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주는 행복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엄마의 미소는 다정하고,
아내의 목소리는 부드러워.
"우리 아들, 오늘 돈가스 먹으러 갈까?"
"여보, 주말에 돈가스 데이트 어때?"
지글지글, 바삭,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 닿을 때쯤,
환한 얼굴로 돈가스 한 조각을 베어 문 순간,
"아들, 오늘 수술 날짜 잡았어", "자기야, 오늘 치과 가는 날이잖아"
순간 멈춰버린 젓가락. 배신의 맛이 이렇게도 고소할 줄이야.
그들의 손에 잡힌 나는 가장 행복한 미끼였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가장 달콤한 거짓말.
돈가스 한 접시의 위로 뒤에 숨은 가슴 시린 진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지갑 속 동전의 무게만큼
오늘의 허기를 재어본다.
라면 한 봉지, 밥 한 공기.
끓어오르는 물 위로
세상의 모든 불안이 녹아들고
꼬불꼬불한 면발이
지친 하루를 감싸 안는다.
후루룩, 짭짭.
뜨끈한 국물이 배 속을 데우면
빈 마음까지 채워지는 듯하다.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한 술 뜨니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든든하다.
이것은 끼니가 아니다.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가장 배부른 희망이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
어김없이 코끝에 닿는
달콤하고 매콤한 냄새.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붉은 유혹.
후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포장마차,
그 안에서 끓고 있는
쫄깃한 떡들이 춤을 춘다.
오늘도 세상의 온갖 사연들이
붉은 양념 속에서 뒤섞이고 있다.
"이모, 떡볶이 1인분이요."
딱딱했던 하루의 껍데기가
말랑하게 녹아내리는 순간.
뜨거운 어묵 국물 한 모금에
삭막했던 마음이 따뜻해지고,
고춧가루의 매콤함이
지친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그래, 세상살이 뭐 별거 있나.
이 작은 포장마차 안에서
오늘의 고단함을 잊고
내일의 힘을 얻는 거지.
오늘도 나는 이 붉은 위로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준다.
마비되듯 따사로운 햇살이 방 안을 채우고,
늘어진 엄마와 나,
두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누워 있다.
평화로운 오후, 뱃속에서 꼬르륵.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어제 먹다 남은 나물 반찬,
찌그러진 김 통,
색 바랜 김치가 전부다.
하지만 괜찮아.
우리에겐 밥과 시장표 참기름이 있으니.
밥 한 공기를 넉넉히 퍼 담고,
그 위에 온갖 반찬들을 올린다.
엄마의 손맛이 담긴 콩나물,
짭짤한 멸치볶음,
시큼한 김치
색깔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그릇에 모여든다.
참기름 한 방울, 고추장 한 숟갈.
슥슥, 밥알에 윤기가 흐르고
나물들과 한데 섞이는 소리.
비로소 완전해지는 우리의 식탁.
투박하지만 정겹고,
소박하지만 든든한 한 끼.
이것이 바로
일요일 오후의 가장 완벽한 식사.
세상 모든 근심을 잊게 하는
엄마와 나의, 비빔밥이다.