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숫자의 신비로 귀결된다
이른 아침, 숫자의 숨결이 나를 감싼다.
숫자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나는 그 거울 속에서 매일 새로워진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숫자와 함께 살아갑니다. 알람 시계가 가리키는 4시 30분, 오늘의 날짜 11월 3일, 지하철 도착까지 남은 4분,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는 커피 쿠폰의 9번째 도장 등
숫자는 마치 공기처럼, 우리들 주변을 무심하게 그러나 끈질기게 떠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숫자를 단순한 계산의 도구, 의미 없는 기호 정도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숫자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봅니다. 숫자 속에 숨겨진 의미와 상징, 그리고 내 삶의 방향을 읽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이 천문과 역법 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읽어냈던 그 자세처럼,
나 또한 하루 속에 흩뿌려진 숫자들에서 삶의 리듬과 미세한 변화의 징후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숫자가 내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쯤 가다가 잠시 서 있는가?”
숫자에 새겨진 삶의 지도
숫자는 단순한 측정 양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의식과 생명의 순환을 담은 보이지 않는 삶의 지도가 숨어 있습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숫자는 인간의 성장과 의식의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시선으로 내 삶을 잠깐 비춰보면,
숫자는 내면의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나침반이 됩니다.
1은 시작과 무한 잠재력,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가능성입니다.
2는 관계와 균형, 함께 존재함의 의미를 배우는 단계입니다.
3은 욕망과 표현, 끊임없이 발전하는 역동의 창조적 에너지가 세상과 맞닿는 지점입니다.
4는 선택의 갈림길, 현실과 이상이 늘 충돌하는 시험대입니다.
5는 깨달음과 변화, 혼란을 지나 자신을 새롭게 다시 고쳐 세우는 용기입니다.
6은 통합과 초월, 자아를 넘어선 마지막 완성, 미지의 세계를 건너는 문턱입니다.
그리고 7, 8, 9, 10은 그 상황에 따라 앞의 여정을 반복하며, 결국 완전함을 향해 순환하는 삶의 원을 완성시켜 나아갑니다.
숫자는 내 삶의 움직임을 비추는 정직한 거울과 많이 닮아갑니다. 박제가가 북학사상을 통해 관습의 틀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 나섰듯,
나는 숫자라는 광학 프리즘을 통해 내 삶의 구조와 다양한 색채 리듬을 읽어냅니다.
투자와 인생의 관조자 세이노가 말했듯,
“삶은 거대한 도약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적 점검과 반복으로 완성된다.”
오늘도 숫자는 내게 같은 모습이지만 전혀 다른 색감으로 계속 묻습니다.
“오늘의 너는 어제보다 다른 색감으로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가?”
숫자의 질서, 그리고 삶의 균형 유지
숫자는 혼돈 속에서도 우리들의 삶을 정리하는 언어입니다. 동양의 음양오행, 하늘과 땅을 잇는 십간 십이지지, 1년 음력 24 절기 360도의 순환 원리 모두 숫자의 질서 위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청나라 문물과 천문 속에서 숫자의 순환과 조화를 읽었습니다.
그에겐 숫자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넓은 창문과 같았습니다.
또한 신영복 선생은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매일 작은 규칙과 시간을 기록하며
그 반복 속에서 내면의 자유를 발견했습니다.
나 또한 숫자를 통해 나의 변하는, 그러나 변하지 않은 또 다른 모습을 점검합니다.
오늘의 소득과 지출, 수면 시간, 글자 수, 심박수 등 모든 숫자는 나를 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나를 고쳐 쓰는 피드백의 언어입니다.
홍대용이 말했듯, 숫자의 부재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스스로의 질서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나는 숫자 속에서 삶의 질서를 다시 세워 봅니다.
숫자가 사라진 세상의 공허함
만약 숫자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월급날의 기쁨, 시험의 순위, 사랑의 기념일이 모두 사라져 삶도 무너집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음악은 박자를 잃고, 과학은 증명을 잃고, 바둑판 위의 흑백은 의미 없는 돌무더기가 됩니다.
숫자가 사라진 세상은 기준이 없는 혼돈, 흐름은 있지만 방향이 없는 세계입니다.
숫자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약속된 언어입니다. 그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숫자 너머의 진실을 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숫자 때문에 가장 많이 흔들립니다.
연봉, 몸무게, 팔로워, 시험점수 등 숫자가 곧 나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눈금으로 자신을 재단합니다.
하지만 박제가는 말했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에 있다.”
숫자는 삶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삶의 의미를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숫자로 셀 수 없는 영역에 있습니다.
사랑, 우정, 존중, 그리고 희망. 그 모든 것은 계산이 아닌 감정의 진폭으로만 존재합니다.
나는 이제 숫자를 목표가 아닌 도구로 사용합니다. 숫자가 나를 조정하지 못하게, 내가 숫자를 다루는 사람으로 살기로 합니다.
순환의 질서, 완전함의 시작이다
숫자의 여정은 결국 순환의 철학으로 귀결됩니다. 9는 형이상학적 단계, 10은 다시 1로 돌아가는 완전함의 상징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함을 향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이유입니다.
박지원은 말했습니다.
“완전함을 얻기 위해선 조화의 근본부터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고, 결국 다시 돌아옵니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내면의 질서를 완성했습니다. 그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을 읽고, 짧은 문장을 기록했던 이유—
그 반복이 곧 자유였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직선이 아니라 원입니다. 끝처럼 보이는 곳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오늘 나는 내 삶의 작은 원을 다시 그립니다.
부족했던 부분을 고쳐 쓰고, 흩어진 자신을 한데 모읍니다. 그 반복의 곡선이 바로 나의 성장 궤적입니다.
다시, 나를 고쳐 쓴다
숫자는 내 삶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내 곁에 머물며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나는 대답합니다. “단순하게, 그러나 원처럼 완전하게, 오늘의 나를 다시 써 나가겠습니다.”
1처럼 시작하고, 2처럼 관계 맺고, 3처럼 표현하고, 4처럼 선택하며, 5처럼 깨닫고, 6처럼 초월하며, 그리고 10처럼 완전함을 향해 천천히, 단단히 걸어갑니다.
숫자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숫자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세상 속 나를 다시 배우는 것. 그 과정이 바로 삶의 순환이자 고쳐 쓰기의 기술입니다.
오늘 나는 어제의 나를 존중하고, 내일의 나를 기다리며, 이 순간의 나를 정성껏 써 내려갑니다.
숫자의 신비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귀결됩니다.
나를 다시 쓰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자유롭습니다.
숫자는 삶의 질서를 가르치고, 나는 그 질서 속에서 숫자를 통해 나를 다시 쓴다.
결국, 모든 계산의 끝에는 ‘나’라는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