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각기 다른 형태

by 슈펭 Super Peng

심야 편의점
밤의 장막이 온 도시를 덮을 때
하나의 불빛이 깨어난다.
그 불빛 아래로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의 텅 빈 눈동자,
헤어진 연인과 통화하며 우는 이의 흐느낌,
막차를 놓친 이의 지친 어깨.
그들을 맞이하는 이는 말이 없다.
손님이 고르는 물건을 묵묵히 계산하고
바코드가 찍히는 소리만이
이 적막을 채울 뿐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사연을 물건으로 산다.
나는 안다.
이 불 꺼진 도시의 불빛이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은 이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위로인지를.
그리고 그 따뜻한 위로를
묵묵히 지켜주는 이의 존재를.


작은 행복
나는 종종
큰 행복을 좇느라 지쳐,
길 잃은 아이처럼 헤매었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선 길목,
내 발치에
햇살처럼 앉아 있던
작은 행복을 만난다.
리듬에 맞춰 걷는 발걸음,
어둠을 가르는 지하철 창의 불빛들,
따스한 하루를 묻는 너의 목소리.
행복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으니,
잠시 멈춰 서서
내 안의 나를 돌아볼 때
비로소 마주하는
선물 같은 것.

정체성


모두가 좋아하는 것들로
자신을 이야기하지만
너의 이야기는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불편해하는지
그 멈춤과 불편함에 있었다
빛나는 유리 조각은
너를 완성하는 조각이 아니었다
너는 오히려
깨진 조각의 날카로운 모서리
그것이 바로
너의 온전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너의 온전한 형태를 보았다




비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들


마른 혀를 잃은 도시 위로
투명한 고래가 지나갔다
뜨거운 숨을 뱉던 거리들은
그제야 숨을 고르고
세상의 모든 미움과 아픔은
가벼운 흙탕물로 쓸려 내려가고
굳어 있던 도시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화소를 높인 듯
제 형태를 찾아가는 소리
젖은 땅에서 피어오르는 흙내음처럼
내 안의 가장 솔직한 감정들이
조용히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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