라 부르지만, 그가 처음 한글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들의 반대는 거셌다.
"어리석은 백성에게 글자를 가르친다니, 전하! 이건 그 어떤 예도 아닙니다!"
하지만 세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유교적 체계라는 거대한 내비게이션을 일부러 꺼 버렸다.
그리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위대한 글자, 한글’을 백성에게 손수 내어주었다. 지금의 우리가 누리는 문해(文解)는, 그의 ‘경로 이탈’ 덕분이다.
익숙함은 때로 우리를 속인다. 낯익은 길이 늘 안전한 건 아니며,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도 가장 큰 실망을 경험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만의 경로’를 만드는 일이다. 남이 알려준 방식 말고, 남이 걸었던 말끔한 길 말고, 내 안의 방향 감각으로 쓰는 글.
실수하고, 멈추고, 다시 돌아가는 그 길에서
비로소 ‘나’라는 지도는 완성된다.
어느 한 교수가 있었다.
그는 돌 두 개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왔다. 하나는 교탁 아래 조용히 놓고, 다른 하나는 창밖 정원 쪽으로 멀리 던졌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어떤 돌이 될 건가요? 가만히 놓여 있는 돌인가요, 아니면 저 멀리 세상 밖으로 던져져 여행하는 돌인가요?”
그 질문은 마치 내게 이렇게 되묻는 듯했다.
“당신의 글은 지금 어디쯤인가요? 계속 움직이고 있나요, 아니면 여전히 교탁 아래에 머물러 있나요?”
글쓰기는 내비게이션이 없는 인생을 위한 연습이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고, 가끔 멈춰 서서 생각을 해도 괜찮고, 잠깐 길을 잃어 헤매도 괜찮다.
그러는 동안에 글은 다듬어지고, 조금 더 성숙해진다. 우리는 쓰면서 스스로 길을 만든다.
길을 만들면서,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정말,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새롭게 업데이트하는 대박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