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나를 고쳐 쓴다(18)

제18화 두려움을 달래주는 위기 순간이다

by 오엔디

살다가 두려움이 불쑥 나타나면 당황하게 된다. 그럴 때는 두려움에 대해 익숙해지기 기술을 습득해 보고, 나만의 두려움 해소-착지 연습도 꾸준하게 실천해 본다. 그렇게 미리 준비하면, 예고 없이 찾아오는 두려움도 저 길모퉁이의 어둠처럼 익숙해지고 친근해질 때쯤 사라진다.


그런데 가끔씩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순간 “괜찮을까?”라는 두려움이 발을 멈추게 만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말했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대할 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낀다. 그 미지의 절대적 존재감도 실체가 드러나면 안도감을 느낀다.” 두려움의 본질은 그 ‘모름’이다.


모르기에 상상하고, 상상은 언제나 또 다른 과장을 낳는다.


그 막연함 속에서 두려움은 그림자를 키우고,

그림자는 우리의 상상력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두려움의 실체를 ‘직시’하는 순간 우리는 안도한다.

그토록 무섭던 어둠도, 빛을 비추면 단순한 그림자였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우물 속 외줄 타기, 때론 착지 연습이 필요하다


삶의 어느 시점엔 누구나 외줄 하나에 매달려 있는 기분을 느낀다.

올라가자니 팔에 힘이 빠지고, 내려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땐 우리는 본능적으로 ‘줄을 놓는 일’을 가장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밑은 생각보다 깊지 않을 수 있다.

바닥이 흙이라면, 모래라면, 어쩌면 그 아래엔 새로운 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난도 교수의 말처럼, “인생의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결국 필요한 건 ‘착지의 연습’이다.


줄을 놓을 용기, 그리고 떨어졌을 때 다시 줄을 잡을 지혜.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인생의 낭떠러지는

위험이 아니라 새로운 지면이 된다.


1미터의 낭떠러지를 밤새 두려워하다


어느 절의 노스님이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다

깜깜한 산길에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가 본능적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밤새도록 매달려 있었다.


발아래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죽음의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해가 뜨고 나서야 그는 알았다. 그 발밑은 고작 1미터 정도였다.


우리가 불안에 떠는 이유도 이와 같다.

‘보이지 않음’이 ‘끝없는 추락’으로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낯선 두려움도 작은 불빛이 주는 그 실체를 알게 되면 웃으며 지나칠 수 있는 정도의 ‘작고 낮은 낭떠러지’ 일뿐이다.


두려움의 이름을 불러주기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익숙해질 수는 있다.

미지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은, 그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것이다.


“그래, 나는 지금 실패가 두렵다.”

“나는 평가받는 게 무섭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는 순간, 두려움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익숙해질 대상’이 돼 돌아온다.


법정스님은 깊은 산중에서 혼자서 죽음과 외로움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살았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그 두려움에 이름을 붙이고, ‘지금 이 순간’ 그 감정을 온전히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그가 찾은 평화의 길이었다.


조광조와 서경덕 역시 그랬다.

탄압과 죽음이 코앞에 있었지만, 그들은 신념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들에게 두려움은 족쇄가 아니라, 신념을 더 단단히 다지는 연단이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말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그러나 실제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당신들의 몫이다.”


두려움은 시간이 해결하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흘러갈 뿐,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익숙해지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나를 고쳐 쓰는 가장 용감한 방식


나 역시 한때, 두려움의 외줄에 매달려 있었다.

처음 글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 불안이 밤잠을 앗아갔다.


하지만 ‘조금씩 쓰기’와 ‘조금씩 공개하기’를 반복하면서, 두려움은 점점 낯설지 않은 친구가 되었다. 두려움은 여전히 곁에 있었지만, 그것이 더 이상 나를 막지는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두려움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익숙해져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두려움은 결국, 나를 성장시킨다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익숙해지고, 다정히 달래는 순간 우리는 성장한다.


바닥은 결코 깊지 않았다. 내려앉는 법을 배우고 나면, 다시 일어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움직임이었다.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두려움에 익숙해지고,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새로 써 내려간다.


매달렸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의 한계를 알았고,

작은 용기가 큰 힘으로 자라는 순간을 목격했다.


두려움, 그 마지막 문단


두려움은 우리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익숙해지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때로는 줄을 놓고, 때로는 다시 줄을 잡으며,

착지 연습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세련되고 용감한 삶의 방식이다.


회사에서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을 망친 날,

그리고 누군가는 다시 무대에 오르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그게 트라우마가 되기 전, 빠르게 두려움을 잊는 착지 연습을 하자!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다음 날 바로 다시 발표를 자청한다. 그 두 번째 시도가 완벽하진 않아도,

그 용기 하나가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마라톤 주자가 숨이 턱까지 차올라 멈춰 설 때,

그는 결승선을 떠올리며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그 한 걸음이 곧 ‘착지 연습’이다.

넘어지고, 흔들리고, 다시 서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는 결국 ‘두려움에 익숙한 사람’이 된다.


그게 인생이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움직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한다. “나는 멈춘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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