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대박 사건(15)

50대 흔들리는 마음 다시 붙잡기

by 오엔디

나를 흔드는 건 바깥세상이 아니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대와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그 작은 틈에서 나는 종종 기우뚱거리곤 한다. 언제나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생활 속의 잡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쉰을 넘겼고, 그동안 흔들릴 만큼 흔들렸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호수 위의 나뭇잎처럼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나만 왜일까? 무엇을 기대하고, 누구의 말에 스스로 상처받는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배우 황정민의 말을 떠올렸다.

한창 촬영 중 힘들었던 시절,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너 오늘 하루만 버티자.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오늘만 버티자는 그 말이 마음에 남는다.

그는 감정을 흘려보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지나치지 않고, 붙들지도 않고,

그저 하루만 잘 건너가는 법.


글쓰기도 그렇다. 하루의 감정을 한 칸 물러서서 바라보고, 언어로 붙들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정리된다.


화가 날 땐 '앞치마 거꾸로 입기'를 실천한다


한 지혜로운 부부의 이야기가 있다.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60대 부부.

두 아이를 훌륭히 키워낸 비결을 묻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화가 나면 산책을 하고, 아내는 화가 나면 앞치마를 거꾸로 입기로 했어요.”


하루에 몇 번이나 그랬냐는 질문에

남편은 하루 세 번씩 산책했고,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앞치마를 거꾸로 입었다고 했다.

단순하지만 위대한 품격이다.


배우 김혜수도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한 방송에서 말했다. “상대의 말은 그의 언어일 뿐, 내 인생은 아니에요. 그냥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길 때도 있어요.”


김혜수는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는 법을 안다.

눈물 날 때도 무너지지 않고, 품위 있게 감정을 끌어안는다. 그녀의 말과 삶은 ‘우아한 거리두기’의 표본이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 만유인력 실천기


귀가 나빠져 병원을 찾았던 어느 날, 명망 높은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노화가 진행되었고, 인생으로 치면 20% 남았습니다. 이제는 나빠질 일만 남았어요.”


그 말에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리고 이틀 후, 김창옥 TV를 들었다. 그는 기억력 문제, 청력 문제, 치매 유전 가능성까지 담담하게 고백하며 웃었다.


아픔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용기. 그게 진짜 품위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사람은 삶의 무게를 감추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정우성과 이정재의 우정에서도 느껴진다. 한 인터뷰에서 정우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아요. 대신, 언제든 기댈 수 있죠.”


삶의 바깥이 아닌 서로의 중심에 서지 않으며 지켜주는 거리, 그 거리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든다. 마치 고슴도치들이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처럼.


흔들리는 나를 붙드는 세 가지 방법


첫째, 객관적 거리두기

감정이 커지면 한 걸음 물러서 보자. 배우 황정민처럼 “오늘만 버티자”라고 말해보자.


둘째, 좋아하는 문장과 만남.

김혜수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정우성의 “간섭은 하지 않아요.” 마음에 새겨둘 문장은 나를 다독이는 구명줄이다.


셋째, 고통에 품위를 주는 글쓰기

글을 쓰면 감정은 언어로 정리되고 상처는 사유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마음은 다시 정돈된다.


조선의 현자 서경덕, 느림의 미학을 가르치다


조선 시대 서경덕 선생은 세상과 거리를 둔 선비였다. 그는 스스로를 '게으른 자'라 불렀지만, 그 느림 안에는 단단한 철학이 있었다.

“나는 빠르지 않으니 실수도 없고, 급하지 않으니 허물도 없다.”


사람들이 조롱해도 그는 자신의 속도로 삶을 살아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는 삶.


지금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가끔은 멈춰도 좋다. 조금씩 흔들려도 괜찮다. 그렇다고 부러지는 아픔을 참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흔들림 속에서 나를 다시 붙드는 작은 힘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글쓰기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를 다시 마주하고, 비로소 삶을 다시 품게 된다.


글쓰기는 내 삶을 다잡는 가장 조용한 혁명이다. 흔들림의 한복판에서도 나는 쓸 수 있고, 그러기에 다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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