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시대 극복기다
요즘 세상은 ‘겪는다’보다 ‘본다’를 더 중시한다.
길을 잃는다는 건 낭만이 아니라 비효율이며,
얼굴을 맞대는 일은 '귀찮음'으로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그렇게 계속 밀려나 지난날의 추억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그런 틈새를 노린 기술은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더 이상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돼. 대신 진짜보다 더 선명히 보여줄게.”
사람들은 그 속삭임을 그냥 습관처럼 ‘편리함’으로 전혀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우리는 경험의 소비를 넘어 멸종의 시대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기술이 경험을 대신하는 멸종의 시대, '친구화' 되기
“투표권과 소셜미디어 중 하나를 포기하라면?”
10대 청소년의 64%는 망설임 없이 투표권을 포기했다. “후각과 스마트폰 중 하나를 잃는다면?” 전 세계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후각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우리는 이제 ‘사는 것’보다 ‘보는 것’을 택한다.
여행은 풍경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SNS에 올릴 ‘나의 모습’을 쭌이 아닌 그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책은 직접 읽지 않아도 된다. 요약본이 너무나 충분히 있으니까. 그림은 손으로 직접 그리지 않아도 된다. AI에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림을 완성하게 시키면 되니까. 경험은 점점, 내 것이 아닌 세상의 저편, 데이터화된 진짜 상품처럼 '친구화' 되어간다.
조선의 행동철학 선구자, 실학자들은 경험을 직접 겪고, 직접 썼다
그들은 조선 후기, 큰 흐름을 거슬러 거인의 어깨 위 진짜를 택하는 큰 결정을 하였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그들은 책상 앞에서 세상을 아무렇게나 상상하지 않았다. 직접 걷고, 보고, 듣고, 부딪힌 끝에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다름의 글을 남겼다.
“나는 북경까지 다녀왔다” – 박지원
18세기 후반, 그는 청나라 열하로 떠났다. 긴 여정은 험하고 고달팠지만, 그는 직접 경험한 것을 쓰고 싶었다. 그 결과가 새로운 도전적 문체인 "열하일기"로 생생히 태어난다.
먼지 날리는 국경, 낯선 문명, 사람들의 숨결…
그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문장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그의 글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지구는 둥글다. 내가 재봤다” – 홍대용
홍대용은 단순히 외국 책을 베껴 적지 않았다. 직접 망원경을 들고 별을 관측하고, 조선 땅에서 지구 자전을 입증하려 했다.
기득권을 가진 사대부들은 비웃었다. “별 보며 무슨 헛소리냐.” 그는 말했다. “나는 내가 본 것을 믿는다.” 그 믿음의 시작은, 직접 해 본 거인의 큰 경험이었다.
“물건은 샘물처럼 고이지 않고 계속 흘러야 한다” – 박제가
박제가는 거리로 나갔다. 난전 시장 한복판에서 상인과 이야기하고, 사람과 물건이 움직이는 흐름을 기록했다. 그의 『북학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직접 쓴 글이다.
“물건도 흐름이다. 경험도 마찬가지다.” 그의 문장은 살아 있는 거리의 생생한 숨소리로 맥박 쳤다.
기술은 불편함을 지우지만, 인간도 함께 지운다
오늘날 우리는 ‘불편함’ 없는 삶을 꿈꾼다. 실패 없는 선택, 감정 없는 관계,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완성되는 결과 등. 하지만 그 순간, 인간다움도 함께 사라진다. AI가 대신 정리해 준 글은 생각할 기회를 앗아가고, 그냥 지시어로 만든 그림은 느리고 어설픈 손의 의미를 잃게 한다.
우리는 지금 ‘겪지 않고도 겪은 척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똑바로 기억하자. 기술은 단순히 편리할 수는 있어도,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단어, ‘우리’를 다시 찾자
기술은 우리의, 공공의 함께하는 공간을 해체하고, 댓글과 알고리즘으로 사람을 분리시킨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다르게 살았다. 그들의 글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는 몸부림이었다.
“혼자만 똑똑한 건 무의미하다. 함께 살아야 한다.” 박지원은 만주의 황량한 벌판에서 그 진실을 체득했고, 홍대용은 별을 보며 사람을 생각했고, 박제가는 장터에서 국가와 민생의 온도를 스스로 재고 바로 느꼈다. 그들의 글은 직접 경험이 연결한 공동체의 언어였다.
세이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기술의 시대에
우리가 되살려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겪고 살아낸 사람의 목소리다. “인생은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바뀐다.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닌, 자기 손으로 살아낸 것만이 진짜다. 기꺼이 바닥을 기고, 흔들리고, 쓰러져라. 거기서 배운 것이 너를 만든다.” 그 불편하고 덜컹거리는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다움의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 그 씨앗은, 결국 글이 되어 남는다.
글쓰기는 경험의 복원이다
기술이 매끄럽게 다듬은 결과물이 아니라,
삶의 울퉁불퉁한 리듬을 그대로 품은 기록이다.
수천 개의 AI 추천 문장보다, 당신이 직접 쓴 단 한 줄의 진심이 더 진실하다.
그러니 오늘,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길을 잃어보자. 때론 사람을 만나보자. 낯선 골목길을 혼자서 걸어보자. 그 불편하고도 진짜인 경험들이 당신을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더 깊은 글쓰기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을 써 내려간 문장은 이 조용한 시대에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는, 겪었고, 살았고, 그래서 쓴다.” 그런 과정이 작은 울림, 대박 사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